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5060 "돈없어도 서울 아파트는 안팔아요"

이선희 기자(story567@mk.co.kr) 2024. 9. 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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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세대 서울 아파트 매도
2022년 50%서 올 44%로 뚝
은퇴해도 서울서 경제활동
집값 올라 '똘똘한 한채' 유지
본격 은퇴 70대부터 집 팔아
신도시 신축 아파트로 이동
서울 매물부족 심화할듯

"건강수명이 100세라는데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이 많겠죠. 몇 년을 더 살지 모르니 서울 아파트를 팔 수가 없어요."

서울 양천구 목동에 아파트를 보유한 57세 김 모씨는 지난해 은퇴한 이후 아파트 매도를 고민해왔다. 고정 수입이 없어지니 각종 세금, 건강보험료, 경조사비 지출이 슬슬 부담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집값이 오르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꿔 계속 보유하기로 했다. 김씨는 "노후 준비는 서울 아파트 한 채뿐인데 현금이 없으니 집을 팔까 싶었다. 그런데 요즘 주변에서 (매도를) 말린다"며 "서울 집은 전세를 놓고 외곽으로 이사를 가 생활비를 줄일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 부동산 매도자 중 가장 비중이 컸던 50·60대의 매도가 줄고 있다. 통상 본격 은퇴 시기에 접어드는 50·60대는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 집을 팔고 가격이 낮은 주택으로 이사하는 '다운사이징' 패턴을 보이는데, 서울 부동산을 보유한 50·60대 중 지난 2년간 '매도'보다 '보유'를 택한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은퇴 시기에 도달한 50·60대의 매도 물량이 쏟아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시니어들 사이에서도 서울 부동산 '수요'는 견조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아파트는 가뜩이나 정비사업 지연으로 공급이 위축된 데다 기존 고령층 매도 물량도 줄어 매물 감소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2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서울 부동산 매도자 중 50·60대는 그 비중이 줄어드는 반면 70대는 지속해서 늘고 있다. 서울 부동산 매도자 중 50·60대 비중은 2020년 45.5%, 2021년 47.8%, 2022년 50.2%로 꾸준히 늘었다가 2023년 44.7%, 2024년(7월 말 기준) 44.8%로 2년 전보다 5%포인트 이상 줄어들었다. 특히 60대의 매도 감소가 뚜렷했다. 서울 부동산 매도 거래에서 6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약 23%에서 올해 20.1%로 낮아졌다. 서울 부동산 매도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50대는 2020~2022년 26%대를 유지하다 올해 24.7%로 소폭 줄었다. 반면 70대 이상 매도자는 2020년 10%, 2021년 11%, 2022년 14%, 2024년 15%로 5년간 증가세다. 서울 집합건물 소유권이전등기(매매) 매도인 현황에서 집합건물은 아파트·빌라·오피스텔·상가 등 호실별로 별개 구분소유권이 있는 부동산을 뜻한다.

반면 같은 기간 50~70대의 서울 부동산 매수 비중은 큰 변화가 없었다. 60대는 11.9%에서 11.2%로, 70대는 5%에서 4%로 매수 비중이 줄었다. 오히려 50대는 2년 전 22.5%에서 올해 23.3%로 소폭 매수 비중이 늘었다.

퇴직이 본격화되는 50대는 근로소득이 줄고 소득 구성에 변화가 생기는 변곡점이다. 과거에는 은퇴자들이 집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흐름을 보였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직장은 퇴직해도 50·60대는 계속 일을 찾는다. 실질적 은퇴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 서울에 머물러야 한다"며 "70대는 돼야 자산을 정리하는 '실질적 은퇴'를 할 수 있어 매도가 늘어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해 주택연금 가입 기준이 공시가격 9억원에서 12억원 이하로 완화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주택연금 가입 기준 상향으로 서울 아파트 보유자들도 집을 안 팔고 노후 생활자금을 충당할 수 있게 됐다. 서울 강동구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공시가 12억원 이하면 시세 17억~18억원 아파트도 가입된다. 가진 게 집 한 채뿐인 사람들이 많은데, 주택연금으로 현금 흐름이 생기니 굳이 급하게 팔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50·60대는 서울 집을 팔지 않는 대신 주거비가 저렴한 외곽으로 이사하는 '다운사이징'을 하기도 한다. 박 위원은 "요즘 50·60대는 과거와 달리 도시를 선호하기 때문에 수도권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통계청이 집계한 서울 전출자들의 전입 지역을 살펴보면, 지난 2년간 서울을 떠난 50·60대 4만6035명(순이동자) 중에서 경기도(2만9460명)와 인천(5705명) 등 수도권 전입 비중이 76.4%나 차지했다.

은퇴자들 사이에서는 경기도 신도시에 대한 선호가 높다는 게 분양업계 설명이다. 김포, 양주, 검단 등이다.

교통과 병원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서울 진입이 수월한 지역이 인기다. 교직을 은퇴한 김 모씨는 올해 초 서울 아파트는 월세를 놓고 경기 동탄 신도시로 이사를 왔다. 김씨는 "고향으로 갈까 했지만 시골에서 살 자신이 없었다"며 "집값은 서울보다 저렴하고 인프라가 좋고, 지방으로 다니기 편한 곳을 찾다 보니 경기 남부 신도시를 택하게 됐다"고 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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