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 "개헌 국민투표, 늦어도 내후년 지방선거까진 하자"
1987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불참한 채 국회 개원식이 열린 가운데 우원식 국회의장은 정부를 향해 "책임있는 자세, 진전된 자세를 보여달라 요청한다"며 "거듭 강조한다. 국회를 존중하지 않고 국정 운영에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22대 국회 개원식 겸 개회식'에서 22대 국회 개원사를 통해 "제22대 국회는 오늘 임기 첫 정기국회 시작과 함께 뒤늦은 개원식을 한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 의장은 "개원식은 국회와 국회의원의 존립 근거가 헌법과 국민, 국익에 있다는 것을 되새기고 다짐하는 자리"라며 "이유가 무엇이었든, 국민께 드리는 약속이자 국회법상 의무인 국회의원 선서를 이제야 했다.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우 의장은 "동시에 오늘의 이 개원식이 22대 국회의 첫 3개월을 돌아보고 자세와 각오를 가다듬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간곡히 바란다"며 "많은 갈등이 있었다. 갈등을 키우는 구조적 요인도 있다. 그러나 갈등하고 대립하는 속에서도 할 일은 하는 것이 정치"라고 했다.
이어 "그래서 정치를 두고 예술이라고 하지 않나.지금 우리 국회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라볼 곳이 어디인지, 국회가 발 딛고 설 곳이 어디인지 근원적인 성찰을 요구받고 있다"며 "이 무거운 물음에 답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했다.
우 의장은 "의장을 포함해 300명 국회의원은 국회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국민의 평가를 받는다"며 "의장부터 거듭 다짐한다. 항상 국민을 먼저 생각하겠다. 갈등이 깊을수록 국민의 눈으로 보고 해법이 어려울수록 국민의 목소리를 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삶이 모여 대한민국을 만든다. 국민이 느끼는 자긍심이 나라의 품격이고 국민이 펼치는 열정이 사회의 활력"이라며 "국민이 겪는 아픔과 절망에 대한 응답이 우리의 내일"이라고 했다.
이날 우 의장은 22대 국회 개원식에 초대받은 제헌국회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김상덕 위원장의 자제인 김정륙 선생, 최연소 참석자이자 환경기본권 헌법소원을 낸 아기 기후소송단의 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 학생 등을 직접 호명했다.
이밖에 "기술혁신과 연구개발 현장에서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를 개척하는 분들이 오셨다"며 "세월호·이태원 등 사회적 참사와 산재, 전세사기를 비롯한 사회적 재난의 피해자 가족, 중소기업인, 중소상인 자영업자, 노동자, 장애인 노동자들도 오셨다. 소방관과 경찰관, 국회공무원과 공무직 노동자 등 공공부문과 의료현장 종사자들도 계신다. 헌신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우 의장은 "나라 안팎의 상황이 정말 어렵다"며 "가속화되고 있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 경제와 외교의 공간이 줄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치러지는 선거와 끝나지 않은 전쟁이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흐름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경제의 큰 불안 요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으로는 고금리 고물가 내수부진이 국민의 삶을 흔들고 있다. 구조적 저성장과 양극화,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기후와 인구, 디지털전환과 기술융합 같은 새로운 도전이 우리 사회의 역량을 시험하고 있다"며 "누적되고 구조화된 갈등은 대화하고 타협하는 의회정치를 위협하고 있다. 당면한 과제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그것을 해결하라는 것이 22대 국회를 구성한 민심"이라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적용하는 삼권이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조화롭게 융합해야 국민의 삶이 편안해진다"며 "어느 하나가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거나 권한이 집중되면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국민의 권리가 침해당한다. 좀 불편하더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잘 경청해야 한다. 국회도, 정부도 제일 앞자리는 민심이다. 민심에 가장 닿아있는 국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정부가 성공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했다.
또 "민심의 목소리를 입법에 반영하고 정부에 전할 책임이 국회에 있다"며 "22대 국회의 임무를 정하는 것은 22대 국회를 구성한 민심이고 22대 국회는 그에 따라 입법부로서의 책무를 분명히 해나가야 한다. 특히 전반기 국회의장은 그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강조해서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날 우 의장은 개원식에 참석한 의원들을 향해 세 가지를 당부했다. △당장 민생부터 끌어 안을 것 △묵은 과제를 해결할 것 △미래로 가는 길을 열 것 등이다.
