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몸들의 불복종은 민주주의와 인권 이끄는 행동 [왜냐면]
명숙 |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지난 4월20일 아침 8시10분,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승강장. 사람들이 하나둘씩 눕기 시작했다. 죽음으로 이끄는 현실을 비판할 때 많이 사용하는 ‘다이인’(die-in) 액션이다.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을 맞이해 장애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장애인 차별 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서울교통공사 직원은 참가자들이 눕기도 전부터 “집회는 철도안전법 위반”이라며 “강제 퇴거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 방송을 했다. 사람들이 눕자 지하철보안관이 참가자들의 사지를 들어 강제로 이동시켰다. 지하철보안관은 경찰관이나 철도경찰처럼 공권력이 부여된 사람들이 아니므로 타인의 신체에 물리력을 가하는 행위는 심각한 인권 침해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사람들을 들어 올렸다. 인권침해감시단이 “이는 권한 없는 행위이고 철도안전법이 헌법보다 위에 있지 않으며 철도안전법으로도 강제퇴거할 권한이 없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경찰은 이러한 서울교통공사의 불법행위를 보고도 손 놓고 있더니 나중에는 서울교통공사의 지시에 따라 함께 참가자들을 같이 끌어냈다.
순식간에 승강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몇 사람이 부르더니 점점 여러 사람이 부르는 합창이 되었다.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 출근길 하루가 시작되면 차가운 눈초리와 혐오 속에, 우리는 모두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기차여 기다리오, 여기 사람 있소 장애인 권리를 외치고 있소.”
장애인의 시민권을 담은 노래 ‘열차 타는 사람들’이다.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의 협박 속에서 ‘아무리 겁박해도 우리는 장애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갈 거야’라는 마음이 느껴져 순간 눈물이 나왔다. 가사처럼 장애인도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물리적 폭력 앞에서도 당당히 한목소리로 노래했다.
직접행동이 주는 울림은 이런 것이다. 정치학자 에이프릴 카터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을 최후의 대안으로 쓴 책 ‘직접행동’에서 말한다. 참여자들은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게 말하는 직접행동을 함으로써 존엄감을 얻고 수동적인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한다고.
더구나 비장애인만이 정상이라고 우겨대는 사회에서 다른 몸을 갖고 있는 장애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와 모습으로 “장애인의 시민권 보장”을 외치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울림을 준다. 생경하지만 ‘다양성과 공존’을 사유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우리가 길들여진 비장애인 중심의 집회 및 표현의 자유를 벗어나 장애인이 차별받는 참혹한 현실을 드러내는 지하철 직접행동은 우리에게 ‘누가 지하철을 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만 던지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이 지연된 5분 동안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설에서 20년, 40년 동안 갇힌 채 살아가는 ‘장애인의 지연된 인권’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
장애인의 직접행동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만 하는 게 아니다. 미국 장애인 운동가들도 도로에서 잠을 자고 버스 앞을 가로막으며 싸우는 불복종 직접행동을 해서 1990년 ‘미국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제정을 끌어냈다.
우리는 다른 몸들의 존재를 전장연의 지하철 직접행동으로 대면하게 된다. 민주주의란 평등의 지평선을 넓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의 집회·시위 권리는 헌법적 권리’라는 법의 언어로 아는 게 아니라, 장애인들이 새벽에 힘들게 나와 지하철 승강장에서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효율과 속도’에 붙잡혀 장애인의 권리를 외면하는 사회에 질문하고 저항하는 것을 직접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참가자들과 목격자들은 장애인의 현실을 감지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방향에 대해 가슴 뜨거워지는 정동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이끄는 행동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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