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된 대구·경북 통합, ‘청사 위치’와 ‘시·군 권한’ 두고 충돌
대구·경북 행정통합 논의가 3개월 만에 사실상 무산됐다. 대구와 경북도가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지방자치단체를 고민했지만, 청사 위치와 시·군 권한 등을 두고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행정통합 논의가 시작된 것은 지난 5월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구와 경북을 하나의 광역단체인 ‘대구직할시’로 통합하자고 제안하면서다. 행정통합에 반대 뜻을 밝혀온 홍 시장은 “기존에 추진하던 양적 통합과는 다른 질적 통합을 추진한다”며 차이점을 강조했다. 2019년 한차례 통합을 추진하다 무산된 경험이 있는 이철우 경북지사도 화답했다. 성장 동력을 잃고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을 살리기 위해 통합이 필요하다는 게 두 사람의 공감대였다. 또 대구와 경북이 합쳐 인구 500만 도시가 되면 서울시 다음으로 큰 도시가 돼, 수도권 중심에 대항하고 남부권 중심도시로 설 수 있다고 기대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6월20일 민생토론회에서 “대구·경북 통합에 중앙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통합이라는 대전제에 동의한 두 광역단체는 ‘대구경북특별시’ 출범을 위해 각각 필요한 법안을 마련한 뒤 세부 내용을 조율해왔다. 순조롭게 보이던 통합 논의에 갈등이 표면 위로 드러난 건 최근이다. 지난달 14일 대구시가 만든 법안이 한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경북도는 합의되지 않은 사항을 공개했다고 반발했다. 이때부터 대구시와 경북도는 각자 마련한 법안을 언론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두 광역단체가 이견을 보인 쟁점은 청사 위치와 관할구역 문제였다. 대구시는 통합으로 관할구역이 넓어진 만큼 대구청사(대구)·경북청사(안동)·동부청사(포항)를 두고, 실·국 수를 동일하게 배분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경북도는 현재처럼 대구와 안동에만 청사를 두자고 했다. 동부청사를 두자는 대구시의 주장에 대해 “대구를 중심으로 한 특별·광역시 체제를 전제로 하고, 경북을 분할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들이 청사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시·군 권한 배분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경북도는 시·군은 국토계획·산림·환경·재정 등 분야에서 현재보다 높은 수준의 특례를 얻어 시·군 권한을 강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광역지방정부를 구상했다. 이 때문에 지역 청사가 시·군을 관할하는 대구시 모델은 현재와 같이 중앙집권적이며, 되레 시·군의 권한이 줄어든다는 게 경북도 입장이다.
반면 대구시는 현행법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준해 통합 모델을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대규모 개발, 기업 유치, 광역 유통망 구축 등은 특별시장이 맡고, 주민 생활과 밀접한 사무는 조례로 시·군에 위임하는 식이다. 지방자치법상 특별시 체제로 전환하면 시·군 권한이 약 7% 줄어들지만 이는 조례로 위임할 수 있어 시·군 권한 축소를 방지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통합에 필수 과정인 주민 합의 방식도 이견을 보였다. 지방자치법을 보면, 지방자치단체를 폐지·설치하거나 합칠 때, 지방의회의 의견을 듣거나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 대구시는 주민투표까지 최소 3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2026년 7월 통합자치단체 출범이 불가능해져 시·도의회 의결로 추진하자고 했다. 반면 경북도는 첫 행정통합 사례인 만큼 주민투표 등 숙의 과정을 거쳐 이견을 조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가운데 홍 시장이 지난달 28일로 합의 시한을 못박으면서 갈등의 정점을 찍었다. 가뜩이나 ‘대구 중심의 행정통합’이라는 경북도의 불만이 있던 상황에서 홍 시장의 ‘최후통첩’은 협상 결렬의 기폭제가 됐다. 홍 시장은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산을 선언했다.
대구시는 박성만 경북도의회 의장이 지난달 27일 도의회에서 한 ‘대구시장의 말 한마디가 깃털처럼 가볍다’는 발언을 사과하고, 의장직을 사퇴하면 통합 논의를 다시 이어가겠다고 발표했다. 박 의장은 “일련의 사태에 책임지고 대구시장이 물러난다면 의장직을 걸겠다”고 반박했다.
경북도는 여전히 통합 논의를 멈춰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철우 지사는 홍 시장의 ‘페이스북 무산 선언’ 하루 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에게 대구·경북 행정통합 타결을 위해 정부가 행정체계 중재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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