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푸른 정원이 붉게 물든 이유 - 명작 속 의학이야기 [글쓰는 닥터]

김철중 기자 2024. 9. 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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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화가들이 명작 탄생의 고통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럼에도 질병의 고통 속에서 명화를 남기려고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몸에서 나오는 고통은 붓으로 이어져 캔버스에 자국을 남겼습니다. 글 쓰는 닥터 김철중, 오늘은 명작 속의 의학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백내장이 만든 모네의 붉은 수련

/조선일보 유튜브 '글쓰는 닥터'.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 총 250여 점에 달하는 ‘수련 연작’은 모네의 대표작이죠. 59세에 그린〈수련 정원〉은 색깔이 다채롭고 묘사가 섬세합니다. 82세에 수련 연못을 그린 장소에서 똑같이 그림을 그립니다. 작품 제목은 <일본식 다리> 입니다. 그러나 그림을 보면 같은 사람이 동일 장소를 그린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릅니다. 붓터치는 뭉개진 듯하고, 붉은색 위주로만 그렸습니다. 모네의 푸른 정원이 붉은 수련으로 뒤덮인 이유, 시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모네는 72세에 백내장 진단을 받았습니다.

백내장 후유증에 시달린 모네는 밝은 곳에서 색을 구별하는 것을 더 어려워했습니다. 백내장을 앓아도 모네는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고, 그의 말년 그림은 나중에 후배 화가들에 의해 추상화를 낳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백내장이 화풍 시류를 바꿨다고 할 수 있지요.

◇붓을 쥘 수 없어 탄생한 콜라주 기법

/조선일보 유튜브 '글쓰는 닥터'.

야수파로 유명한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 그는 원색을 대담하게 사용하고, 거친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미술 사조 야수파 선도자였습니다. 마티스 하면 <붉은 조화>나 <댄스> 같은 그림을 떠올릴 것입니다. 빨강과 초록, 주황과 파랑 등 강렬한 보색대비와 역동적인 붓놀림으로 새로운 방식의 화풍에 맹수처럼 달려들었습니다. 마티스는 72세 나이에 대장암 진단을 받습니다. 이후 수술과 합병증으로 13년간 침대 생활에 빠집니다. 이젤 앞에 앉을 수도, 붓을 쥘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탄생한 작품이 <재즈(Jazz)>입니다. <재즈 Jazz>는 침대에 누운 채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 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강렬한 파랑으로 역동적인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77세 화가가 아이처럼 색종이로 유쾌하고 따뜻한 작품을 쏟아냈는데, 그 연유는 대장암에 있었다니. 질병이 위대한 작품 탄생 계기가 된 것이지요.

◇예술가의 심리적 진통제 그림

/조선일보 유튜브 '글쓰는 닥터'.

멕시코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가 1944년에 그린 ‘부서진 기둥’이라는 그림입니다. 몸 한가운데 척추 선을 가로지르는 철탑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그리스 신전 기둥 모양을 하고 있지만, 기둥에 조각조각 금이 가 있습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고, 얼굴과 몸 곳곳에 못이 박혀 있습니다. 극심한 아픔과 커다란 통증 속에 있음을 암시합니다. 굵은 M자형 눈썹과 거뭇한 콧수염에서 고통을 견디는 여인의 인내가 느껴집니다.

칼로가 지금의 한국 병원의 진료실에 있다면 이 작품이 등장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마약성 약제를 척추관 안의 척수에 직접 주입하기도 하고, 약물을 척수 안에 조금씩 주입하기도 합니다. 진통제 치료의 300배 진통 효과를 냅니다. 어찌 됐든 칼로의 그림은 형언할 수 없는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듭니다. 칼로의 그림은 심리적 진통제 입니다.

◇뭉크의 절규

/조선일보 유튜브 '글쓰는 닥터'.

