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이 웬 바이오산업? "모르는 소리" 선입견 깨겠단 35년 '삼성맨'
윤호열 전남바이오진흥원장은 정확히 35년간 삼성그룹에 몸담은 '삼성맨'이다. 이 중 11년을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근무하며 부사장까지 올랐다. 원·부자재 공급망 구축을 위해 세계를 누볐고, 그 덕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속 mRNA 백신 위탁생산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글로벌 백신 허브로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매출액도 덩달아 '수직 상승'했다.
10년 넘게 바이오산업의 중심에서 활약해 온 그가 전남 바이오산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2022년 4월, 화순전남대병원 개원 18주년 기념 특강을 하면서다. 무엇을 느꼈을까, 그는 불과 8개월 만에 전남도의회 청문회를 거쳐 전남바이오진흥원장에 전격 취임한다.
지난달 28일 CPHI KOREA 행사가 열린 삼성동 코엑스에서 그를 만나 가장 먼저 꺼낸 질문은 "왜 전남을 선택했느냐"였다. 지연도, 학연도, 혈연도 없는 데다 그조차도 까맣게 몰랐던 전남의 바이오산업에 35년간 국내 최고 기업에 몸담은 그가 어떤 매력을 느꼈을지 궁금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남바이오진흥원에 온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화순이 낙후된 지역이라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전남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오랜 시간 체계적으로 실력을 쌓아 온 바이오의 '숨은 강자'였다. 전남은 바이오산업의 전략적 육성을 위해 전문가를 물색해왔고, 나는 공공분야 바이오 정책과 전략 수립에 관심이 있던 차라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됐다.
-어떤 부분이 매력적이었나.
▶전남은 바이오에 '진심'이다. 김영록 도지사와 전남도의 바이오 육성 의지가 대단하다. 전남은 다른 시도와 달리 바이오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이미 2002년 지방 조례로 전남바이오진흥원을 재단으로 설립했다. 지자체 산하 바이오 공공기관 가운데 최대 규모인 200여명이 연간 100여개 기업을 인큐베이팅하고 있다. 특히, 화순을 중심으로 한 '레드 바이오' 산업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화순은 인구 150만명의 광주와에 인접한 배후도시로 정주 환경이 우수하고, 백신과 면역 치료제 분야에서 연구개발(R&D)·임상시험·허가·생산에 이르는 완벽한 전주기를 갖췄다. 지금까지 1조원이 넘는 투자를 통해 '100일 내 백신 개발, 200일 내 치료제 개발'이 가능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매력적이지 않나.
-화순이 지난 6월 국가첨단전략산업 바이오특화단지로 지정됐다. 어떤 변화가 있을까.
▶바이오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기존의 첨단 산업과는 달리 대단위 인프라 조성이 필요하지 않고, 지방 거점 대학과 병원을 중심으로 소규모 자본만으로 창업이 가능하다. 특화단지는 약 100만평 규모로 개발할 예정인데, 수도권이나 타지역과 달리 대규모 단지개발이 용이하고 전력·용수공급 등 인프라가 안정적이고 탄탄하다. 신재생 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이 발달한 만큼 RE100과 같은 글로벌 규제 극복에도 장점이 크다. 이번 특화단지 지정으로 신속한 인·허가, 국가전략기술 관련 사업화 시설 투자, 연구개발에 대한 세액공제, 정부 예산 우선 반영 등의 혜택이 기대되는 만큼 바이오산업 육성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다.
-다른 특화단지와 비교해 화순의 강점이 있다면.
▶화순은 전남대 의대와 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메디컬 클러스터'와 GC녹십자, 전남바이오진흥원 생물의약센터 등 '바이오 클러스터'가 밀접하게 결합한 국내 유일의 특화단지다.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면 임상시험이 필수적인데, 화순전남대병원은 의료진과 인프라를 이미 갖추고 있는 만큼 바이오의약품의 조기 상용화가 가능하다. 전남대 의과대학과 병원이 첨단 지식을 지속해서 공급하고, 임상 경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바이오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안하는 창업가이자 조력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우리(진흥원)도 일찌감치 전남대 본원과 화순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특화단지 육성 방안은.
