[국제칼럼] 부산 살리기, 이론이 모자라 안된 게 아니다

강필희 기자 2024. 9. 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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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잘 살자는 공진국가론, 메가시티 지향점과 차이 있나
수도권 공룡에 무너지는 지방, 절실한 건 실천하는 리더십

박형준 부산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23일 부산에서 만났다. 한국정치학회 학술대회장에서다. 두 사람이 ‘한국 미래 지도자의 길’이라는 주제로 가진 특별대담은 2박 3일 학회의 마지막 날을 장식했다. 이들은 2시간 이상 진행된 대담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이 처한 난제 중의 난제 ‘수도권 일극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을 내놓았다. 박 시장은 서울이나 강남 같은 특정지역이 아닌 다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의 ‘공진(共進)국가’를, 오 시장은 수도권 영남권 충청권 호남권 등 4대 권역별 ‘강소국가론’을 제시했다. 문제는 화려한 수사(修辭) 뒤에 따르는 공허함이다.

‘공진국가’나 ‘강소국가’는 사실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공진국가야말로 지방자치제의 기본 철학이요, 강소국가는 기왕의 행정연합이나 통합과 대동소이하다. 만약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부터 설명해야 했다. 두 단체장의 주장에 더더욱 공감하기 힘든 건 자신들이 제시한 이런 관념조차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각자 도생이 힘드니 뭉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부산 울산 경남의 특별연합(메가시티) 무산에 일조한 게 박 시장이고,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자해 행위”라며 반대한 게 오 시장이다. 대한민국 1, 2 도시 수장의 균형발전 모색이 공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다.

광역단체장은 정치학회에 참석한 교수나 연구자들이 아니다. 학문의 세계는 형이상학적 이론틀로 주장을 체계화하는 과정이지만 행정가는 다르다. 이론을 생산하는 자가 아니라 이를 현장에 접목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실천적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대선주자급 단체장의 속 보이는 ‘몸 풀기’와 학자 출신 단체장의 편승, 그 과정에서 생산된 포장만 바뀐 ‘균형발전론’에 고개를 끄덕일 만큼 지방 사정이 한가롭진 않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이라는 정책보고서가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SKY(서울·고려·연세)대’ 진학은 학생의 학업 수준보다 부모의 경제력과 거주지 사교육 환경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산보다 서울, 서울 강북보다 강남 학생이 훨씬 유리한 구조라는 분석이다. 진단 자체는 새로운 게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국가 소멸 위기 해법으로 제시한 ‘지역별 비례선발제’는 주목을 끌 만했다. 고교생 비율대로 상위권대 학생을 뽑자는 한은의 제안은 그 많은 지방의 단체장 중 한 사람 정도는 벌써 했어야 할 말이 아닌가.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리 조절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안정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까지 했다.

물론 ‘지역별 비례선발제’는 서울 학부모의 반발을 부를 게 뻔하다. 지방이 대학을 위해 잠시 머무는 통로로 변질된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한은의 제언 속에는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큰 일 난다’는 위기감과 절박함이 있다. 제도의 실현 가능 여부를 떠나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이 교육정책의 획기적 개혁을 주문할 정도로 불균형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한은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클수록 지방의 침묵과 고요는 더 부각되기 마련이다.

부산이 광역시 중 처음으로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했다는 얼마전 한국고용정보원 발표에 부산시는 반박부터 하기 바빴다. 청년이나 소멸을 정의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다며 “동의 못한다”고 일축한 것이다. 하지만 전국 대도시 중에서 인구, 그 중에서도 청년 인구가 가장 빠르게 감소하는 곳이 부산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이제는 통계청 추계 자료를 대하기 두렵기까지 하다. 합계출산율이 2.2명은 돼야 적정인구가 유지된다는데 부산은 0.66명, 부산 중구는 불과 0.32명이다. 자영업자는 문을 닫고 빈집은 늘어가고 빈곤율은 전국 최고다. 비정상도 이런 비정상이 없다.


지방이 살아날 방법은 학자들의 책이나 논문에 넘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득권을 포기하는 희생과 추진력이다. 말이 아닌 단 한발이라도 떼는 실천의 리더십이다. ‘공진’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공진의 방법’을 알고 싶다. 보궐로 당선된 박 시장은 올해로 임기 4년차, 보통의 경우라면 1회차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박형준표 시정’의 지향점을 모르겠다는 이들이 많다. ‘메가시티’는 무기력하게 무산된 마당에 수도권에 맞서려는 간절함은 느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서울보다 비싼 버스요금’, ‘구덕운동장 재개발 백지화’, ‘백양터널 유료화 후퇴’ 같은 이슈만 두드러진다. “Do something.(뭐라도 하라)” 미셸 오바마가 얼마전 미국 대선의 민주당 후보 지명전 초청연사로 나서 외쳤던 구호다. 수도권이라는 공룡 앞에 쪼그라드는 부산을 위해 누구보다 박 시장과 부산 시정이 이 주문에 반응해야 한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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