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한동훈의 ‘처지’

정제혁 기자 2024. 9. 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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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가 지난 1일 오후 국회에서 채상병 특검법,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 등을 논의하는 여야 대표 회담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가 맞닥뜨리는 가장 첨예한 문제가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다. 대통령 노선을 계승할 것인가, 차별화를 꾀할 것인가. 인기 없는 정권의 주자일수록 후자로 기울었다. 김영삼 정권 때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 이명박 정권 때 박근혜 의원이 그랬다. 반응은 대통령마다 달랐다. 김영삼 대통령은 YS계 이인제의 탈당 및 대선 출마를 묵인했고, 이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야당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다른 대안이 여의치 않았는지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불사해가며 정적인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차기 주자의 차별화 시도는 대개 대통령이 계륵 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임기말에 본격화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에선 집권 3년차인 올해 초에 벌써 시작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총선 때 김건희 여사 문제로 윤 대통령과 충돌했고, 지난 6월 당대표 경선 때는 채 상병 특검법 발의를 약속했다. 당대표가 된 뒤에는 2026년 의대 증원 유예를 의료대란 해법으로 제시했다. 모두 윤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리거나 윤석열 정부의 정책 실패를 전제로 깔고 있는 것들이다. 한 대표가 이렇게 나오는 배경 역시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의원 신분이 아닌 한 대표는 원내 기반이 약하고, 당도 확고하게 틀어쥐지 못했다. 당 서열 2위인 추경호 원내대표는 채 상병 특검법, 의대 증원 유예 문제 등을 놓고 윤 대통령 편에 서서 한 대표와 다른 소리를 한다. 윤 대통령부터가 ‘나를 밟고 가라’는 식으로 한 대표에게 져줄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누군가가 되게는 못해도 안 되게는 할 수 있는 게 대통령 권력인데, 윤 대통령 임기는 아직도 2년6개월 넘게 남았다. 자칫 세게 붙었다가 한 대표가 튕겨져나갈 수 있다.

한 대표가 지난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해 “내 생각은 변함없다. 나는 식언하지 않는다”면서도 “내 처지와 상황이 그렇다”고 말했다고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2일 전했다. “내 처지가 그렇다”는 한 대표 말이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시도하되 당분간 둘의 관계가 파국으로는 치닫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그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정제혁 논설위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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