우 의장은 "수출이 늘고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있다지만 민생과 체감경기는 다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며 "지난해 폐업한 사업자가 100만에 육박한다. 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국민 80%가 앞으로 경기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조차 품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 "의정갈등이 낳은 의료공백이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일인데 국민이 겪는 현실은 의사 없는 병원"이라며 "응급환자가 응급실을 찾아다니다가 목숨을 잃고 지금은 아프면 안 된다는 국민의 불안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응급의료 현장에 남아있는 의료인조차도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부는 비상 의료체계가 원활하다고 한다.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크게 다르다. 정부는 더 현장 속으로 들어가서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우 의장은 이어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다"며 "국회 관련 상임위가 중심이 되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현장의 악화 속도가 더 빠른 것이 사실이다. 여야 정당의 대표들이 논의를 시작한 것을 환영한다. 더 나아가 정부, 여야 정당, 의료관계인, 환자와 피해자가 한자리에 모여서 작심하고 해법을 찾아 보자"고 했다.
우 의장은 "어제, 11년 만의 여야 정당 대표 공식회담에서 민생공동공약 추진을 위한 협의기구를 구성하기로 했다. 반가운 소식이다. 큰 틀의 방향과 의제에 합의한 만큼 이제 국회가 입법으로 구체화, 현실화해야 한다"며 "가계와 소상공인 부채 부담 완화나 육아휴직 확대는 지난 총선에서 여야가 함께 공약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미 많은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고 했다.
또 "양당 대표가 신속한 추진에 합의한 딥페이크 성범죄 강력 대응, 폭염 등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전기차 화재 대응과 안전대책, 티몬·위메프 대규모 정산 지연 등도 국회의 역할이 시급한 민생 현안"이라며 "여야가 공히 약속한 일부터 신속하게 해나가면서 민생을 끌어안는 국회를 만들어가자고 요청한다"고 했다.
이어 "근본적으로는 불공정한 경제구조를 개선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일하는 국민 대다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제적 약자 처지에 놓여있다"며 "중소기업, 자영업자, 가맹점, 대리점, 플랫폼입점업체, 취약노동자 같은 경제 주체들에게 대등한 교섭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우 의장은 묵은 과제 해결을 위해 개헌, 정치개혁, 연금개혁이 필요하다고 보고 "필요한 것은 논의의 숙성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개헌에 대해서는 여러 기회에 말씀을 드렸다. 현행 헌법을 만들고 무려 37년이 지났다"며 "그간의 변화를 반영하고, 앞으로 변화해야 할 길을 만들지 못해 현실은 길을 잃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개헌 논의만 반복하다가 또 제자리에 멈추는 일은 끝내야 한다. 본격적인 대선국면으로 들어서기 전 22대 국회 전반기 2년을 그냥 보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야 정당에 재차 제안한다. 개헌의 폭과 적용 시기는 열어놓되 개헌 국민투표는 늦어도 내후년 지방선거까지는 하자"며 "정치적 오해에서 벗어나 개헌을 성사시킬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다. 본격적으로 상의하자"고 했다.
아울러 "대통령께도 다시 한번 개헌 대화를 제안한다'며 "대통령의 결단으로 막힌 물꼬를 틀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 의장은 또 "정치개혁, 특히 선거제도 개혁도 지금 해야 한다"며 "비례성과 대표성, 다양성이 강화되는 선거제도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득표율이 의석수로 온전히 반영되고 다양한 민의를 포용하는 다원적 정당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어 "연금개혁이 어려운 과제임은 틀림없다"며 "소득보장도 늘려야 하고, 지속가능성도 높여야 한다. 미래세대의 부담에 기댄 채로 제도를 운용해서도 안 된다.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지난 21대 국회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여야가 보험료율 인상 폭에 사실상 합의했다"며 "소득대체율에 대한 시민의 선호도 확인했다. 그간의 과정, 어렵게 만든 결과를 원점으로 돌리지 말고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우 의장은 이날 "공영방송제도 정비도 22대 국회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정부·여당과 야당이 각각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과 방송 4법 입법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큰 충돌이 있었다"며 "정치적 결단으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멈춰 서게 됐다. 법원의 판단과 대통령의 거부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회 스스로 결정했어야 합니다. 매우 아쉽다"고 했다.
이어 "이제 남은 것은 다시 합리적인 공영방송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지난 정부에서 기회를 놓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일은 더욱 아니다"라며 "방송 공정성과 독립성, 공익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법안을 만들고 방송을 주인인 국민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국회가 해야 한다. 여야 정당과 언론 종사자, 언론학자, 시민사회 등이 고루 참여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합의안을 만들어보자. 필요하다면 대화 테이블을 여는 것도 의장이 감당하겠다"고 했다.
