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핌피에 낀 이웃사촌’ 해남-완도…새 고속도로 명칭 ‘갈등’ 예고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4. 9. 2. 16: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칭 ‘광주해남고속도로’ 이름 등장에 완도 정치권·군민 ‘예민’
해남군 “통상 기점~종점 작명원칙에 따라 광주~해남이 맞아”
완도 주민들 “느닷없이 광주~해남이 웬말…기점 완도로 봐야“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바닷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한 전남 완도와 해남은 12년 전  완도대교가 생기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과거 다리 때문에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사이좋은 이웃사촌이 된 두 지자체가 이젠 다리 때문에 '먼 이웃'이 될 판이다. 광주와 전남 완도 사이에 건설되는 고속도로가 완도대교를 못 건너고 노선이 해남 땅에서 끝나면서 도로명을 놓고 완도군과 해남군 간에 한차례 진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해남군-완도군, 고속도로 못 건너가는 다리 때문에 '먼 이웃'되나 

문제의 완도대교(莞島大橋)는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에 위치한 다리다. 완도 본섬과 해남군 북평면 사이에 위치한 달도를 잇는 다리이며 길이는 500m다. 현재도 이용하고 있는 이 다리는 2012년 3월 29일에 국도 제13호선 완도 군외∼해남 남창 도로확장공사가 완공되면서 동시 개통됐다. 

논란은 지금까지 사업 추진과정에서 줄곧 사용돼 왔던 광주~완도 고속도로 대신 기점과 종점을 앞머리에 넣은 '광주~해남'이 후보군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지펴졌다. 개통 시점이 다가올수록 두 지자체가 고속도로 이름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펼칠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선 새 고속도로 명칭 논란이 그간 평화롭게 지내 온 해남과 완도 두 지역 간에 갈등의 불씨가 될 공산이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광주~완도 고속도로 건설 1단계 공사 현장 ⓒ전남도

"광주~완도냐 광주~해남이냐"…'고속도로 명칭' 놓고 마찰 우려  

전남도는 22일 광주~완도 고속도로 2단계 사업이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광주~완도 간 고속도로 2단계 구간은 강진군 작천면에서 해남군 북평면까지 38.9㎞ 구간으로 국비 1조 5965억원이 투입된다. 2028년 착공 예정이다. 

전남도와 해남군, 완도군은 그동안 2단계 구간 조기 착공을 위해 중앙정부에 사업 필요성을 지속 건의해왔다. 그 결과 지난해 국토교통부의 제1차 고속도로 5개년 계획 '중점사업'으로 선정됐으며, 이번에 예타를 통과하면서 고속도로 전 구간 조기 완공에 청신호가 되고 있다. 예타 통과로 광주-완도 고속도로 전 구간 개통이 가능해져 이동 시간이 2시간 10분에서 1시간 10분으로 단축되는 등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광주~완도 고속도로 총연장은 90.01km이며, 3조4000여억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1단계 구간(51.11km)은 광주 벽진동~강진 성전까지로 사업비는 1조7964억 원, 2단계 구간은 강진 성전에서 해남 북평(남창)까지로 사업비는 1조5849억 원이다. 1단계 구간은 2017년 8월 착공해 현재 공정률은 73%로 2026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불씨 던진 해남군 "완도대교 못 건너서 노선 끝나"

불씨는 해남군이 던졌다. 해남군은 도로명 작명 원칙에 따라 기점인 해남과 종점인 광주 두 지역명의 머릿글자를 딴 '해남~광주' '광주~해남' 고속도로로 명명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다. 

해남군은 지난 22일 낸 예타 통과 보도자료에서 제목은 물론 본문 곳곳에서 '광주~해남 고속도로'라고 표기했다. 그러면서 종점부가 해남이기 때문에 명칭도 '광주~해남 간 고속도로(가칭)'로 변경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광주~완도' 고속도로 명칭은 도로명 작명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해남군의 입장이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는 서쪽 또는 남쪽을 기점으로 하므로, 초기에 명명된 경부고속도로나 경인고속도로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서쪽·남쪽에 있는 지명을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대구고속도로'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국토교통부는 2015년 12월 22일 개통식에서 고속도로 작명 원칙에 따라 기존 '88올림픽고속도로'를 '광주대구고속도로'로 도로명을 변경해 확정 발표했다. 예전에는 담양 고서 분기점이 기점이라서 광주시를 경유하지 않아 논란이 있었으나, 재개통하면서 광주시 문흥 분기점까지 연장돼 '광주대구고속도로'란 명칭을 둘러싼 논란이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실제 광주~완도 고속도로 2단계 구간은 강진 성전에서 해남 북평(남창)까지로 완도대교 앞에서 끝난다. 완도대교를 통해 완도군으로 바로 이어지는 점 때문에 언론 기사 등에서 광주~완도, 강진~완도로 자주 나오기도 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행정구역상 해남군 북평면 남창에서 끝난다.

