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불참 속 '최장 지각' 개원식···우원식 "尹에 개헌 대화 제안"
22대 국회가 지난 5월30일 임기를 시작한 이후 95일 만에 개원식을 열며 역대 '최장 지각' 개원이란 부끄러운 기록을 세웠다. 1987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불참한 채 이뤄진 2일 개원식에서 입법부 수장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정부를 향해 "국회를 존중하지 않고 국정운영에 성과를 낼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날 우 의장은 대통령에 개헌 대화를 하자고 촉구했다. 또 21대 국회에서 진전시켰던 연금개혁 논의를 이어갈 것, 다원적 정당체제를 만들 것, 기후와 인구위기에 전면 대응할 것 등을 제안했다.
국회는 2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22대 국회 개원식을 열었다. 지난 5월30일 22대 국회가 출범한 지 95일 만에 개원식이 열린 것이다. 종전까지 역대 가장 늦은 국회 개원식을 기록한 것은 21대 국회였다. 당시 국회는 2020년 5월30일 임기를 시작한 지 48일 만인 7월16일 개원했었다.
당초 22대 국회는 지난 7월5일 개원식을 열 예정이었지만 여야 대치로 보류됐다. 당시 국회 대정부질문 기간 중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야권 주도로 상정·표결 처리되자 여당과의 관계가 급랭했고 여당은 개원식 불참을 선언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에 개원식에 불참할 것을 요청했다.
이런 가운데 우 의장은 지난달 28일 의장 및 여야 원내대표 회동 자리에서 양당 원내대표를 향해 정기국회 개원식을 9월2일 열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9월 정기 국회를 앞두고 개원식을 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박태서 국회의장실 공보수석은 "우 의장은 국회가 시작하는데 있어 의원 선서, 개원식도 없이 계속해서 나가는 데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여당은 국회 개원식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개원식에 불참키로 했다. 대통령실은 특검과 탄핵을 남발하는 국회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국민권익위원회 국장급 간부 사망 사건을 두고 "김건희·윤석열이 죽인 것이다. 살인자다"라고 발언한 뒤 사과하지 않은 것도 대통령 불참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 따르면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출범한 제 6공화국 체제에서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사례는 없다. 다만 1987년 이전인 5·7·10대 국회 개원식에 대통령이 불참한 전례는 있다.
대통령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이날 국회 개원식은 시작한지 약 45분 만에 종료됐다. 야권은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대통령을 향해 비판을 내놨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실은 국회 상황을 핑계대는데 멈춰선 것은 국회가 아니라 국정"이라며 "윤 대통령의 개원식 불참은 국민과 담을 쌓고 오직 자신의 갈 길을 가겠다는 오만과 독선의 발로다. 거부왕 대통령의 국민 거부, 국회 거부에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은 대통령 포기 선언"이라며 "대통령 먼저 협치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 리더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이날 우원식 의장은 개원식에 불참한 윤 대통령을 의식한 듯 정부를 향해 "책임있는 자세, 진전된 자세를 보여달라 요청한다"며 "거듭 강조한다. 국회를 존중하지 않고 국정 운영에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야당 의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지기도 했다.
우 의장은 이날 개원사를 통해 "제 22대 국회는 오늘 임기 첫 정기국회 시작과 함께 뒤늦은 개원식을 한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며 "개원식은 국회와 국회의원의 존립 근거가 헌법과 국민, 국익에 있다는 것을 되새기고 다짐하는 자리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국민께 드리는 약속이자 국회법상 의무인 국회의원 선서를 이제야 했다.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우 의장은 "누적되고 구조화된 갈등은 대화하고 타협하는 의회정치를 위협하고 있다. 당면한 과제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그것을 해결하라는 것이 22대 국회를 구성한 민심"이라며 "민심의 목소리를 입법에 반영하고 정부에 전할 책임이 국회에 있다. 22대 국회의 임무를 정하는 것은 22대 국회를 구성한 민심이고 22대 국회는 그에 따라 입법부로서의 책무를 분명히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그러면서 개원식에 참석한 의원들을 향해 △당장 민생부터 끌어 안을 것 △묵은 과제를 해결할 것 △미래로 가는 길을 열 것 등 세 가지를 당부했다.
우 의장은 민생 문제 관련해서 "의정갈등이 낳은 의료공백이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며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다. 국회 관련 상임위가 중심이 되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현장의 악화 속도가 더 빠른 것이 사실이다. 여야 정당의 대표들이 논의를 시작한 것을 환영한다. 더 나아가 정부, 여야 정당, 의료관계인, 환자와 피해자가 한자리에 모여서 작심하고 해법을 찾아 보자"고 했다.
우 의장은 이어 전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년 만에 여야 대표 회담을 진행한 것을 거론하고 "반가운 소식"이라며 "가계와 소상공인 부채 부담 완화나 육아휴직 확대는 지난 총선에서 여야가 함께 공약한 과제이기도 하다. 양당 대표가 신속한 추진에 합의한 딥페이크 성범죄 강력 대응, 폭염 등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전기차 화재 대응과 안전대책, 티몬·위메프 대규모 정산 지연 등도 국회의 역할이 시급한 민생 현안"이라고 했다.
이밖에 묵은 과제 해결을 위해 개헌, 정치개혁, 연금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여야 정당에 재차 제안한다. 개헌의 폭과 적용 시기는 열어놓되 개헌 국민투표는 늦어도 내후년 지방선거까지는 하자"며 "대통령께도 다시 한번 개헌 대화를 제안한다. 대통령의 결단으로 막힌 물꼬를 틀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 의장은 끝으로 "미래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며 "22대 국회를 기후국회로 만들자. 입법과 정책으로 기후 대응의 길을 열고 국회 조직의 친환경 실천으로 기후 행동을 확산시키는 국회를 만들자"고 했다. 최근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난 것을 두고 "2026년 2월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지체없이 국회 기후특위를 설치하자"고도 했다.
아울러 "인구전담부처 신설에 국회가 능동적으로 나서자고 제안한다"며 "인구정책의 수립·총괄·조정·평가가 실효적으로 되게끔 해야 한다. 전담부처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을 서두르고 정부 부처를 소관할 국회 위원회 구성도 본격화하자"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이어 "정치가 국민께 큰 걱정을 끼치고 있다"며 "국민의 신뢰를 얻기에는 지금 국회의 모습이 크게 부족하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멈추지 않겠다. '국민을 지키는 국회, 미래로 나아가는 국회'의 사명을 온 힘을 다해 실천하겠다. 국민 여러분이 곁에서 국회를 느낄 수 있게 국회 담장을 넘어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덧붙였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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