우 의장은 끝으로 "미래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며 기후위기, 인구위기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때 이르게 찾아와 여름내 혹독하게 겪은 폭염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 재산과 생업을 앗아갔다"며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노력이 RE100, 탄소국경세로 이어지면서 에너지 전환이 기업의 국제 경쟁력과 생존을 좌우하게 됐다. 국내 재생에너지 인프라 부족으로 수출기업 사업장 상당수가 해외로 이전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초등학교 폐교 소식이 이제 대도시에서도 들린다. 이대로 가면, 50년 후에는 인구가 지금의 절반, 1960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며 "학령·생산인구 감소와 초고령화, 지방소멸이 국민의 일상을 바꾸고, 산업생태계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뿌리부터 흔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 의장은 해법으로 "먼저, 22대 국회를 '기후국회'로 만들자"며 "입법과 정책으로 기후 대응의 길을 열고 국회 조직의 친환경 실천으로 기후행동을 확산시키는 국회를 만들자는 제안"을 내놨다.
이어 "지난주 현행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났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26년 2월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현재 공백 상태인 2031년부터 탄소중립 목표시점까지 연차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복잡한 이해관계, 예측하기 힘든 장기경제전망을 넘어 세대정의에도 부합하고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안을 만드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체 없이 국회 기후특위를 설치하자"며 "공감대는 이미 넓다. 특위에 법안심사권과 예결산심의권을 부여해 실질적 변화를 이끌 위원회로 만드는 것까지 여야의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우 의장은 "'국회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하고 있다. 국회의 현재 온실가스 배출상황을 파악하고 연차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겠다"며 "22대 국회에서 착공하게 될 세종의사당을 에너지자립을 통해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기후국회의 상징으로 건립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시길 기대한다"고 했다.
또 "인구전담부처 신설에 국회가 능동적으로 나서자고 제안한다"며 "저출생에는 다양한 사회 경제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출생률 대책만으로는 이미 벌어진 인구문제에 대응할 수도 없다.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높다"고 했다.
우 의장은 "국회에 관련 법안도 여러 건 발의됐다"며 "무늬만 전담부처가 아니라 실질적인 범정부 컨트롤타워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인구정책의 수립·총괄·조정·평가가 실효적으로 되게끔 해야 한다. 전담부처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을 서두르고 정부 부처를 소관할 국회 위원회 구성도 본격화하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인과 혁신창업가들이 신명 나게 일하고 공정하게 보상받는 경제생태계를 만드는 데 국회가 입법과 예산으로 힘을 실어야 한다"며 "예산은 연구개발(R&D)라는 용광로의 연료다. 한번 불이 꺼지면 다시 온도를 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지난해 R&D 예산이 대폭 줄었다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비효율은 없는지, 과학기술과 미래산업을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는지 꼼꼼히 살펴야 하겠다"고 했다.
우 의장은 "기후, 인구, 인공지능 모두 우리의 대응 여하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갈등요소도 적잖다"며 "국회와 정부가 협력하고 사회적 합의까지 만들어가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정당을 초월해 사회적 대화로 힘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우 의장은 아울러 "민생국회가 의원 여러분의 성과"라며 "민생·미래의제가 정쟁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총력대응체제를 구축하다. 국회 입법지원기구 간 정책 현안 공동대응체계를 만들고 기구 간 중복과 분산을 막기 위해 주요 의제별 콘트롤타워를 세우겠다. 의정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또 "개혁국회가 의원 여러분의 성과"라며 "생산적인 국회운영과 적극적인 국회협치를 위해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개선과제를 발굴하고 국회법을 정비하겠다. 원 구성 상임위 배분이나 법사위 권한처럼 여야, 다수당-소수당 간에 입장이 갈리는 과제가 있다. 적용 시기는 23대 국회로 넘기더라도 방향과 조문은 먼저 합의하는 지혜를 발휘해보자"고 했다.
우 의장은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도 검토해야 한다"며 "의정기록원을 설립해 국회의 의정활동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활용도를 높이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삼권분립을 온전하게 실현해야 민주주의다. 국회 본연의 역할인 입법을 강화하고 국민의 눈으로 행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며 "예결산 기능 강화를 비롯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한편으로 그릇된 문화와 관행의 개선을 다른 한편으로 행정부와의 관계를 바로 정립해나가겠다"고 했다.
우 의장은 "22대 국회는 유례없는 여소야대 국회"라며 "다수당으로서의 부담감과 집권당으로서의 책임감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여야 정당 모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정부에게도 책임 있는 자세, 진전된 자세를 보여 달라고 요청한다. 거듭 강조한다. 국회를 존중하지 않고, 국정운영에 성과를 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정치가 국민께 큰 걱정을 끼치고 있다"며 "국민의 신뢰를 얻기에는 지금 국회의 모습이 크게 부족하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멈추지 않겠다. '국민을 지키는 국회, 미래로 나아가는 국회'의 사명을 온 힘을 다해 실천하겠다. 국민 여러분이 곁에서 국회를 느낄 수 있게 국회 담장을 넘어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덧붙였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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