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유플러스 휴대폰 판매왕은 고려인…이주민이 바꾸는 통신시장
“즈드라스부이체, 쳄 마구 밤 파모치(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긋한 인사로 시작된 휴대폰 개통 상담 내용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스마트폰이 진열된 매장 풍경과 벽면의 통신사 로고 모두 익숙했지만, 대화가 러시아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시 번화가인 온양온천시장에는 충남 지역 LG유플러스 대리점의 매출 1위 매장이 있고, 그 매장에는 역시 매출 톱을 놓치지 않는 ‘판매왕’이 있다. 그 주인공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고려인 4세 강알레이샤씨(31). 지난달 29일 매장에서 만난 강씨는 영업 노하우를 묻는 질문에 “그냥 열심히 일하고…. 동료들이 많이 도와줘요”라며 판매왕답지 않은 수줍음을 보였다. 강씨 옆에 있던 김수종 팀장이 거들었다. “알레이샤는 이주민 커뮤니티의 ‘롤모델’이에요. 알레이샤가 자리잡은 걸 보고 대리점에서 일하게 된 외국인이 9명이나 될 정도라니까요.”
아산시 휴대폰 판매왕의 정체는
260만명을 넘어선 국내 체류 외국인이 포화 상태인 통신 시장의 ‘새로운 기회’로 떠오르고 있다. 뺏고 뺏기는 국내 고객과 달리 외국인은 말그대로 신규 고객이다. 국내 이주민 밀집지역으로 서울 서남권이나 경기 안산시 정도를 떠올리지만, 이미 공단 지역에는 이주민 거주지가 여럿 형성됐다.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현대자동차 사업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산업단지가 형성된 아산시도 그중 하나인데, 러시아·중앙아시아 출신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고려인 마을이 있는 신창면은 인구 3만여명 중 1만명이 외국인일 정도다. 강씨가 일하는 온천시장점도 내국인과 외국인 고객 비율이 반반 정도라고 한다.
모스크바대학 출신인 강씨는 2015년 한국으로 이주한 뒤 제한적인 일자리에 답답함을 느꼈다. 스마트폰을 개통하러 우연히 들른 LG유플러스 매장에서 러시아 손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통역 일을 자처하며 일을 시작한 지가 올해로 8년. “외국인도 젊은 사람들은 아이폰이나 갤럭시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좋아하고, 나이 든 분들은 중저가폰을 써요. 한국인이랑 다르게 인터넷TV를 많이 찾아요. 러시아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연결해서 볼 수 있거든요.”
이주민들은 은행이나 병원 업무를 보려면 돈을 내고 대행 업체를 통하는 경우도 있는데, 강씨는 각종 잡무를 흔쾌히 처리해줬다. 이주민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타며 “스마트폰 사려면 알레이샤를 찾아가라”는 말이 당연해졌다. 직원 8명인 이 매장에서 강씨의 매출 기여도가 40%에 달한다고 한다.
이 지역 LG유플러스 대리점을 운영하는 홍신석 에프원 대표(42)는 “이전부터 외국인 고객은 있었지만, 외국인 직원을 둘 엄두를 못 내다 강씨가 성과를 거두면서 외국인 채용을 늘리게 됐다”며 “외국인들은 통신 상품이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말이 통하면 신뢰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 매출의 외국인 비중이 20%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주민이 바꾸는 통신 시장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61만6007명으로 총인구의 5%를 넘어섰고, 올해 7월까지 외국인 입국자는 945만5196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4% 증가했다. 소비자와의 접촉면이 넓은 통신사들은 이러한 변화를 사업에 반영하고 있다. 지난 7월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은 사내 임원 워크숍에서 “인구 감소는 통신 시장에 위기이지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시장에서는 여전히 기회가 있다”고 했다.
LG유플러스의 경우 올해 1~7월 외국인 상담 서비스 이용 건수가 총 2만4857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했다. 특히 영어 외에 새로 추가된 러시아어, 베트남어, 중국어 상담 건수는 같은 기간 각각 155.4%. 71.6%, 58.7% 늘었다.
외국인 직원도 올해만 60명을 채용하면서 113명으로 늘었다. 눈에 띄는 부분은 기존 비중이 크던 중국 외에 우즈베키스탄·러시아·몽골·우크라이나 등으로 국적이 다양화하고, 이들 직원의 일터도 김포·광주·목포·제주 등으로 확장됐다는 점이다. 전체 외국인 개통자 순위도 중국, 미국에 이어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가 3, 4위를 차지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외국인 전문 상담 언어를 늘리는 동시에 외국인 전용 고객센터 애플리케이션(앱)도 출시했다. 지난달에는 장기 약정 없이 6개월·12개월만 쓸 수 있는 ‘선불 인터넷’을 출시했는데, 단기 체류 외국인을 겨냥한 것이다. 서울 강남역·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여행 캐리어를 무료로 보관해주는 ‘틈러기지’ 서비스도 외국인을 잠재 고객으로 타깃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SK텔레콤은 13개국 언어를 지원하는 인공지능(AI) 통역 솔루션 ‘트랜스토커’를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도입했다. KT는 지니TV 다국어 자막 서비스에 몽골어와 러시아어를 추가해 제공 언어가 12개로 느는 등 통신사들의 크고 작은 외국인 대상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외국인 고객의 통신 수요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판단해 지난해 기존 외국인 서비스TF를 외국인서비스팀으로 정식 편재해 국내 체류 외국인 고객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외국인 상담 서비스 내용을 시장 조사와 고객 소통 창구로 활용해 외국인 니즈(요구)에 최적화된 서비스와 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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