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주6일 새벽배송’에 가려진…“위험한 ○○·○○ 야간노동”
지난 5월 쿠팡 '로켓배송' 기사로 일하던 41살 고 정슬기 씨가 숨진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2020년 10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27살 고 장덕준 씨가 숨진 지는 4년이 흘렀습니다.
두 사람의 죽음엔 '주6일, 주 60시간 이상 연속적·고정적 새벽 근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족들은 원청인 쿠팡CLS 측의 책임을, 그 속에 놓인 '구조적 문제'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저녁에 주문해도 다음 날 아침에 문 앞에서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새벽 배송'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편리함이 분명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드리운 '과로사'라는 그림자 역시 살펴봐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쿠팡 새벽 배송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기 위해선 '연속적·고정적 야간노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연관 기사] 새벽 5시 24분,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로켓배송’ 기사의 죽음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03223
■ '클렌징'이 뭐길래?…쿠팡 새벽배송 기사 "1초도 못 쉬고 뛰어다녀"
"야간 배송기사들은 1초도 못 쉬고 배송시간에 거의 다 뛰어다닌다고 보면 됩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침 7시까지 배송을 무조건 완료해야만 하고요. 7시가 넘어가면 클렌징(배송구역 회수)을 당할 수 있습니다."
- 수도권 현직 쿠팡 '로켓배송' 기사 A 씨
수도권의 현직 쿠팡 '로켓배송' 기사 A 씨는 오늘(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쿠팡 심야노동의 위험성과 공적 규제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신변 노출의 우려 때문에 직접 토론회장에 나오진 못했지만, 모자와 안경, 마스크를 착용한 채 화상 연결로 현장 증언을 이어갔습니다.
A 씨에 따르면, 쿠팡 새벽 배송 기사들은 보통 저녁 8시 반쯤 출근해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배송을 마무리하고 퇴근합니다. 가끔 물량이 많거나 간선 차량 배송 지연 문제가 발생할 때면 7시 넘어서도 배송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올 때도 있지만, 추가 수당은 없다고 합니다.
최소로 계산했을 때 하루 10시간, 주 6일이면 60시간을 일한 셈입니다. 야간노동 할증을 적용하면 일주일에 70시간이 넘습니다. A 씨는 "전국에 있는 모든 배송기사 중 쿠팡만 3회전 배송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배송기사들을 옥죄는 건 '아침 7시'라는 배송 마감 시간과 이를 넘길 경우 클렌징(배송구역 회수)을 당할 수 있다는 압박감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최근 쿠팡의 배송 물량이 계속 늘고 있지만, 물품 분류 작업 인원 감축과 간선 차량 배송 지연 등으로 '순 배송시간'이 줄어 업무 부담은 커지고 있다는 게 A 씨 이야기입니다.
이전엔 하루 10시간 근무 중 8시간을 배송에 투입했다면, 이젠 5~6시간 정도만 쓸 수 있다 보니 잠시 숨을 돌릴 틈도 없다는 겁니다. 새벽 배송 기사들의 하루 평균 방문 가구 수는 350~400가구에 달합니다.
A 씨는 "예전엔 조금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현재는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저희한테 몸에서 무리가 많이 오고 있는 것 같다"며 "쿠팡 본사 기준인 수행률 95%를 맞추려면 한 달에 단 하루도 쉬면 안 되고, 쉬는 날엔 대체기사를 구해서 어떻게든 1년 365일을 배송하라는 얘기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쿠팡 본사에서 하는 말처럼 저희가 선택한 일이고 저희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인 건 맞지만 가면 갈수록 나아지는 게 있어야 하는데 일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호소했습니다.
