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한겨레 2024. 9. 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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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엊그제 산엘 갔지요. 수시로 쏟아져 내리는 장맛비에 계곡마다 물이 넘쳐나고 사람 자취는 끊겼습니다. 나는 높은 산꼭대기 커다란 바위에 누워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누워있는 나를 날려 보낼 듯 무섭게 불어대는 바람에, 높이를 달리하는 시커먼 구름들이 서로 엇갈려 달려갑니다. 이 엄청난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정말 보잘 것 없는 나요, 정말 하잘 것 없는 인간 세상이로세.

노자가 이러셨죠.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스스로를 비우기를 지극히 하고 고요히 함을 두터이 하여) 만물병작 오이관기복(萬物幷作 吾以觀其復·만물이 눈앞에 널려져 있으되 나는 그것이 돌아옴을 본다) 부물운운 각귀근(夫物芸芸 各歸根·무릇 만물이 많고 성대하지만 각각 근본으로 돌아간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저 비구름들이며 이 골 저 골 우르렁 거리는 물소리며 바람에 휘몰리는 나무들이며 저 아래 아스라이 보이는 도심의 건물들, 아파트 군락들, 그 안에서 오글대고 있을 사람들. 만물이 눈앞에 한꺼번에 펼쳐져 있되 나는 그것들이 다 근본으로 돌아감을 봅니다.

얼마 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 유세 도중 총알이 날아와 귀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는 역시 타고난 선동꾼인지라 그 와중에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내가 나다”, 자기를 과시하더군요. “스스로 비우기를 지극히 하고 고요하게 지킴을 투터이 하라”는 노자 말씀과는 정반대 삶을 사는 사람인 거죠. 그는 심지어 총알이 귀를 스친 건 하느님이 자기를 도운 거라며 제 논에 물대기까지 하더군요. 그가 지난번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 전세계가 힘들어 했죠.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며 우리나 유럽의 오랜 동맹국들을 마구 대하고 북한과 당장 수교를 할 것처럼 들뜨게 하고는 마지막 순간에 걷어차 버렸지요. 이주민들을 막겠다며 멕시코 국경에 수m 높이의 벽을 건설하기도 했구요. 약자에 대한 배려는 크게 후퇴하고 미국 사회를 증오로 양분시킨 이가 하느님의 도움을 입에 올리는 걸 보며 노자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선생님, 저 이도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만물병작(萬物幷作)이라’, 만물이 근본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수많은 개체로 이 세상에 펼쳐질 때부터 저마다의 차이는 예정되어 있었던 거죠. ‘개체’란 ‘차이’의 다른 말입니다. 물과 불이 다르고, 프란치스코 성인과 트럼프가 다르고, 사자와 사슴이 다르고, 양자와 전자가 다릅니다. 이 차이로 인해 세상은 역동적이 되고 다른 한편으론 갈등과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각 개체들이 제 뜻대로 선택한 게 아닙니다. 트럼프가 바이든과 다른 성격을 스스로 선택해서 나온 것이 아니니 그는 선택의 주체가 아니라 우주와 생명체의 진화, 그리고 유전의 결과물인 거죠. 물론 의지와 지성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그 이후에 교육과 환경에 의해 어느 정도 바뀌는 게 가능하긴 하지만 말이죠.

트럼프고 바이든이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옳다고 여겨 다들 그리 살아갑니다. 근본에서 떨어져 나와 개체가 된 우리 만물들의 운명인 거죠.

나는 사람들이 위인이니 성인이니 하며 지나치게 떠받드는 걸 보면 저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근본’이 그에게 부여한 숙명일 뿐이니 그렇습니다. 위인이나 성인들이 자기를 비우고 이웃에 헌신한, 높이 살만한 점이 있다면 그건 그들을 내신 근본에 영광을 돌릴 일. 우리는 그저 그 위인,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려 애쓰면 될 일. 영광은 그 이들 것이 아니죠.

그런데 트럼프도 바이든도 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알려면 어찌하라구요?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淨篤), 자신을 비우고 고요히 하거라. 개체인 내가 근본에서 떨어져 나왔음을 알고 나의 사심(私心), 이기심, 나만 위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거죠.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 한다는 예수님 말씀, 바로 그거죠.

픽사베이

이렇게 나를 비우고 보면 저 미운 트럼프도 나와 마찬가지로 근본에서 나와 근본으로 돌아가는 내 형제랍니다. 그래서 더 아쉬운 것이 그도 멕시코 국경을 몰래 넘어온 이민자가 트럼프 저와 마찬가지로 같은 근본에서 나와 같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형제임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얼마 전 이슬람교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즘(sufism)을 설명하는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처형당하기 전, 앞에 놓인 십자가와 못을 바라본 후 그는 둘러선 무리에게 돌아서서 다음과 같은 말로 마지막 기도를 했다.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느님, 당신에 대한 열정과 호감을 얻기 위한 열망에 사로잡혀 저를 죽이고자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종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만일 당신이 제게 드러내신 것을 저들에게 보이셨다면 진실로 저들이 제게 행한 것을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만일 당신이 저들에게 감추신 것을 제게도 감추셨다면, 제가 이런 고통의 수난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행하시는 모든 것과 당신이 뜻하시는 모든 것에 영광을 돌리옵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하신 마지막 기도 장면 같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10세기 바그다드에서 순교한 수피즘 신비주의자 알 할라즈의 기도랍니다. 그는 자아가 철저히 사라지면 하느님과 하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슬람 제국의 칼리프 무단통치에 반대하고 하느님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고 주장하다가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붙잡혀 신성모독죄로 십자가의 형을 받았습니다.

알 할라즈는 노자 말씀대로 ‘자신을 비우고 고요히 함으로써’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슬람 성직자들을 위해 기도한 것이죠.

수피즘에서는 이런 기도도 바쳤습니다. “하느님, 만일 제가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신을 섬긴다면 차라리 저를 지옥 불에 태워 없애소서. 만일 제가 낙원에 대한 욕심 때문에 당신을 섬긴다면 저를 낙원에서 쫓아내소서. 그러나 만일 제가 오직 당신의 영광을 위해 당신을 섬긴다면 당신의 영원한 아름다움의 은총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서양의 기독교나 유대교, 이슬람교는 인격신의 틀을 빌어 모든 개체들의 전체로의 회귀를 가르치고 있고, 동양의 노자나 유교, 화엄불교에서는 도(道), 근본, 하늘(天), 리(理)가 우리 개체들을 낳았다고 표현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개체, 세상 만물은 전체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바로 ‘차이’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이 차이들은 근본이신 당신에게서 비롯되었으니 모두 다 한 형제입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트럼프도 내 형제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개체 나의 사심을 버리면 바로 전체이신 당신을 만나 뵈올 수 있고 다른 개체들이 내 형제임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하느님, 저도 알 할라즈처럼 기도할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행하시는 모든 것과 당신이 뜻하시는 모든 것에 영광을 돌리옵니다.”

김형태 공동선 발행인

***이 시리즈는 김형태 변호사가 발행하는 격월간지 공동선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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