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발언부터 쉽지 않은 여야 대표 회담[김지현의 정치언락]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최근 이 대표와 민주당에 대한 수사나 기소에 관여한 검사들을 상대로 시리즈처럼 해온 민주당의 탄핵은 곧 예정된 (이 대표에 대한) 판결 결과에 불복하기 위한 빌드업으로 보는 분들이 많다. 이건 재판받는 한 개인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의 재판에 대해 주류 정치세력이 불복하면 민주주의의 위기, 법치주의의 위기가 오고 국민 모두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현금 살포를 민생 대책으로 말씀하십니다만, 쓸 수 있는 혈세는 한정되어 있고, 개인들이 느끼는 격차의 질과 수준이 다 다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최근 독도, 교과서 문제 등이 있다. 영토를 부정하는,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는 행위, 주권을 부정하는 행위, 외국의 침략을 합리화 미화하는 행위, 이것은 국가를 부정하는, 그야말로 윤석열 대통령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반국가적 주장이다.”
“(한 대표가 말한) 국회의원 특권 (폐지) 얘기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의 소추권도 같은 차원에서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행정적 독재국가로 흘러갈 위험성이 매우 높다. (한 대표가) 법 앞의 평등 말씀하시던데, 제가 보기엔 법 앞에 형식적으로 평등할지 몰라도 검찰 앞에선 불평등하다. 사람에 따라 법 적용이 완전히 달라진다.”
“최근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오고 있다. 종전에 만들어졌던 계엄안을 보면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엄 선포와 동시에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얘기도 있다. 완벽한 독재국가 아니냐.”
“가짜뉴스, 거짓말로 상대 음해하거나 폭언하고 비방하고 이러면 대화 안 된다. 잘 보시겠지만 저는 특정 개인 비방을 잘 안 한다. 대화를 막기 때문이다.”
“최근 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 볼 수 있는 과도한 조치가 많아지는 거 같다.”
금투세, 채상병, 25만 원 이견차만 확인
9월 1일 오후 2시 국회 본청 3층 공개홀에 나타난 여야 대표는 이처럼 모두발언부터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습니다. 한 대표가 먼저 준비해 온 원고를 13분 40초 동안 읽자, 이 대표는 이보다 5분 정도 더 길게 18분 20초간 모두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양측은 전날 실무협상에서 모두발언 시간을 애초 합의했던 7분보다 3분 늘린 10분으로 바꿨죠. 막판에 연장까지 했건만 그로도 턱없이 부족했나 봅니다. 특히 한 대표가 최근 민주당의 검사 탄핵을 지적하며 “판결에 불복하기 위한 빌드업 아니냐”고 하자 이 대표도 이에 질세라 “계엄” “대통령 소추권” “독재” 등의 날 선 단어를 줄줄이 읊었습니다. 모두발언부터 이미 잔뜩 냉기가 돌았던 셈입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대표는 이번 모두발언을 키워드 형태로만 큐카드에 적어 직접 준비해 갔다죠. 한 관계자는 “이 대표가 그 전에 복수의 의원들로부터 계엄령 관련 보고를 길게 받긴 했지만 그 게 모두 발언에 포함될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민주당이 선별지원 형식으로라도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벼르던 25만 원 특별지원금도 결국 불발됐습니다. 조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저쪽(국민의힘)은 계속 일관되게 ‘현금 살포는 하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였고 그에 따른 대책을 제대로 제시한 바는 없다”고 했습니다. 반면 곽 수석대변인은 “우린 선별적 부분에 주안점을 둔 거고, 민주당은 기존대로 25만 원 상품권을 통한 일률적 지원을 얘기해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양당은 금투세와 관련해서도 “주식 시장의 구조적 문제 등 활성화 방안과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 협의하기로 했다”고만 발표했습니다. 사실 금투세는 한 대표와 이 대표 모두 최소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던 터라 적어도 내년 1월 1일 도입을 유예한다 정도는 합의를 볼 줄 알았는데 말이죠. 이날 비공개 회담에서 한 대표는 폐지를 얘기했고, 이 대표는 상법 개정을 포함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조치 시행 및 ISA 계좌 비과세 한도 확대 등을 패키지로 요구했다 하죠.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전날 실무협의 때만 해도 민주당도 금투세 유예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하는데, 국민의힘에서 오해한 게 아니라면 하루 새 기류가 급변한 셈입니다.
이 외에도 공동발표문에 포함된 문구는 대부분 ‘협의’, ‘검토’, ‘논의’, ‘강구’, ‘추진’ 등입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는 셈입니다.
이전에도 ‘따로국밥 회동’ ‘양치기 회동’ ‘100분 대표’ 논란
맹탕 결과에 실망하신 분들도 많을 듯 합니다. 11년 만에 공식 의제를 갖고 열린 여야 대표 회담인 데다, 두 사람 모두 여야를 대표하는 대권 주자인 만큼 추석 밥상에 올릴 법한 통 큰 협치를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뭐, 그런데 사실 이전에도 여야 대표 회담에서 성과가 있었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이때도 김 대표가 모두발언부터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면서 시작부터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결국 회담이 비공개로 전환된 뒤에도 두 사람은 국정조사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결국 다른 의제들은 논의도 못했다 합니다. 이날 밥값은 “정말 중요한 것은 합의하지 못했다”며 황 대표가 계산했죠. 두 사람은 5개월 뒤인 그해 11월 다시 한번 회동을 했지만,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 실시 여부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콩나물국밥으로 시작해 따로국밥으로 끝난 셈입니다.
매번 사실상의 빈손 회담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여야 대표 회담이 확실히 보통 어려운 자리가 아닌 건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거대 양당의 대표라면 꽉 막힌 정국을 풀어낼 기지와, 그에 따른 당 안팎의 후폭풍까지 감당해내는 역량을 보여줘야 할 겁니다.
한 대표는 이날 ‘여야 대표 회담 정례화’를 제안했지만 이 역시도 “정례화보다는 볼 수 있을 때 수시로 만나서 대화하자”는 애매모호한 약속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두 사람이 혹시다시 만나게 된다면 다음번엔 보다 통 큰 리더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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