■ 전문가 "연속·고정 야간노동이 가장 위험…장시간 근무도 제한해야"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쿠팡 새벽 배송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기 위해선 '연속적·고정적 야간노동'을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생체 리듬을 해치는 야간노동 자체가 '2급 발암물질'만큼 위험한데, 이를 '교대근무'가 아닌 '연속근무' 형식으로, 그것도 하루 8시간 이상 '장시간 근무' 형태로 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직업환경의학전문의)은 "연속적인 고정된 야간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논문은 찾을 수 없었다"며 "너무나 해서는 안 되는 노동이라 어느 나라도 시행하지 않는 노동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임 원장은 "밤에 자지 못하고 낮에만 자면 신체화 장애뿐 아니라 사회화 장애도 발생한다"며 "물론 교대노동도 안전한 건 아니지만, 고정된 야간노동이 너무 위험한 노동이기 때문에 생긴 게 교대노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임 원장은 '최소한의 공적 규제방안'이 필요하다며 4가지 개선책을 제시했습니다. ▲격주 2교대 근무 ▲일 8시간 이상 근무 제한 ▲주5일제 및 2일 연속 휴일 도입 ▲최소 30분 이상 휴게 시간 도입 등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고정된 형태의 '주6일 새벽 근무' 대신 최소한 '격주 2교대 근무' 제도라도 도입하는 게 꼭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 쿠팡CLS 측의 전면적인 근무체계 재설계를 촉구했습니다.
임 원장은 "이러한 노동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굉장히 많은 죽음의 행렬을 보게 될 것"이라며 과거 환경부가 환경미화원들의 야간근무를 줄이고 주간근무를 늘린 개선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운영위원(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도 "과거에 어쩔 수 없이 야간 노동을 해야 한다면 밤에만 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연구가 있었다"며 "생체리듬이 (주야 교대로) 왔다 갔다 하면 더 힘들지 않냐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 최근 연구들은 그런 것들이 다 부정된다. 모든 교대제 노동 중에 고정 야간노동을 하는 경우가 유병률이 가장 높다"며 "아무리 야간 노동을 고정하더라도 일상을 벗어날 수 없고 주간에 육아를 하거나 야간노동이 부업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유족들 "이젠 멈춰달라"…쿠팡CLS "내년부터 '격주 주5일제' 도입"
오늘 토론회에는 고 정슬기 씨의 아버지 정금석 씨와 고 장덕준 씨의 어머니 박미숙 씨도 직접 참석해 쿠팡CLS 측의 책임을 강조하고 심야노동 환경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쿠팡을 상대로 한 국회 합동 청문회 개최도 요구했습니다.
정 씨는 "노동자들이 계속 죽어가는 사실을 알면서도 개선의 의지도 보이지 않고 눈가림만 하는 쿠팡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어쩌면 저들의 무도하고 교만한 행태를 보고도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 정부와 국회, 우리 사회가 쿠팡을 괴물로 만들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습니다.
박 씨는 "4년 전 아들이 사망한 그때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가 만들어지고 안전하게 근무환경이 바뀌었다면 지금 이런 자리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앞에 계시는 정슬기 씨 아버지도 이 자리에 계시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시는 저희와 같은 비참한 가족들이 나오지 않게 멈춰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최근 잇따른 사망사고에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쿠팡CLS 측에 택배 서비스 종사자 보호 및 처우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자, 작은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쿠팡CLS는 지난달 13일 택배기사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야간 노동자 '격주 주5일 배송'과 주간 노동자 '의무 휴무제'를 도입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야간 택배기사는 2주에 한 번 주 5일만 배송업무를 하게 되고, 주간 택배기사는 반기별로 최소 1회 이상, 연간 최소 2회 이상 일주일 중 이틀을 쉴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에 대해 한선범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 간사는 "한계가 명확하다"며 "연속적 야간노동이 반복된다는 게 더 큰 문제이고, 이는 전면 주5일제를 해도 해결이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택배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한 근본적인 업무 재설계가 필요하다"며 "3일 연속 야간근무 금지라든가 야간근무 시 8시간 이상 근무 금지 등 화주, 택배사, 소비자가 모두 모여서 공감해가면서 새로운 규칙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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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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