자신의 고통을 그림에 남긴 또 다른 화가가 있죠. 절규를 그린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가 말년에 남긴 자화상입니다. <침대와 시계 사이에 서있는 자화상> 속 자신은 쇠약한 노인입니다. 왼쪽의 시계는 현재를 의미하고, 오른쪽의 침대는 죽어 눕는 공간으로 해석됩니다. 뭉크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는 것이지요. 검은 나무의 시계는 마치 벽에 세워진 관처럼 보입니다.

뭉크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누나 잃고 평생 우울증 을 앓았습니다. <절규>를 보면 뭉크는 그림을 피로 그렸다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뭉크는 당대로서는 장수에 해당하는 81세에 생을 마쳤습니다. 죽음을 생각해야 삶을 잘 살아가는 절묘한 역설이지요.

◇고흐의 세상이 황금빛이었던 이유

/조선일보 유튜브 '글쓰는 닥터'.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의 그림에는 유난히 노란색과 소용돌이 형상이 많습니다. <별 헤는 밤>에서도 노란 회오리가 곳곳에 있습니다.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요양원에 있으면서 병실 밖에서 본 밤의 모습을 그렸다는데, 절망의 어둠도 몽환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고흐는 자화상뿐만 아니라 많은 그림을 누렇게 그렸습니다. 의사들은 그것이 질병에서 기원했을 수 있다는 지적을 합니다. 시야가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黃視症)을 의심합니다. 그 근거는 고흐가 디지털리스라는 약초를 복용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리스는 ‘황색 시력’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다 복용 시 노란 시야를 일으키는 산토닌 성분이 들어간 ‘압생트’라는 술을 고흐가 즐겨 마셨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가우디의 영감이 된 관절염

/조선일보 유튜브 '글쓰는 닥터'.

건물을 예술로 승화한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그는 여섯 살 때부터 관절염을 앓았습니다. 관절 통증은 가우디 일생 내내 완화와 악화를 반복하며 그의 생활을 고달프게 했습니다.

가우디는 발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발등 덮개 없는 신발을 신고, 양말을 두 장 겹쳐 신었습니다. 낡은 고무를 밑에 대고 헝겊을 둘러 싸매고 다녔습니다. 말년에 동작이 느린 가우디는 길을 건너다 다가오는 전차를 피하지 못해서 치 이는 사고를 당했는데, 그걸로 세상을 떴습니다.

관절염은 역설적으로 그를 위대한 건축가로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가우디 작품에는 얼기설기 엮은 뼈 모양이 많은데 관절염을 앓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가우디는 관절통 때문에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거나 같이 놀지 못하고, 당나귀를 타고 집 멀리 나와 자연에 머문 날이 많았습니다. 그 과정서 나무와 숲의 형태에 대한 관찰력과 분석력을 키웠고, 그런 능력이 독특한 형태의 작품 구성으로 이어졌다는 평입니다.

◇르누아르의 두 화풍

/조선일보 유튜브 '글쓰는 닥터'.

프랑스의 대표적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여성의 자태와 누드를 묘사하는 데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지녔습니다. 따스한 색채로 포근함을 표현했습니다. 1884년에 3년에 걸쳐 그린 ‘목욕하는 여인들’에서도 풍만한 육체, 윤기 나는 머릿결 등을 표현한 섬세한 붓 터치가 눈길을 잡습니다.

르누아르는 ‘목욕하는 여인’을 77세인 1918년에도 그렸는데, 그전 그림과 완전히 다릅니다. 선이 거칠고, 배에도 지방이 고여서 주름이 잡혀 있습니다. 르누아르는 50대부터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창작열은 식지 않았습니다. 비틀어진 손가락 사이에 붓을 넣고 끈으로 묶어 맨 채 통증을 이겨내며 캔버스에 붓을 찍듯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르누아르의 말년 그림을 더 좋아하는 애호가도 많습니다. 그의 인생은 고단해도 예술은 깁니다

그림은 화가의 생을 투영하고, 그림은 시대의 삶을 반영하고, 그 안에 인간의 생로병사가 있습니다. 명작과 질병은 고단한 삶의 결과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명작 속 의학을 통해 삶의 숭고함과 업의 치열함을 배웁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유튜브에서 ‘글쓰는닥터’를 검색하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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