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김의 예술법정] AI와 예술가 전쟁의 서막

스스로 상상하고 표현하는 AI
일부 예술가는 적극 활용하나
"작품 무단사용" 반발도 거세
美법원도 "저작권 침해" 판단
AI 둘러싼 법리 다툼 본격화

레픽 아나돌의 미디어아트 한 장면. 그는 AI에 이미지를 학습시켜 스스로 작품을 표현하도록 지시한다. 연합뉴스

2022년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 로비에는 2층 높이의 거대한 화면을 통해 형형색색의 이미지들이 관객을 향해 뛰쳐나올 듯 꿈틀거리는 생명체처럼 끝없이 형태를 바꾸어가며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었다. 인공지능(AI) 미디어 아트를 선구해 온 레픽 아나돌의 작품이다. 그는 모마에 소장된 작품 이미지 아카이브를 AI에 학습시킨 후 오랜 세월 인간이 창조해 온 예술을 기반으로 미래에 있을 예술을 꿈꾸도록 지시했다. 인간의 조작 없이 주변 환경과 관람객의 움직임 등을 실시간 반영해 끝없이 새로운 화면이 생성됐다. 아나돌은 자신이 개입하거나 감독하지 않고 AI가 인간처럼 스스로 '상상'하고 표현하도록 지시했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레픽 아나돌: 감독되지 않은', 부제는 '기계의 환각'이었다.

뜨거운 인기만큼이나 뜨거운 논란이 이어졌다. 인간이 감독하고, AI는 그저 표현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AI가 '주체적으로 창작한 표현물'을 현대미술로 인정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이었다.

예술가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일부는 아나돌처럼 적극적으로 수용해 생성형 AI를 이용해 창작 활동을 하고, 일부는 자신들의 작품이 AI의 '작품 활동'의 재료로 소진되는 데에 맞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초 일단의 시각예술가들은 '스태빌리티 AI' '미드저니' 같은 AI 이미지 생성 시스템이 자신들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대부분의 주장은 기각되었지만 하나의 쟁점이 살아남았다. 지난 8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은 이 회사들이 무단으로 작품 이미지들을 저장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예술가들의 주장이 합리적이며, 문제의 AI 이미지 생성기가 "상당 부분 저작권이 있는 작품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을 수 있으며 "의도적으로 침해가 용이하도록 설계됐다"는 주장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근래 잇따르는 AI 저작권 소송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자 작은 승리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소송이 시작되면 수천만 명이 사용하는 AI 이미지 생성기의 데이터 수집 방식에 대해 조사할 것이다. 그리고 AI 이미지 생성기가 예술가의 작품을 이용하는 것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리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아나돌은 한발 더 나아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거대언어모델(LLM)'을 본떠 자연의 이미지를 학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거대자연모델(LNM)'을 개발했고, 이를 이용해 창작한 작품과 함께 서울을 찾았다. "세상은 클리셰를 넘어 새로운 매체를 개척하는 사람과 함께 변화해 간다." 아나돌의 말이다.

[캐슬린 김 미국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