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과학 기술의 사회적 책임
지난 8월 28일, 텔레그램 최고경영자 파벨 두로프가 텔레그램 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 행위를 방치한 혐의로 프랑스에서 체포됐다. 텔레그램 내 불법행위를 묵인·방치하고 수사당국의 정보 제공 요청에 응하지 않아 사실상 범죄를 공모했다는 게 수사당국의 판단이다. 텔레그램은 최근 한국에서도 딥페이크 및 마약 거래 등의 범죄 온상이 돼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이다. 두로프 사건으로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와 기술 회사 사용자 활동을 감시할 책임에 대한 오랜 논쟁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 과학 기술이 전문화되고 개인과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점점 커짐에 따라 과학 기술 연구 윤리, 특히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과학 기술은 실험이나 관찰과 같은 객관적 방법을 통해 검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치중립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현대 과학 기술은 인간과 자연을 통째로 파괴시킬 만한 힘을 갖고 있어 미래 세대를 포함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고 있다.
과학 기술의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제도 강화뿐만 아니라 연구자 자발적 현장 중심의 연구문화 개선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단순한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보다 연구 문화적으로 접근해 연구 현장의 비수평적 문화, 폐쇄화, 정치화, 관료화 등 고착화된 부정적 생태계 자정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첫째, 연구자는 연구와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는 연구 결과가 인류에게 이익을 가져다줄지, 해악을 끼칠지를 판단하는 데 필수적이다. 신기술의 결과물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과 미래에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폭넓게 검토해 예방적 조치를 해야 한다.
둘째, 연구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유지해야 한다. 연구 과정과 결과 공개를 통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도록 한다. 투명한 연구는 부정확한 정보나 잘못된 결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연구자 간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명확한 연구 목적 및 결과 설명과 사회적 합의 도출에 기여해야 한다.
셋째, 연구자는 사회적 합의와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연구의 목적과 과정, 결과가 사회적 가치와 일치하는지 점검하고,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이끌어야 한다. 연구자 자신의 이익 추구가 아닌 사회 전체의 복지와 발전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가 환경과 미래 세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부정적 결과에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환경 보호와 자원 관리는 물론 사회적 평등 등 사회 전반에 과학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자가 짊어지는 도덕적 책임과 지속 가능한 발전 책임을 내포한다.
1972년 예일대학 식물생리학 교수로 활동한 갤스톤은 박사과정 시절에 식물 성장을 억제하는 어떤 화학물질이 콩 수확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과 이 화학물질을 농축해 사용하면 오히려 식물에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몇 년 후, 이 결과가 미 육군 화학회사에서 연구되면서 결국 전쟁에 사용됐다. 이것이 바로 베트남 전쟁의 고엽제 사태다. 갤스톤은 자신의 연구가 막대한 사회적, 생태적, 공중 보건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을 공론화하고자 했다. 갤스톤은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정부나 사회, 혹은 사기업에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감시·추적해야만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 생태철학자인 한스 요나스는 현대 과학 기술은 아무리 선하고 정당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끊임없는 적용을 강요받게 되며, 시공간적 광역성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윤리적 성찰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론은 오랫동안 지속된 숙제다. 이전보다 더 큰 파괴력을 갖는 현대 과학 기술은 책임론에서 더욱 자유로울 수 없다. 연구자는 이를 인식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데 기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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