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이재명이 띄운 '계엄령 괴담'...정말 실현 가능할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공식 언급하면서 발언의 근거가 무엇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간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 등 야권 일각에서 '계엄령 준비설'을 거론해왔지만, 이 대표가 11년 만의 여야 대표회담에서 이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의미가 남다르단 점에서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전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회담 모두발언에서 "최근에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며 "종전에 만들어졌던 계엄안에 보면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계엄 선포와 동시에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거 완벽한 독재국가 아닌가"라며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계엄령은 헌법 77조에 따라 전시·사변이나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서 질서유지가 필요할 때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치안·사법권을 유지하는 조치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할 수 있으며, 대통령은 이 경우 계엄령을 해제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 구도에선 설령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다해도 국회에서 해제될 수밖에 없다. 1952년 5월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 부산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여소야대 국회의 계엄령 취소 의결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강제 구금하는 '부산정치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에서 만약 정권이 이 같은 만행을 저지른다면 이후 상당기간 집권이 어려울 정도의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의 이 발언은 한 대표가 모두발언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등 면책특권을 제한하자면서 '이 대표의 재판 불복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나왔다. 이 대표는 "국회의원의 특권 얘기도 중요하지만, 상응하는 대통령의 소추권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정적 독재 국가로 흘러갈 위험성이 매우 높다"면서 그 근거로 '검찰 앞 불평등'과 함께 계엄령 준비설을 거론했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한 대표의 준비된 도발에 돌발적으로 맞대응하다 계엄령 관련 발언이 나왔던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야당에서 계엄령 의혹을 가장 먼저 공식 거론한 건 친명계인 김민석 최고위원이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달 21일 최고위에서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갑작스럽게 지명하고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이란 발언도 했다"며 "이런 흐름은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는 것이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은 근거로 "저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계엄령 준비설의 정보를 입수해서 추미애 당시 대표에 제보했던 사람중 하나다. 박근혜 정권이 강력 부인했지만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고 했다. 2016년 1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앞두고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가 "박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돈다"고 밝혔는데, 이 제보를 자신이 건넸단 주장이다.
당시 추 전 대표가 주장했던 계엄령 준비설은 의혹 차원에 머물렀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8년 7월 당시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국군기무사령부가 2017년 3월 작성했다는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 문건을 공개하면서 다시 논란이 됐다. 이 문건엔 탄핵 심판 이후를 가정해 계엄령을 검토한다는 내용과 군대를 투입해 집회와 시위 등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국회와 언론을 통제하는 등의 계엄 상태에 수행할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이 대표가 회담에서 언급한 '종전 계엄안'도 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대대적인 수사에도 문건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의심받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결과적으로 내란음모와 관련해 지난 2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불기소)을 받았다. 미래 상황을 가정해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것만으로 조직화된 폭동을 모의하거나 폭동을 실행하기 위한 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단 이유에서였다.
김 최고위원의 지난달 23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발언 등을 종합할 때 그가 이번에 '계엄령 준비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박근혜 정부 당시 문건의 존재 △자신의 뛰어난 정보력 △최근 국방장관 교체 등 인사와 윤 대통령의 '반국가세력 암약' 발언 등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당시 계엄령 검토 문건이 존재했단 사실과 윤 대통령의 발언은 현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 중이란 근거가 될 수 없다. 결국 어떤 신빙성 있는 제보를 받았는지가 관건인데, 야당은 이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천준호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도 이날 MBC라디오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실제로 계엄에 대한 검토가 있었고 준비가 되었단 게 나중에 밝혀지지 않았나. 지금 이 정권에서도 어딘가에서는 그런 고민과 계획을 하고 그것을 기획하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전례를 토대로 가능성을 추정하고 있을 뿐임이 드러난다.
천 위원장은 '제보가 많이 들어오고 있느냐'는 질문엔 "그런 정황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셨고, 들으셨고 그런 부분들을 최고위원들 중에서도 이야기하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그런 우려를 전달하고 있다"고 모호하게 답했다.
한 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계엄령 준비설을 공식화한 이 대표를 향해 "일종의 '내 귓속에 도청 장치가 있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지 않냐"고 비판했다. 한 대표는 "우리 모르게 대통령이 계엄을 준비하고 있단 건가. 근거를 제시해 달라"며 "진짜라면 우리도 막을 것인데 사실이 아니라면 국기문란"이라고 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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