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빈 우주항공청장 "발사체 지재권 갈등 적극 중재···벤처 마인드로 뉴스페이스 열것"[특별인터뷰]
IP갈등 해결위해 제도 개선···매칭펀드 등 보완책 마련
'인사가 만사'···더디더라도 제대로 역할 할 인재 뽑을 것
반도체 등 주력사업 연계 '스핀온' 전략으로 시너지 창출
“뉴스페이스(민간 주도 우주개발) 시대에 접어들면서 민간기업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환경 변화에 맞춰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차세대 발사체 기술을 둘러싼 지식재산권(IP)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중재해 ‘윈윈’ 해법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윤영빈(사진) 우주항공청장은 우주청 개청 100일(9월 3일)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2조 원 규모의 차세대 우주발사체(로켓) 사업의 IP 소유 여부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간의 갈등과 관련해 “정부와 기업 모두가 윈윈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갈등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윤 청장은 “앞으로 기업들이 발사체 기술을 갖고 우주 수송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뉴스페이스 전략인데 이를 위해 필요한 IP는 정부 측인 주관 연구기관(항우연)이 가져야 하는 상황”이라며 “반대로 국비로 추진되는 사업을 통해 개발되는 기술의 IP를 (사업비 부담을 하지 않은) 민간기업이 가지는 게 맞는지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발사체 사업은 국비 2조 원을 투입해 2032년 달 착륙선을 쏘아 올릴 고성능 발사체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발사체 제작을 총괄하는 체계 종합 기업으로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민간기업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차세대 발사체 기술과 노하우를 배울 수 있지만 현행법상 이를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IP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뉴스페이스 시대에 민간기업이 신기술을 습득·축적해 미국 스페이스X처럼 우주산업을 주도해달라는 국가 우주개발 사업 참여의 취지와 모순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윤 청장은 “가령 기업이 사업에 참여할 때 매칭펀드(대응 투자) 같은 투자도 함께한다면 IP 요구가 합당할 수 있다”면서 “미비한 제도를 개선하는 등 해결 방안을 종합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양측 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법적 다툼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차세대 발사체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전에 적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덧붙였다.
민간도 투자 등을 통해 사업 지분과 역할을 늘리고 그만큼 더 많은 권리를 갖는 방식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윤 청장의 생각이다. 실제로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민간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F-21 전투기를 공동 개발하고 소유한 전례가 있다. 윤 청장은 “항공 분야가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ADD와 KAI가 기술이전 관련 분쟁을 해결했던 사례를 연구해볼 것”이라고 전했다.
윤 청장은 토종 우주기업들을 육성하려면 우주청도 기업 마인드, 특히 벤처기업의 정체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참여하고 성장할 수 있는 우주개발 사업들을 추진하려면 우주청 스스로가 기업 이상의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윤 청장은 “우주청은 공무원들로 이뤄졌지만 톱다운(하향식)이 아닌 보텀업(상향식) 업무 조직을 지향한다”며 “실무자들이 위에서 정하는 정책을 그대로 수행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정책 아이디어를 발굴해 상부에 제안하고 필요하면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경쟁하며 국내 우주기업을 지원하도록 하는 등 뉴스페이스 시대에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5월 27일 개청 후 100일간 윤 청장이 최우선시한 것은 우주청의 벤처 조직화였다. 그는 “개청 직후 직원들에게 ‘우주청은 도전과 성취의 연속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직원들이 각자 스스로 도전적인 사업을 발굴하라는 취지”라며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끓는 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말고 트렌드를 좇으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우주청이 추구하는 비전과 목표에 걸맞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최대한 인재 풀을 물색하며 신중한 채용 기조를 유지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윤 청장은 “일각에서는 우주청이 아직 모집 정원의 절반가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데 우려를 표하지만 ‘인사가 만사’라는 생각으로 제대로 역할을 할 인재를 찾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불거진 국가 기밀 유출 우려에도 불구하고 비밀취급인가제 같은 보완책을 통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출신 등 해외 전문가 영입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윤 청장은 “미국 국적이 아닌 나사 출신들도 영입이 가능할 것”이라며 “우주청은 물론 산하 항우연과 한국천문연구원도 앞서가는 나사 문화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 청장은 우주청뿐 아니라 국내 산업계 전반에 벤처 문화가 스며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같은 선진국이 한국보다 우주 경쟁력이 뛰어난 것은 막대한 정부 지원 외에도 재사용 발사체 개발로 발사 서비스 단가를 기존에 비해 5분의 1로 낮춘 스페이스X 같은 벤처기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윤 청장은 “글로벌 우주기업 10곳 이상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미 성장한 대기업 외에도 벤처 창업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며 “초중고생 대상 우주 캠프를 운영하는 등 우주청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윤 청장의 우주개발 전략에서 또 하나의 키워드는 ‘스핀온(spin on)’이다. 기존 우주개발은 그 과정에서 얻은 첨단기술로 항공·통신 등 다른 산업을 키우는 낙수 효과, 즉 ‘스핀오프(spin off)’ 전략이 유효했다. 이제는 반대로 6세대(6G) 이동통신을 구현하기 위해 ‘스타링크’ 같은 저궤도 위성통신이 쓰이거나 우주 공간에서 신약과 신소재를 실험하고 생산하는 등 다른 주력 기술을 우주 분야에 응용하는 스핀온 전략이 대세가 됐다는 게 윤 청장의 분석이다. 그는 “스핀온 시대가 10~20년 내 도래하고 관련 시장도 급성장할 것”이라며 “반도체·자동차·배터리·바이오 등 국내 주력산업과 우주산업을 융합할 수 있는 시너지 방안을 발굴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우주청은 100일의 적응기를 끝내고 본격적인 국가 우주개발 전략 수립에 나선다. 조만간 발표될 ‘대한민국 우주탐사 로드맵’에는 150만 ㎞ 밖 전략적 요충지인 ‘제4라그랑주점(L4)’ 탐사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우주청은 또 과거와 현재 한국의 우주 분야 경쟁력을 분석하는 ‘포지셔닝 페이퍼’를 작성 중이며 이를 바탕으로 향후 대응 계획을 정리한 전략 보고서를 올해 말께 국가우주위원회에 보고할 계획이다.
김윤수 기자 soo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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