따라서 고속도로 작명원칙에 따른다면 남쪽 시작점(기점)이 해남 북평면, 북쪽 종점이 광주이므로 '해남~광주 고속도로'가 더 적합하다는 것이 해남군의 주장이다. 다만, 도시 규모나 인지도를 감안할 때 광주가 앞머리에 오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광주~완도 고속도로 노선도 ⓒ전남도

완도 주민들 "완도까지 연결 위한 것…해남만의 고속도로 아냐"

반면 완도 정치권과 주민들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의 기본계획 상 완도까지 연결하는 고속도로인 만큼 완도를 실질적 기점으로 봐야하고 따라서 광주완도고속도로가 타당하다는 것이다. 완도군이 아직 신중한 입장이지만 해남군의 도발(?)은 군민들로선 '예민'한 사안이다. 일부 주민들은 지금까지 줄곧 사용돼 왔던 광주~완도 고속도로 이름 대신 느닷없는 광주~해남 고속도로가 웬말이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완도군 한 정치권 인사는 "국토부가 기점과 종점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으나 예외가 얼마든지 있다"며 경인고속도로·제2경인고속도로(동→서), 신대구부산간고속도로(북→남)를 사례로 들었다. 동해고속도로(부산∼울산, 양양∼동해), 중앙고속도로(춘천∼대구), 서해안고속도로도 기점·종점과 관계없이 예외를 적용한 이름이라고 덧붙였다.

한 지역 주민은 "해남군이 지난해 예타 추진과정에서 해남 땅끝까지 연장하려다 실패한 점을 보면 이 고속도로를 놓는 정부의 의도가 광주에서 완도까지 연결하는데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며 "이는 실질적 기점이 완도라는 반증으로, 광주완도고속도로라고 부르는 것이 백번 옳다"고 말했다.

한 고속도로에 두개 이름 '혼란'…"행정구역 기점 vs 실질적 기점"

고속도로 명칭은 지역 홍보나 이미지 제고 측면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민감한 사안이다. 주민들의 자기 지역에 유리한 고속도로 명칭에 대한 선호는 일종의 '핌피(PIMFY)' 현상으로도 받아들여진다. 특히 고속도로 명칭은 신문·방송·지도·내비게이션 등에 반복적으로 등장해 무비용 또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홍보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를 의식하듯 해남과 완도 두 지자체는 이날(22일) 예타 통과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 제목에서 광주~완도, 광주~해남 고속도로 등 서로 다르게 표기했다. 이에 따라 완도군 출처의 기사는 광주~완도 고속도로, 해남군에서 제공한 기사는 광주~해남 고속도로라는 제목이 각각 붙어 송출되는 바람에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완도군과 해남군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 전조로 갈등의 예고로 읽히는 대목이다.    

도로명의 경우 지자체간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한 대립을 야기하는 요소로 꼽혀왔다. 지역 경쟁력이나 이미지 측면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무형의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와 부산외곽순환도로가 대표적이다. 

서울외곽순환도로는 서울보다 경인지역을 타원형으로 지나는 노선임에도 서울이라는 명칭이 붙어 수도권을 서울의 변두리로 여긴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경기도와 인천시의 수차례 명칭변경 요청 끝에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로 개칭이 이뤄졌다. 경남 김해시 기점, 부산시 기장군이 종점인 부산외곽순환도로 또한 기점의 명칭이 빠졌다는 이유로 경남지역 정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동상이몽' 지자체…시험대에 오른 지역 정치권

두 지역 간 의견이 엇갈리자 전남도도 입장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고속도로의 명칭은 사업관리자인 한국도로공사의 검토 후, 최종적으로 국토교통부에서 결정하게 된다. 광주와 완도 사이에 놓아지는 고속도로 명칭을 둘러싼 첨에한 갈등이 예고된 가운데 해남·완도·진도를 지역구로 둔 박지원 의원 등 정치권과 예타 통과 과정에서 굳게 '손'을 잡았던 해남군수, 완도군수가 시험대에 올랐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