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파출소 순찰차 여성 사망’ 미스터리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정락인 객원기자 2024. 9. 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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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 현관까지 접근한 후 순찰차에 들어갔다가 갇혀
평소 잠겼어야 할 차 문이 열려 있는 등 ‘의문투성이’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전국 시도에는 해당 지역의 치안 유지를 담당하는 경찰서와 하위기관으로 지구대·파출소·치안센터가 있다. 현재 전국 257개 경찰서 산하에는 600여 개 지구대(파출소 포함)가 있으며, 900개가 넘는 치안센터가 설치돼 있다. 규모로 보면 보통 지구대는 50명 정도, 파출소는 10명 정도, 치안센터는 1명이 근무한다. 

경찰청은 걸어서 순찰하던 때의 파출소를 차량 순찰 중심의 지구대로 통폐합하면서 남은 파출소 건물을 '치안센터'로 이름을 바꿔 유지해 왔다. 지구대와 파출소는 각 관할 지역의 치안 유지, 112 신고 대응, 방범 순찰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치안센터는 주간에만 근무하고 담당업무는 주로 민원 상담, 교통정리, 관내 순찰 등이다. 

8월17일 오전 11시쯤 경남 하동경찰서 진교파출소에 40대 여성 A씨의 가출 신고가 접수된다. 이틀 전 지적장애(2급)를 가진 딸이 집을 나간 뒤 귀가하지 않고 연락이 끊기자 A씨 아버지가 직접 파출소에 찾아와 신고한 것이다.

ⓒ연합뉴스·freepik

가출 신고 접수 후 출동 준비하다 발견

약 3시간 후인 오후 2시쯤 경찰은 A씨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순찰에 나설 채비를 했다.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순찰차의 문을 열자 뒷좌석에 누군가 엎드려 숨져 있었다. 신원조회 결과 놀랍게도 A씨였다. 발견 당시 타살을 의심할 만한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고체온증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것은 신체 온도가 과도하게 상승하면서 중추신경계 이상과 급격한 장기 손상으로 이어진다. 장시간 방치될 경우 의식 저하가 동반되고 신속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A씨의 사망 추정 시간은 16일 오후 2시 전후로 나왔다. 

파출소 외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A씨는 전날인 16일 새벽 2시쯤 순찰차에 혼자 들어간 것이 확인됐다. 이후 발견될 때까지 무려 36시간이나 순찰차 안에 갇혀 있었다. 이 중 12시간은 살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순찰차는 뒷좌석에 손잡이가 없어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게 돼 있다. 범죄 혐의자의 도주나 주행 도중 문을 열고 뛰어내릴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앞좌석과 뒷좌석도 안전 칸막이가 설치돼 넘어가지 못한다. A씨는 열려 있는 뒷좌석 문을 열고 들어간 후 꼼짝없이 갇히고 만 것이다. 

A씨는 장시간 차 안에 갇히면서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하동에는 폭염경보가 발령 중이었고, A씨가 발견된 날은 낮 기온이 34도를 넘나들었다. 밀폐된 차량의 내부 온도는 이보다 훨씬 높은 50~70도 이상 됐을 것으로 판단됐다. 때문에 A씨가 장시간 차 안에 갇혀 있다 숨졌을 가능성이 높게 제기됐다. 

하동경찰서 진교파출소 모습 ⓒ네이버 지도 캡처

살릴 수 있는 기회 모두 놓친 경찰

이번 사건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치안 최일선인 파출소, 그것도 순찰차 안에서 지역 주민이 사망한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A씨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곳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죽어갔던 것이다. 경찰은 몇 번이나 A씨를 살릴 기회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놓치고 말았다. 이 사건의 최대 의문점은 크게 네 가지다.

A씨가 순찰차에 들어간 이유, 또 굳게 닫혀 있어야 할 순찰차 문이 열려 있었던 점, 40시간 넘게 순찰차가 운행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더욱이 파출소 앞 주차장에서 장시간 발견되지 않은 점도 의아하다. 

A씨는 지적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10년 넘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얼마 전 가족이 있는 경남 하동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CCTV를 통해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A씨는 16일 새벽 2시11분쯤 진교파출소에 나타난다. 파출소는 야간에는 문을 잠그고 벨을 누르면 대응하게 돼 있다. A씨는 현관문 앞에서 문을 열거나 두드리지 않았고, 벨을 누르지도 않았다. 

당시 파출소 안에는 4명의 근무자가 있었지만 모두 A씨를 발견하지 못했다. A씨는 1분간 서성이다 뒤돌아서서 주차장으로 향한다. 당시 파출소 앞에는 순찰차 2대가 주차돼 있었다. 이 중 1대의 순찰차 문을 열었지만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자 다른 순찰차로 옮겨갔는데 이번에는 문이 열리자 뒷좌석으로 들어간다. 이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A씨가 집으로 가지 않고 파출소를 찾은 것도 석연치 않다. 가족들에 따르면 A씨는 15일 오후 10시10분쯤 집을 나섰다. 이후 4시간 정도 진교IC와 버스터미널, 진교공설운동장 등을 배회한다. 그러다 A씨가 향한 곳이 집이 아닌 파출소였다. 범죄 피해 신고를 위해 왔거나 어두운 밤에 안전한 곳을 찾아왔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A씨가 다른 곳이 아닌 파출소를 찾아왔다는 점이다. 

