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멘티 넘어 '굿파트너' 돼가는 장나라와 남지현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4. 9. 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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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사진=SBS

'굿파트너' 11화 엔딩을 보면, 이 드라마 제목이 왜 '굿파트너'인지 느낄 수 있다. 11화에서 차은경(장나라)은 이혼 후 십수 년 만에 휴가를 쓰고 딸 재희(유나)와 함께 캠핑여행을 떠난다. 휴가는 은근히 퇴사를 강요한 로펌 대표에 의한 비자발적인 것이라 찜찜하고, 딸과 둘만 하는 캠핑도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회사에도, 딸에게도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러워진 차은경은 떨리는 목소리로 한유리(남지현)에게 전화를 건다. 정우진(김준한)이 아니라. 

'굿파트너'는 이혼이 '천직'인 스타 변호사 차은경과 이혼은 '처음'인 신입 변호사 한유리의 차갑고 뜨거운 휴먼 법정 오피스 드라마다. 노련하지만 현실에 어느 정도 찌든 선배(멘토)와 어설프지만 정의와 원칙에 입각한 후배(멘티)가 만나 갈등을 빚다 합을 맞추며 함께 나아가는 버디물의 형태는 매우 익숙하다. 중요한 건 누구와 콤비를 이루느냐다. 차은경에게 멘토와 멘티 관계를 이룰 수 있는 인물로는 오랜 시간 든든한 후배이자 동료로 차은경의 곁을 지켜온 정우진이 있다. 존경을 넘어 내심 연모를 품고 있는 이 남성 캐릭터를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예 관계를 비틀어 '하이에나'의 정금자(김혜수)-윤희재(주지훈)처럼 맞붙여 놓아 스파크를 일으킬 수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한유리와 마찬가지로 신입 변호사인 전은호(피오) 같은 캐릭터를 붙여놓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한 여성에게 신선한 연하의 남성 캐릭터를 붙여 놓는 것은 많이 보아오던 흐름 아닌가. 굳이 로맨스로 결론내진 않더라도 새로운 출발을 내딛는 여성에게 희망찬 열린 결말을 불어넣는 캐릭터로 쓰일 수 있으니까. 

사진=SBS

그러나 '굿파트너'는 한유리를 차은경의 파트너로 낙점지었다.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 콤비를 보여주는 여성 서사, 여성 간의 진한 우정과 유대를 담은 워맨스 서사가 최근 몇 년간 대중문화에서 뜨는 서사인 것도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차은경과 한유리가 이혼 전문 변호사라는 것에 더 방점이 찍혀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혼 전문 변호사인 차은경은 남편의 불륜으로 자신이 이혼 소송의 당사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내몰렸다. 흔히 이혼은 부부 간의 이야기로 생각되기 쉽지만, '굿파트너'에서는 이혼이 결코 부부만의 문제만이 아님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를 대표하는 게 아버지의 불륜으로 상처를 안고 있는 한유리다. 

어린 한유리는 아버지의 외도에 대해 자식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억울했던 인물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상간녀가 일하는 회사에서 1인 시위를 할 만큼 아버지의 외도에 상처받았던 한유리는, 믿고 따랐던 아빠 김지상(지승현)이 엄마의 비서 최사라(한재이)와 외도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상처받은 재희가 김지상에게 벌주고자 만남을 거부하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리틀 차은경'이라 불릴 만큼 이성적인 재희가 MBTI의 전형적인 'F' 타입에 속할 것 같은 한유리에게 이내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같은 상처로 인한 동질감을 공유했기 때문이리라. 파란만장했던 이혼 과정을 겪으며 한유리를 믿을 만한 변호사로 인정했던 차은경이, 한유리를 자신의 심경을 터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파트너)로 여기게 된 부분도 이혼으로 인한 부모-자식의 상처를 고스란히 공유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법무법인 대정의 대표인 오대규(정재성)의 조카로 알려졌지만 실상 그의 혼외자인 것으로 보이는 정우진도 한유리와 비슷한 포지션이지 않나 싶지만, 정우진은 차은경에게 그런 아픔을 공유한 적 없어 보인다. 정우진은 '차은경의 오피스 허즈밴드'라는 루머가 나올 만큼 차은경과 가깝지만 배려하는 마음으로 개인적 '선'을 넘은 적이 없다. 김지상의 외도를 눈치챘으면서도 차은경에게 내색하지 않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반면 한유리는 차은경에게 김지상의 외도를 빠르게 밝히며 차은경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선을 넘는 인물이다. 그것이 어쩌면 차은경 식 표현대로 '알량한 사명감과 같잖은 정의감'일진 몰라도 그 안엔 한유리 식의 배려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선 최소한의 선이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또한 더 깊은 관계에서는 어떤 결의 선들은 넘을 때도 있는 것이다. 정우진의 배려 깊은 선 지킴은, 역설적으로 차은경과 더 깊은 끈끈한 관계가 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SBS

'굿파트너'는 차은경과 '국민불륜남'으로 등극한 김지상과의 대립이 끝난 지금 반환점을 돈 상태다. 빌런 캐릭터였던 김지상이 딸 재희의 극심한 상처를 깨닫고 회개를 하고, 김지상의 아이를 가졌던 최사라 또한 유산으로 아이를 잃으며 권선징악이란 이런 것을 보여줬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결말에서 볼 법한 빌런의 후퇴와 권선징악에 다소 김이 빠진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제목은 '부부의 세계'나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아닌 '굿파트너'. 현실의 도파민 충족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12화 예고에서 대표 오대규는 한유리에게 VIP 사건에 기각을 받아내라는 미션을 내린다. 이 사건에 차은경 해고 건의 보류가 달려 있다. 이를 통해 남은 5화 분량에선 차은경과 한유리 간 멘토와 멘티를 넘은 새로운 형태의 상호작용으로 진정한 파트너 관계가 되는 과정이 진지하게 그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나이를 뛰어넘은 동성 간의 합리적이고도 따스한 연대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지에 따라 '굿파트너'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 도파민에 열광하긴 했지만, 홀로서기에 나서며 앞으로 나아가는 차은경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놓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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