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갈수록 치열…형제·모녀의 치고박기 계속

허지윤 기자 2024. 9. 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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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한미약품 이사회서 임종윤 대표안 부결
한미약품 독자경영 탄력, 형제 경영권은 위기
임종윤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 사내이사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사진은 지난 3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촬영됐다. /임종윤 이사 측 제공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창업주 일가의 형제와 모녀 간 분쟁이 격화하고 있다. 지주사와 핵심 사업회사의 이사회를 거치면서 주도권이 계속 양측을 오가고 있다. 각자 정당한 경영이라고 주장하지만 회사 발전과 무관한 개인 이익만 따진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양측에 선 직원들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도 있다.

한미약품 창업자 고(故) 임성기 선대 회장의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 사내이사는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한미타워에서 열린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박재현 대표이사를 사임시키고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는 안건을 올렸으나 통과시키지 못했다.

이날 박재현 대표는 사임 위기를 넘겼으나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와의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시장에서는 창업자 일가의 갈등이 한미사이언스와 핵심 사업회사인 한미약품의 갈등으로 번져 기업 경쟁력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약품, 독자 경영 체제에 힘 실려

이날 이사회에서 박재현 대표이사의 해임안과 장남 임종윤 이사의 대표이사 선임안이 부결됐다. 이번 결과는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현 이사회 구도가 7대 3 수준으로 형제와 대척점에 있는 대주주 3자 연합(모녀와 신동국 회장)에 우세하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앞서 올해 초 임종윤·종훈 형제가 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 이후 자신들을 포함해 4명을 새로 이사로 선임해 6대 4로 경쟁했다. 한두 사람만 입장을 바꾸면 형제 측도 겨룰만 한 구도였다. 하지만 신동국 회장이 당시 형제와 손을 맞잡았다가 이후 임성기 회장의 배우자와 딸인 모녀와 3자 연합을 구성하면서 7대 3으로 이사회 지형이 모녀 측으로 크게 기운 상황이다.

이번 이사회 결과에 따라 박재현 대표가 선언한 독자경영 체제 강화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현재 한미약품은 지주사에 위임했던 인사·법무 업무를 신설 조직에 이관하는 독자 경영 수순을 밟고 있다. 앞서 박 대표는 지난 28일 한미약품에 인사팀과 법무팀을 신설한 데 이어 29일 한미사이언스의 종속회사로서가 아닌 한미약품만의 독자적 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미약품 이사회 멤버이자 감사위원장인 김태윤 사외이사는 “전문경영인 체제는 한미뿐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기준)에 걸맞는 경영을 하는 회사라면 당연히 지향해야 할 목표이자 비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미약품은 매 분기마다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임직원 모두 세계 최고의 연구개발(R&D) 중심 제약회사를 지향한다”며 “회사 안정적 경영을 이루고 거버넌스(지배구조)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면에서 오늘 이사회 결의가 의미가 있다”고 했다.

반면 모녀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형제는 경영권 장악에 실패할 위기에 빠졌다. 앞서 올해 초 지주사 이사회의 표 대결에서 승리한 임종윤·종훈 형제는 지주사 한미사이언스는 동생이 대표이사를 맡아 이끌고 한미약품은 형이 대표이사직을 맡아 이끌겠다는 계획을 공언한 바 있다.

그래픽=손민균

◇창업주 일가가 기업 경쟁력, 주주 가치 훼손

현재 한미약품의 대주주는 지분 41.42%를 보유한 한미사이언스다. 이어 국민연금(9.27%),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7.72%)이 주요 주주다.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신동국 회장과 송영숙 회장, 임주현 부회장 모녀의 우호 지분이 약 48%로 형제측 지분을 웃돈다.

모녀와 형제는 경영권 분쟁뿐 아니라 상속세 해결 희비도 엇갈린 상황이다. 지난 7월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은 한미사이언스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두 모녀의 한미사이언스 지분 6.5%를 매수하는 주식매매계약과 공동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약정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에 따르면 오는 3일 주식 매매 거래가 진행된다. 앞서 모녀는 신 회장과의 지분 매매거래로 모녀의 상속세 문제는 해결된다고 했다. 반면 형제는 상속세 재원 마련 해법을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선 창업주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기업 경쟁력과 일반 주주들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익명을 요구한 A증권사 연구위원은 “이 회사의 경영권 갈등 잡음이 나올 때마다 주가가 영향을 받고 있다”며 “이는 곧 개인 주주들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다 오너 리스크에 따른 불확실성이 국내 제약 산업과 시장에 대한 평가와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권 갈등으로 불거진 그룹 내부 분열이 기업 경쟁력을 훼손할 것이란 우려도 잇따른다. B제약사 관계자는 “임직원간 신뢰와 결속력이 기업 발전에 매우 중요한데, 한 지붕 아래에서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으니 안타깝다”며 “또 리스크가 있다 보니 투자 유치와 인재 영입 등에도 걸림돌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약품도 현재 추진 중인 신약개발과 국내 영업, 수출 등 다양한 사업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했다. 회사는 이번 이사회 결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한미’를 위한 사업 추진에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한미를 성원해 주고 계신 주주님들께 보답할 수 있도록, 혼란한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고 본연의 사업에 매진하겠다”며 “창업 회장님 타계 이후 벌어지는 여러 혼란한 상황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도록 대주주들과도 긴밀하게 소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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