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향어가 시선을 끌지 않는 마땅한 풍경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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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온 가족이 시내로 나들이를 나갔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딸은 예전만큼 가족 나들이에 함께하지 않는다.
딸은 아들이 소리(반향어)를 내지 못하도록 다그치고 있었다.
아들이 아들에게 당연한 반향어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면, 딸은 딸에게 당연한 사춘기 여자애의 '타인 의식'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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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온 가족이 시내로 나들이를 나갔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딸은 예전만큼 가족 나들이에 함께하지 않는다. 학원 스케줄과 친구들 약속으로 바쁘신 몸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누나까지 함께 외출하자 아들(자폐성 장애)은 신이 났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사건이 발생했다. 뒤따라오던 딸이 아들을 노려보며 다그치고 있었다. “조용히 해.”
딸은 아들이 소리(반향어)를 내지 못하도록 다그치고 있었다. 실내였으면 이해한다. 가끔 아들은 소리를 크게 낼 때가 있어서 실내에 들어가기 전엔 내가 먼저 알아서 “조용조용 말해요”라며 다짐을 받아두곤 한다. 하지만 그곳은 거리 한복판이었다. 게다가 아들이 내는 소리의 크기는 남편에게 말하는 내 목소리보다도 작았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이 쳐다봤단 말이야.”
아들은 “아꾸~찌”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반향어를 중얼거리곤 하는데 ‘낯선 소리’에 옆을 지나는 사람 몇몇이 아들을 흘끔 쳐다본 모양이다.
딸은 세상 사람들이 자기 앞머리만 쳐다보는 줄 아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 마음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기에 아빠랑 같이 앞서 가라고 했다. 일행 아닌 척 앞서가라고. 뒤도 안 보고 가는 딸을 보며 순간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영문도 모른 채 누나랑 같이 가겠다며 달려 나가려는 아들 손을 붙잡고 엄마랑 같이 천천히 가자며 달랬다.
딸은 동생을 사랑하고 예뻐한다. 그렇게 예뻐하는 동생인데 밖에만 나오면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동생이 부끄러운 누나’로 바뀌곤 했다.
당시엔 딸에게 화가 났지만 사실 이건 딸에게 화낼 문제는 아니다. 아들이 아들에게 당연한 반향어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면, 딸은 딸에게 당연한 사춘기 여자애의 ‘타인 의식’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문제’가 발생한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 것일까. 나들이를 계획한 나 자신에게? 아니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 딸에게? 아니면 자폐인으로 태어난 아들에게? 아니면 발달장애인의 말과 행동이 낯설어 흘끔 쳐다본 비장애인에게?
하나씩 따지고 들어가면 누구도 잘못한 게 없다. 그런데도 어떤 문제는 반드시 발생하고, 그렇게 발생한 문제는 발달장애인 가정 안에서만 곪아 터진다.
1980년대 중반, 친정 아빠는 외국 바이어를 만날 때 어린 나를 데리고 다녔다. 이상한 말(외국어)을 하다니. 머리카락 색깔이 노랗다니. 나는 외국인을 흘끔흘끔 쳐다봤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외국인과 함께 생활하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진 덕이다.
나는 발달장애인도 그리될 수 있길 바란다. 발달장애인이 내는 반향어 소리가, 그들이 하는 상동행동이, 타인의 시선을 끌지 않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마땅한 풍경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오로지 타인의 시선 때문에 가족이 가족 구성원을 존재 자체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건 너무나 슬프고 비참한 일이다.
류승연 ‘사양합니다, 동네 바로 형이라는 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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