▶특화단지의 성패는 기업 유치와 창업 활성화에 달렸다는 생각에 진흥원 내 특화단지 사무국을 설치했다. 입주기업인 GC녹십자, 박셀바이오 등의 발전을 지원하는 한편 글로벌 기업인 써모피셔 사이언티픽을 비롯해 포스백스, 대상, 롯데중앙연구소, LG한농, 코스맥스 등 핵심 바이오 기업들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써모피셔 사이언티픽과는 의료기기를 체험·전시·교육하는 테크니컬 센터의 입주 논의가 원만히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과 국내 의료기기 기업 유치를 위해 세금 감면, 투자 보조금 지원 등이 이뤄지도록 기회발전특구 지정도 추진할 예정이다.
-전남을 비롯해 지방은 바이오 인력 채용에 어려움이 크다. 화순전남대병원에서 시작한 '씨앤큐어'는 헤드급 인력 유치를 위해 34평 아파트 제공까지 내걸었을 정도로 인력난이 심각한데.
▶코로나19(COVID-19)를 겪으며 세계적으로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이 부상했고 기술 패권 경쟁은 점차 심해지고 있다. 바이오헬스 제품의 연구개발과 생산을 위한 전문인력 수요도 덩달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산업 인력은 △현장 생산 및 품질관리 △연구개발 △사업과 규제·허가 등 특수 분야로 세분된다. 지금까지 현장 인력 양성에 치중해 구체적인 성과를 거둔 만큼 이제부터 연구개발, 특수 분야 인력 양성에 더 큰 힘을 실어야 한다.
지방 입장에서 기업과 인재 유치는 경제적인 이유를 떠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지방 소멸은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인 것처럼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젊은 층이 지방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산학병연 협업을 통해 소규모 창업이 가능한 바이오 헬스케어가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처럼 보인다. 바이오 특화단지 조성은 지방 주도 균형발전을 이룰 좋은 기회다. 인력과 원부자재 공급망은 바이오산업의 기본 인프라인 만큼 정부가 주도적으로 공급할 책임이 있다. 지방이 자체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전문 인력을 키우고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구체적인 방안은.
▶바이오 기업이 성공하려면 인력, 자금, 기술, 글로벌 네트워크가 모두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바이오는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산업"으로 양질의 전문 인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우선 수도권에 집중된 특성화 대학원을 특화단지 등으로 균형되게 분산 배치하거나 신설할 필요가 있다. 전문인력이 지방에서 근무할 때 근로소득세 감면, 주거시설과 장거리 출퇴근 비용 지원 등 혜택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해외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해 유학, 취업의 문을 넓히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자체 인력 양성 계획은 없나.
▶지난해 지역정주형바이오인력양성 지역혁신플랫폼 사업으로 지역 5개 대학(조선대, 전남대, 목포대, 순천대, 동신대)과 진흥원 생물의약연구센터 등이 참여해 250여명의 교육생에게 바이오 분야 이론과 GMP(제조품질관리기준) 실습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오는 2026년에는 중·저소득 국가의 바이오 인력양성을 위해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원하는 글로벌 바이오 캠퍼스가 화순에 문을 연다. 생물의약센터를 중심으로 곧장 현장에 투입될 수 있게 생산 등 실무 중심의 교육을 진행할 예정으로, 이를 통해 국내·외 교육생 등 1000명 이상의 관련 인력을 배출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전남 바이오 헬스케어의 미래를 그린다면.
▶전남 화순이 100만평의 바이오 특화단지로 성장하면서 광주의 인공지능(AI), 의료기기 산업과 광역형 클러스터로 결합해 새로운 첨단의료복합단지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바이오 의약품, 천연물 관련 기술이 의료기기와 융복합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먹거리를 기반으로 치료·치유·관광을 연결한 '블루 바이오'의 새 장을 전남이 열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지금이 전남 바이오 헬스케어가 도약할 새로운 전환기다. 나도 진흥원의 200여명의 '동료'와 함께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윤호열 원장은
△2023~전남바이오진흥원장 △2023~전라남도 지방시대위원회 위원 △2021~2022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경쟁력강화위원장 △2021~2022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사장 △1986 삼성그룹입사 △뉴욕주립대 기술경영 석사 △부산대 화학과 학사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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