경찰청 훈령인 '경찰장비관리규칙'을 보면 '차를 주·정차할 때에는 엔진 시동 정지, 열쇠 분리 제거, 차 문을 잠그는 등 도난 방지에 유의하여야 하며, 범인 등으로부터의 피탈이나 피습에 대비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평소 진교파출소는 순찰차 2대를 운행하고 있었다. 운행하지 않을 때는 규정대로 순찰차 문은 닫혀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 중 1대의 문이 열려 있었는데, 심각한 규정 위반이다. 순찰차 문만 닫혀 있었어도 A씨는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의 순찰차가 40시간 넘게 운행하지 않은 이유도 석연치 않다. 진교파출소 근무형태를 보면 1개조 4명씩 4개조 16명이 2교대(12간씩 근무)를 하고 있다. 주야간 근무자들은 매일 오전 8∼9시, 오후 8∼9시 사이에 근무교대를 한다. 경찰 규정에는 근무교대 시 전임 근무자는 차량 청결 상태와 차량 내 음주측정기 등을 비롯한 각종 장비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차량 문 잠금 상태를 점검하고 주행 km를 확인해 운행기록을 근무일지에 명기해야 한다. 

근무자들이 이 규정만 제대로 지켰더라도 뒷좌석에 있는 A씨를 발견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근무교대 수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더욱이 이때는 A씨가 살아있을 때다. 이에 대해 당시 진교파출소 근무자들은 차량 운행기록을 2번 확인했지만, A씨가 뒷좌석에 있어 미처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 운행기록 확인을 위해 순찰차 시동을 켜면 블랙박스가 자동으로 녹화되는데, 해당 순찰차 블랙박스는 8월15일 오후 4시56분쯤부터 A씨가 발견될 때까지 약 45시간 동안 한 번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이는 순찰차가 제대로 운행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파출소 측은 "A씨가 발견된 순찰차는 평소 잘 안 쓰던 차였다"고 해명했다. A씨가 파출소 앞 주차장에서 장시간 발견되지 않은 것도 의아하다. 경찰관과 민원인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장소에서 그것도 대낮에 순찰차 안에서 몸부림치고 있었을 A씨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A씨 사건은 경찰관들이 근무규정만 제대로 지켰어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경남장애인부모연대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날씨에 밀폐된 차 안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발달장애인을 생각하면 부모들의 가슴은 찢어진다"며 "차 안에 들어간 지 36시간 동안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너무 비참하기도 하고 억울하다.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하동 진교파출소 사고 순찰차 ⓒ연합뉴스TV 제공

해당 파출소 대상 고강도 감찰 나서

이번 사건에 대한 후속조치도 이어졌다. 경찰청은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고강도 감찰을 진행 중이다. 그 결과 근무자들의 근무태만 등이 드러나면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전국적으로 경찰 순찰근무와 장비 관리 실태 점검에도 착수했다. 시·도청별 3급지 지역경찰관서(11개 청 산하 480개 지역 관서)를 대상으로 특별점검을 벌이고 있다.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문제의 순찰차는 내부 조사를 마치고 하동경찰서에 반납 처리됐다. 이 차량은 적절한 활용 방안을 찾은 후 운행될 예정이다. 또한 경찰청은 8월17일 총경 전보인사를 단행하면서 진영철 하동서장을 경남경찰청 경무기획정보화장비과로 대기 발령했다. 보통 퇴직을 앞둔 간부가 발령되는 자리다. 아직 정년이 남은 진 서장에게는 문책성 인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순찰차에 탔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신입사원

파출소 순찰차에 탔던 한 20대 신입사원이 억울하게 죽은 사건이 있었다. 2012년 3월 갓 대학을 졸업한 장현웅씨(28)는 경기도 화성의 한 회사에 취업했다. 같은 해 6월27일 장씨는 시내 외곽 공사장에서 추락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5일 만이다. 장씨 시신을 발견한 것도 경찰이 아닌 그의 아버지와 친구들이었다. 더욱 의아한 것은 시신이 발견된 곳은 장씨가 지내던 회사 기숙사와는 정반대편 인적이 드문 공사장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실종 당일 저녁 장씨는 회사 동료들과 회식을 하고 취한 상태로 나와 집으로 가고 있었다. 비틀비틀 걸어가다 기숙사를 불과 500여m 남겨두고 도로변에 쓰러진다. 이 모습을 본 행인이 주취자 신고를 했고, 순찰차가 나타나 장씨를 태웠다. 문제는 경찰관이 장씨를 기숙사가 아닌 정반대 공사장으로 데려가 그곳에 내려놓았다는 사실이다. 장씨의 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착각해 반대 방향으로 데려갔던 것이다. 주취자 상대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결과다. 

칠흑 같은 공사장을 헤매던 장씨는 결국 발을 헛디뎌 추락한 후 물웅덩이에 빠져 사망한다. 경찰은 이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근무일지'와 '범죄 신고 접수 처리표' 등을 조작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순찰차의 블랙박스는 켜놓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인과 유족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유족은 청와대 등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조사를 실시했으나 경찰관 두 명에게 시정권고 조치를 내린 것이 전부다. 경찰이 근무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앞길이 창창한 청년이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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