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패망 뒤 처음’ 옛 동독 지역에 펄럭이는 극우 정당의 깃발
동·서독 격차와 반이민 정서 파고들며 확산
1일(현지시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지방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1위를 한 것을 두고 독일이 충격에 빠졌다. 이날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옛 동독 지역이며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당)이 초기에 세력을 확장했던 튀륑겐의 주의회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3년 창당한 독일을 위한 대안이 주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중부에 있는 튀링겐은 1927년 나치당이 지역 의회 선거에서 처음으로 당선자를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튀링겐은 옛 동독 지역에 속한 지역으로 독일 통일 직후에는 중도 보수 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 지지율이 높았다. 그러나 옛 동·서독 지역 경제 격차 문제 등으로 인한 불만으로 좌파당과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의 인기가 높아져왔다. 2019년 주의회 선거에서는 좌파당이 29석으로 1위 그리고 독일을 위한 대안이 22석으로 2위였다. 최근에는 반이민과 반이슬람 공약을 선명하게 내건 독일을 위한 대안의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7월에는 튀링겐주 조네베르크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의 후보 로버트 세셀만이 기초자치단체장에 올랐으며, 이 역시 이 정당 창당 이후 첫 성과였다.
튀링겐 지역 독일을 위한 대안의 공동 대표인 비외른 회케(Björn Höcke)는 신나치를 연상시키는 선동적 언사로 독일의 대표적 극우 정치인으로도 꼽힌다. 독일 법원은 지난 5월 그가 나치당 돌격대 구호로 사용됐던 “모두 독일을 위해”(Alles für Deutschland)를 유세 때 사용했다는 이유로 벌금 1만3000유로(1920만원)를 선고한 적이 있다. 독일은 나치 시대 슬로건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8년에 베를린 중심부에 있는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비에 대해 “수치스러운 기념비”라고 발언한 적도 있다.
이번 선거는 옛 동독과 서독 사이 깊은 사회적, 정치적 분열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많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옛 동독 지역 취업자들의 연봉은 옛 서독 지역에 비해 평균 1만3000유로(1920만원) 적은 등 통일 이후에도 경제적 격차가 크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이 틈을 파고들어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및 난민 수용 반대 등을 내걸며 세력을 불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난달 24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졸링겐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도 선거 운동에 적극 활용했다. 용의자가 시리아 출신 망명 신청자이고, 당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는 이 사건 배후에 자신들이 있다고 주장한 점을 들어 “독일에 대한 이민자들의 폭력은 끔직한 ‘뉴 노멀’이 되고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튀링겐주의 주도인 에르푸르트에 거주하는 미카엘은 독일을 위한 대안에 투표했다며 “정치인들은 많은 것 특히 이민과 외국인들에 대해 많을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비비시(BBC) 방송은 보도했다. 그는 “지금 나는 내 정당이 생겼다”고도 덧붙였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이날 선거에서 또다른 옛 동독 지역인 작센주 의회 선거에서도 득표율 31.9%를 차지한 제1야당인 기독교민주연합(CDU)와 근소한 차위로 2위(30.6%)를 했다. 오는 22일 예정된 브란덴부르크 주의회 선거에서도 독일을 위한 대안의 지지율이 가장 높아 1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이 지역도 옛 동독 지역이다.
지난 1월 독일 좌파당에서 나온 자라 바겐크네히트 연방의원이 창당한 ‘자라 바겐크네히트연합(BSW)’이 튀링겐과 작센 주의회 선거 모두에서 3위를 하며 약진한 배경에도 독일 연방 정부에 대한 불만과 반이민 정서가 있다. 좌파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는 자라 바겐크네히트연합은 독일을 위한 대안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중단을 요구하고, 이민과 망명에 강경한 노선을 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극우와 강경 좌파 진영으로 쏠린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양극화된 유권자들이 정치적 극단으로 이동해 중도가 축소되는 서구의 선거 추세를 반영한다고도 전했다.
다만 독일을 위한 대안이 튀링겐주 의회 선거에서 1위를 해도 다른 정당들이 연정을 거부하고 있어 독일을 위한 대안이 당장 주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이번 지방 선거는 다음해 총선을 앞둔 독일의 미래가 바뀌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은 이번 선거 결과를 ‘동독 효과’라고 풀이하면서도, 주 단위를 넘어선 연방 정치에 파장을 미칠 것으로 봤다. 최근 독일 전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독일을 위한 대안은 제1 야당인 기민당에 이어 지지율 19%로 2위를 차지했다.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그리고 자유민주당으로 구성된 독일 연방정부 ‘신호등 연정’은 이번 주 의회 선거로 상당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속한 사회민주당은 튀링겐과 작센에서 각각 6.1%와 7.3% 득표율을 그쳐, 의석 획득 최저 기준인 5% 득표율을 간신히 넘겼다. 숄츠 총리는 선거 뒤 성명을 내어 이번 선거 결과가 “쓰라리다”고 인정했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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