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집필 내내 뿌연 와사등 닦는 심정이었죠"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9. 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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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효옥' 이윤기문학상 받은 전군표 작가
단종 복위 연루돼 죽은 성삼문
노비가 된 딸의 숨겨진 이야기
고증과 풍부한 상상력이 결합
'前국세청장' 선입견 뛰어넘어
"막히는 대목 하나 풀기 위해
6개월간 뒤적이고 고심해
생전에 책 한 권만 내더라도
그 한 권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1456년 9월 7일자 '조선왕조실록'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성삼문의 아내 차산과 딸 효옥을 운성부원군 박종우에게 주었다(成三問妻次山女孝玉…賜雲城府院君朴從愚)'.

19년 뒤인 1475년 5월 7일, 실록에 '효옥'이 재등장한다. '…차산과 효옥을 석방했다.' 멸문지화를 당했던 성삼문의 처와 자식을 면천(免賤·노비를 면함)했다는 뜻이다. 성삼문이 누구인가? 수양(세조)에게 반기를 들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발각돼 죽은 '만고의 충신'이다.

전군표 작가(70)는 실록을 읽다가 성삼문의 딸 효옥의 이름을 오래 들여다봤다. 최고의 자리에서 최악의 자리로의 전락이 서글펐고, 운명이 애달팠다. 그렇게 쓴 전 작가의 장편소설 '효옥'이 제1회 이윤기문학상을 수상했다. '장미의 이름'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한 문학사의 거목 이윤기(1947~2010)를 기리는 상이다. 지난달 30일 전 작가를 만났다.

"이윤기란 존함이 드높아 겸허히 고사하기도 했던 상이에요. 기쁘지만 조심스럽습니다."

'효옥' 줄거리는 이렇다. 성삼문이 능지처참을 당하고 그의 가문은 부서진다. 삼대를 멸(滅)했지만 그의 딸 효옥은 살아남았다. 다만 노비가 된다. 세조 입장에선 대역죄이니 당연한 국법이었다. 조선 최고의 명문가 충신의 딸이, 반란세력 집안에서 더부살이로 종살이를 시작한 것. 전 작가는 효옥을 다룬 가상의 글을 한 자 한 자 눌러썼다. "가슴이 저릿했어요. 집필 내내 먼지 묻은 와사등을 닦는 심정이었죠. 신의를 지키다 죽은 사람들을 안타까워하고, 같이 눈물 흘리는 마음은 우리네 정신사를 관통했습니다."

실록에 성삼문 딸 '효옥'이란 이름은 딱 두 번 등장할 뿐이고, 다른 정보는 없다. 효옥 삶의 '빈틈'에 전 작가의 상상이 얹힌다. 효옥은 난세의 벽을 밀어 길을 연다. '바둑알'과 '활'을 양손에 쥐고, 결국 세조의 아들 해양대군(훗날 예종)과 흑백의 반상 앞에 앉는다. 세자가 효옥에게 매료됐음을 눈치챈 정희왕후(세조의 왕비)는 효옥 암살을 지시한다. 세자가 역적의 딸을 마음에 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죽음을 피해 남장을 한 효옥은 먼 길을 떠난다. 전 작가의 서사 구성 솜씨는 놀랍다. 막히는 대목 하나를 풀기 위해 6개월을 고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설 '효옥'의 성취는 문장력이다. 필력이 준엄하고, 단어가 적확하다. 간결하고, 맛깔스럽다. '족하(足下)' '모들뜨다' '배래기' 등 예스러운 말들이 339쪽 소설에 적재적소 배치돼 책 읽는 맛을 돋운다. "허구라도 사실 위에서 써야 한다(개연성과 핍진성)고 생각했습니다. 남효온 선생의 '육신전', 이광수의 '단종애사', 문종·단종·세조·예종에 관한 자료도 살폈습니다."

성삼문이 '칼날 같은 언어'로 계유정난에 동조한 신숙주·정인지를 '베어버리는' 제1장은 놀라울 만큼 필력이 대단하다. 또 세조 앞에 꿇은 성삼문이 '전하'가 아닌 "나으리"(종3품 이하에게나 부르는 말)라며 낮춰 부르는 대목에선 양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전 작가는 공무원이었다. 일국의 녹봉을 받는 세무공무원, 국세청장까지 지냈다. 언젠가부터 공무원이 은퇴 후 소설을 쓰는 일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효옥'은 그 편견을 부순다. 소일거리 삼아 써본 소설이 아님이 느껴진다.

역사에 허구를 덧입혀 언어로 표현하는 일과 공무원으로서 숫자와 부딪던 삶을 무형의 저울 위에 올려놓고 견준다면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책 쓰며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글쓰기가 훨씬 어렵다는 걸요. '효옥'에 8~9년을 매달렸는데 역사소설은 극히 피로해요. 하지만 '생전에 한 권의 책만 내더라도 그 한 권을 결코 부끄럽지 않게 써야 한다'는 신념을 지킬 겁니다."

[김유태 기자 / 사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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