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카 포니부터, 럭셔리 GV90까지 … 도전 이어온 '현대웨이'
정주영·정세영 '1세대 헌신'
공장터 보여주고 "포니 만들자"
전세계가 놀란 현대차의 시작
투자받아 숨가쁘게 생산 돌입
럭셔리카 만든 '정의선 뚝심'
"무모한 도전" 회의론 보란듯이
베스트카 제네시스 만들어내
GV90 코치도어 적용 명품 반열
◆ 기업가 정신을 찾아서 ◆
태화강을 따라 동쪽으로 울산을 가로지르면 울산항 방향으로 뻗은 해안도로에 접어든다. 이 길 왼편에는 '아산로'라는 표지가 우뚝 서 있고, 그 뒤로는 높다란 펜스로도 다 가리지 못하는 광활한 공사장이 펼쳐진다. 축구장 80개 면적인 54만8000㎡ 용지에 들어서는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전용 공장 건설 현장이다. 울산 전기차 신공장에서 생산되는 1호차는 제네시스의 초대형 럭셔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GV90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최상위 럭셔리카의 탄생은 한국 최초 고유 모델인 '포니'가 양산된 지 50년 만에 이루는 성과다.
마이카 시대를 연 포니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등 창업 1세대의 헌신으로 탄생했다. 두 형제는 미국 포드와 50대50으로 투자해 합작회사를 설립하려고 추진했지만 1973년 계약이 틀어지자 독자 노선을 택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현대만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고 정세영 사장은 고유 모델 개발을 추진했다.
자동차산업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한국에서 고유 모델을 만들겠다는 현대차의 계획은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 웃음거리로 여겨졌다. 포니 디자인을 맡았던 조르제토 주지아로마저 처음 디자인 의뢰가 들어왔던 당시에는 허무맹랑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를 일컬어 '달리는 국기'라며 포기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자력으로 수출하는 국가는 그 이미지 덕분에 다른 상품도 덩달아 높이 평가된다는 믿음이 강했다.
정주영·정세영 형제는 1973년 말 주지아로를 한국으로 초대해 울산에서 두 가지 장면을 보여줬다. 먼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땅을 구경시켰다. "여기에 공장을 세울 계획입니다. 당신이 디자인할 자동차는 새로 들어설 공장에서 만듭니다." 제대로 된 공장도 없이 고유 모델을 디자인해달라는 제안에 주지아로는 반신반의했다.
이어 주지아로는 미포만 일대를 둘러봤다. 이곳에서는 조선소 건설공사와 거대한 유조선 건조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당대 자동차 디자인 업계에서 '슈퍼스타' 반열에 올라 있던 주지아로는 포니 디자인을 맡아도 자신의 명성에 흠이 가는 일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현대차는 전 세계 투자자를 찾아다니며 차관을 끌어오거나 영국 최대 자동차회사였던 BLMC 출신 인물을 부사장으로 영입했고 일본 미쓰비시와 기술 제휴를 맺는 등 고유 모델 양산을 위한 준비작업을 숨 가쁘게 진행했다. 현대차는 1976년 1월 포니 양산을 본격화했다. 포니는 시판 첫해에 1만726대가 판매되며 단숨에 국내 시장점유율 1위(43%)에 올랐다. 같은 해 7월 에콰도르 수출을 기점으로 해외로 무대를 넓혀 1986년 2월에는 포니가 미국 시장에 상륙하는 데 성공했다.
포니가 출시된 지 50년 만에, 제네시스가 독립 브랜드로 출범한 지 10년여 만에 탄생하는 GV90은 한국이 명품 자동차 시장에서도 독일·영국·이탈리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GV90에는 해외 초고가 차량에만 적용되던 '코치도어'(1열과 2열 문이 서로 마주 보게 열리는 방식)를 비롯해 각종 첨단기술이 도입된다. 판매가격은 최고 2억원 안팎으로 책정될 전망이다.
현대차의 고급차 명칭에 불과했던 제네시스가 2015년 11월 독립 브랜드로 출범한 것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비전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정의선 회장이 제네시스 프로젝트를 추진한 초기에는 현대차 내부에서도 '대중 브랜드로 시작한 현대차에 럭셔리 브랜드가 왜 필요하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완성차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기술력과 완성도를 갖춘 '명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제네시스 라인업의 마지막 퍼즐이 될 GV90은 2026년 초 양산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김연성 한국경영학회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약진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이 기업의 성장이 곧 한국의 경제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며 "도전에 한계선을 긋지 않고 선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정의선 회장의 모습에서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정신이 계승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울산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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