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은 누구의 ‘베트남 전쟁’이 되나?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정의길 기자 2024. 9. 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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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각)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거대한 화염이 치솟고 있다. 키이우/ 로이터 연합뉴스
확실한 것은 이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는 속에서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지역이나 주민도 자결 차원에서 처리하고, 우크라이나가 서방과 러시아 사이 완충지대로 남아야 한다.

정의길 선임기자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 살던 러시아계 고려인 나탈리아 서(34)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안산 고려인 마을까지 흘러왔다. 그에게 전쟁의 시작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2022년 2월24일이 아니라 일주일 앞선 2월18일이다. 도네츠크 서쪽 위성도시에 살던 그는 그날부터 우크라이나군의 포화가 몰아쳐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 포화가 2014년부터 지속된 돈바스 내전의 일환이 아니었냐는 질문에 그는 “내전은 훨씬 서쪽 전선에 한정됐고, 삶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는 그 전쟁이 ‘러시아의 침략전쟁’이고, 미국 등 서방에는 러시아의 본능적 확장 야욕을 막는 전쟁이고, 러시아에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하는 ‘특별군사작전’이다. 우크라이나계 주민에게는 ‘조국 수호 전쟁’이고, 러시아계 주민에게는 ‘자치와 독립의 전쟁’이다. 이런 주관을 걷어내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과 러시아의 세력권 전쟁이다. 그 객관적 상황은 지금 러시아에 제2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되느냐, 서방에 제2의 베트남 전쟁이 되느냐는 지점이다.

서방은 러시아 국외 자산의 전면 동결,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봉쇄 등 전례 없는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이 제재는 ‘제재의 역설’을 낳았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국제통화기금(IMF) 집계에도 서방 국가들보다 높은 3% 이상이다. 러시아는 유휴화됐던 중공업이 전시체제로 전환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한 전시 활황을 구가한다. 러시아의 석유·가스 등 에너지 수출은 중국이나 인도 등에 달러가 아닌 해당 국가 통화로 이뤄져, 달러 패권도 흔들린다.

러시아는 중국과 손잡고 이른바 다극화 체제의 형성에 박차를 가한다. 전쟁 이후 글로벌사우스의 부상이 뚜렷하다. 서방의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나 브라질 등이 대러 제재에 불참하고 러시아와 교역을 확대했다. 비서방 신흥 대국들의 모임인 브릭스에 지난해 8월 사우디·이란·아랍에미리트·이집트·에티오피아의 가입이 결정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첫해 11월부터 사실상 러시아의 점령지 굳히기가 시작됐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됐다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흐지부지됐고, 연말부터 러시아가 점령지 굳히기를 위해 완충지대 확장 공세를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6일 러시아의 쿠르스크를 침공했으나, 그 후과는 기존 동·남부전선의 붕괴다. 동부전선의 요충지 포크로우스크가 함락 직전이고, 이는 러시아의 서쪽 진공을 더 가파르게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침공한 쿠르스크를 지키려고 전력을 소모하며, 러시아의 소모전에 더 휘말리고 있다.

미국 1천억달러(약 133조7500억원) 등 서방은 2천억달러가 넘는 군사경제 원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했음에도 이 전쟁에서 사활적인 포탄은, 많으면 10 대 1 수준으로 러시아가 우위다.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공격 이후 양쪽이 상대 영토, 특히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소모전에서 누가 유리할지는 명확하다.

상대 영토 내 에너지 시설 등에 대한 공격은 러시아가 전쟁 첫해인 2022년 10월부터 시작했다. 그 직전인 9월 말에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이 폭파됐다. 당시 서방 쪽은 러시아의 자작극이라고 시사했으나 러시아는 서방과 우크라이나에 상응하는 보복을 다짐했다. 최근 독일은 이 사건이 우크라이나 쪽 소행이라며 폴란드로 도주한 관련자들을 수배했다.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침공 초기에 쿠르스크 원전 근처에서 위험한 포격 공방이 벌어졌다. 러시아가 점령한 자포리자 원전에서도 전쟁 첫해부터 위험한 공방전이 지속됐다. 러시아가 자신이 관할하는 원전을 두고 자해 공갈을 한다고 서방이나 우크라이나는 주장한다.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침공은 향후 협상의 지렛대를 마련하는 시도이나, 러시아의 입장만 강경해졌다. 차제에 러시아는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 전력을 더 소모시키면서, 동·남부 기존 전선에서 약진할 것이다.

이 전쟁에서 확실한 것은 이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지역이나 주민 문제도 해당 지역에 자결권을 주는 차원에서 처리하고,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러시아 사이 완충지대로 남아야 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제2 아프간 전쟁’이라기보다 오히려 서방의 ‘제2 베트남 전쟁’이 될 공산이 크다.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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