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이 응급대란으로"… 정부·의료계 실태 공방

강민성 2024. 9. 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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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국민 체감 못 따라가
배후진료과 도미노 현상 조짐"
복지부 "붕괴우려 상황 아냐"
<사진: 연합뉴스>

"경기 파주에서 복부 응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서울, 부천, 인천에 위치한 모든 병원에서 수술을 거절당하고 응급차에서 한참을 돌다가 안산에 있는 2차 종합병원까지 왔다."

"경상도에서 다리가 심하게 썩어 잘라야 하는 환자가 경북 인근 병원으로 가지 못하고 수도권 병원 응급실에 문의가 왔고, 천안에 거주하는 환자도 경기 남부에 위치한 병원까지 왔다."

정부가 최근의 응급실 상황을 두고 "어려움이 있지만 진료 유지는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선 응급실이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 사태가 더 심각해지고 있지만 정부가 인식하는 수준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것보다 낮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현상은 과거 의료대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의료계는 입을 모은다. 한 종합병원 원장은 "의료대란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응급환자가 병원 전원이 안 되어도 다른 병원으로 결국 전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결국 전원이 안 돼 돌아가시는 분들이 꽤 많아졌다.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병원 관계자는 "의료 공백이 커지면서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고, 의료대란이 '응급 대란'까지 이어져 앞으로는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2차 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응급실 내에서 처치가 안 되는 수준의 응급 환자들은 전담 진료과가 백업을 해줘야 하는데 지금 응급실을 비롯해 전문의도 부족해 응급체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응급실 전문의 인력난에 더해 응급실 배후의 진료과에서 수술과 치료를 맡는 필수과 전문의들의 피로가 누적됨에 따라 의료 체계가 도미노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서울시내 대형병원 응급실들은 완전히 문을 닫는 '셧다운'은 없더라도,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빚어진 인력 부족이 해소되지 않는 탓에 진료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강원대병원, 세종 충남대병원, 건국대충주병원 등이 야간이나 주말에 응급실 운영을 중단하면서 환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강원대병원과 세종 충남대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야간 응급실 운영을 중단했다.

건국대 충주병원 역시 인력 부족으로 야간과 휴일 응급실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에서 자체 파악한 결과 순천향대 천안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이대목동병원, 여의도성모병원도 응급실 운영 중단 등을 검토 중이다. 이달 2일 기준 서울시내 권역응급의료센터 7곳 중 서울의료원을 제외한 6곳에서 일부 환자의 진료가 제한됐다.

서울대병원과 고려대안암병원은 각각 안과 응급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알렸고, 한양대병원은 수술이 필요한 중증외상 환자나 정형외과 환자, 정신과 입원 환자 등을 수용할 수 없는 상태다. 2차 종합병원과 공공병원의 응급실 상황도 대학병원과 다르지 않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응급전문의들이 잇따라 사직하고, 배후 진료과 교수들도 야간 콜(수술)을 안 받겠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들이 새벽에 나와서 수술을 하면 다음날 정상적으로 진료를 볼 수 없다"면서 "다음날 진료와 외래, 수술을 해야하기 때문에, 야간콜을 안받겠다는 교수들을 탓할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 공공병원 관계자는 "의료대란 당시 야간에 조현병이 있는 임산부가 수도권 대학병원을 포함해 30여곳의 병원에서 모두 거부당해 구급차에서 뺑뺑이를 돌았다"면서 "다행이 저희 병원에 와서 산모와 아이가 무사히 치료를 받았지만, 매우 긴박했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병원 관계자는 "응급의료 가동률이 크게 줄고, 의사 수급 문제로 상황이 더 복잡해지고 있다"며 "응급실 수용 인원이 많지 않은데 대학병원 한두 군데가 진료를 제한하면 그 지역 의료는 재난 상태가 돼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새로운 대책을 계속 발표하고 있지만 의료계 관계자들은 현실성이 없는 정책이라고 연일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이달 2일부터 비상 진료 대응 브리핑을 매일 열어 응급실 관련 사안을 안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장관은 추석 연휴에 응급실 내원 환자가 급증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연휴 기간 동네 병의원 4000여개가 문을 열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환자분들께서는 본인보다 더 중증인 분들에게 응급실을 양보하시고, 동네 병의원을 먼저 찾아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도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에서 "정부가 이달 4일부터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공보의)를 진료 제한 응급실에 긴급 배치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전반적인 응급의료 역량을 종합적으로 볼 때, 일부 어려움은 있지만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붕괴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전체 409개 응급실 중 99%인 406곳은 24시간 운영을 하고 있으며 6.6%에 해당하는 27곳은 병상을 축소해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공의 이탈로 응급실에 근무하는 전공의 전문의 등 모든 의사는 평시 대비 73.4% 수준이라며, 최근 일각의 주장처럼 응급실 근무 인원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후속 진료도 평시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표출된 권역과 지역응급의료센터의 27종 후속진료 가능 여부 분석 결과, 진료가 가능한 기관은 지난주 102곳으로 평시 109곳보다 7곳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박 차관은 "현재 당면한 응급의료의 문제는 의료인력 부족 등 오랜 기간 의료개혁이 지체되면서 누적된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며 지난달 세 차례에 걸쳐 발표한 응급의료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의대 교수 단체는 이날 "9월 1일 전국 57개 대학병원 응급실 중 분만이 안 되는 곳은 14개, 흉부대동맥 수술이 안 되는 곳은 16개, 영유아 장폐색 시술이 안 되는 곳은 24개, 영유아 내시경이 안 되는 곳은 46개 대학병원"이라며 "건국대 충주병원, 순천향대 천안병원, 단국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세종충남대병원, 이대목동병원, 강원대병원, 여의도성모병원이 응급실을 일부 닫았거나 닫으려는 계획이 있다"고 말하며 의대 증원을 중단하는 것이 사태 진정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강민성기자 km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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