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치느님인 나라…‘공장닭 해방작전’ 대전개
올해 여름에만 폭염으로 닭이 100만 마리 이상 죽었습니다. 폭염이 극심했던 2018년에는 800만 마리가 죽었고요. 공장식축산을 이렇게 놔두어도 될까요? 닭이 죽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제보자 ‘비건 버거’(☞32회에서 이어짐)
“당신들, 치느님과 한패지?”
성난 표정의 수탉이 기다란 날개로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의 머리를 톡톡 쳤어요. 홈스와 왓슨이 정신을 차려보니, 십여 마리의 닭들이 모여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었죠. 왓슨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어요.
“대체 치느님이 누구죠? 우리는 그런 사람 몰라요.”
“하얀 신사복을 입고 지팡이를 들고 우리를 쫓아다니던 노인 말입니다. 당신들과 같이 있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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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같은 장소에 있었을 뿐 우리와는 관계없어요. 우리는 한국에서 온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입니다. 지구환경 문제를 조사하고 있어요. 한국에는 없는, 자유로운 길닭을 보고 반가워 찾아왔는데, 손님 대접을 참 극진하게 해주시는군요.”
왓슨이 쏘아붙이자 닭들은 의심을 거두는 듯했어요. 그리고 방구석으로 가더니, ‘꼬꼬’ ‘구구’ 하며 자신들의 언어로 대화를 나눴죠. 리더로 보이는 닭이 와서 이야기했어요. ‘조나단’이라는 이름의 장닭이었죠.
“한국에서 왔다고? 그럼, 우리에게 협력해 줄 수 있겠나?”
“도대체 뭔데요?”
장닭 조나단이 뜸을 들이다가 결심한 듯 이야기했어요.
치킨해방전선의 목표
“우리는 치킨해방전선이라는 비밀단체요. 전 세계 공장식축산 농장의 좁은 케이지와 울타리에 갇힌 닭들을 해방하여 우리 같은 길닭으로 만들고 있어. 아시다시피 하루에 2억 마리의 닭 형제들이 도살되어 고기가 되고 있지. 일년에 700억의 억울한 영혼들이 구천을 떠돌고 있지.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소.”
“괌에서 당신들은 행복해 보이더군요. 가족과 동료들이 함께 살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제대로 봤소. 예로부터 괌이나 하와이 등 태평양 섬에는 길닭이 있었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그리고 호주의 원주민들이 카누를 타고 하나둘 태평양의 섬으로 흩어졌을 때 닭들도 데려온 거야. 그들과 평화로운 섬에 도착한 일부 닭들은 독립적인 삶을 택한 거요. 인간도 야생화된 닭을 굳이 잡지 않았소.”
“길닭이 갖고 있는 자유와 독립에 착안해 단체를 결성한 건가요? 공장식축산 닭을 길닭으로 만들기 위해?”
홈스의 말을 듣던 조나단이 고개를 돌리더니, 유난히 배가 큰 하얀 닭에게 말했어요.
“황금알을낳은닭, 이들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해주겠소?”
황금알을낳는닭이 아이패드 최신형을 꺼내더니, 97인치 OLED 텔레비전에 연결시키고는 파워포인트를 실행시켰어요. 황금알이 쑥스러운 듯 말했어요.
“5천만원이 넘는 텔레비전이에요. 자그마치 황금알 쉰 개를 팔아서 장만했죠.”
그리고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어요.
“치킨해방전선의 창립자는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입니다. 잎싹은 한국의 공장식 양계장에서 매일 알을 낳던 암탉이었죠. 인간에게 알을 빼앗기고 한 번도 품을 수 없었기에 탈출하기로 결심합니다. 결국 한여름 폭염에 죽은 척해서 양계장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상남도 우포늪 인근에서 알을 품고 새끼를 기르며 행복한 길닭 생활을 했죠. 그리고 여러 인간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이곳 괌에 치킨해방전선을 창립했어요. 쉿~ 이건 비밀인데… (작은 목소리로) 최민식, 문소리, 유승호, 박철민 같은 한국 최고의 배우들이 비밀리에 도와줬습니다.”
이번엔 조나단이 말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에게 부탁할 일이 있소.”
홈스와 왓슨은 잠깐 당황했어요. 왓슨은 ‘설마 황금알을 대신 팔아달라는 건 아니겠지’하고 생각했죠. 홈스는 ‘그럼, 세관에 걸릴 텐데’하고 걱정했고요. 하지만 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어요.
“우리는 엉망진창이 된 지구를 자유롭고 조화로운 행성으로 바꾸는 게 목표입니다. 그런 일이라면 우리가 못 할 게 없습니다!”
둘의 결기 어린 말에 조나단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죠.
다음 작전지는 ‘치맥’의 나라
“고맙습니다. 우리의 비밀 작전으로 적지 않은 닭들이 공장식축산에서 해방되어 길닭으로 살아가고 있소. 미국 마이애미와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영국의 노퍽과 햄프셔에서 해방된 길닭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어요. 영국 노퍽의 한 마을에서는 길닭이 지역에 개성을 가져다준다며 주민들이 좋아하면서 밥을 주는 사람들까지 생겼지.”
“길닭을 통해 인간의 생각을 바꾸는 거군요. 행복한 동물을 보면, 사람도 행복해지는 법이죠.”
“그렇소. 하지만 우리는 아직 ‘치맥의 모국’ 한국을 해방하지 못했소. 다음 작전지는 한국입니다. 한국에서 폭염 때문에 벌써 올해 죽은 닭이 100만 마리가 넘었소. 우리 같은 길닭은 더우면 그늘에 가서 쉽니다. 하지만 갇혀있는 닭은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죠. 기후변화가 심해지는 미래에 닭의 시체는 산처럼 쌓일 것이오. 그래서 우리는 한국으로 갑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손이 없어서 농장 문을 열지 못해요. 그래서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요.”
홈스와 왓슨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어요.
“고국의 치킨 해방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국까지는 어떻게 가시려고요? 비행기에 안 태워줄 텐데.”
“9월이 되면 괌에서 태풍이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바람을 타고 갈 거요. 당신들도 같이 가지 않겠소?”
그날 이후, 홈스와 왓슨은 ‘한국 치킨해방작전 비밀부대’의 닭들과 함께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닭들은 날개를 뻗어 바람을 타는 법을, 홈스와 왓슨은 행글라이더를 타고 방향을 잡는 법을 익혔죠.
드디어 9월이 되어 괌 동쪽 해상에 태풍이 만들어졌고, 홈스와 왓슨 그리고 비밀 닭 요원 815마리가 한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초강력 태풍이라 조금은 힘들었지만, 시속킬로미터의 바람을 타고 단 이틀 만에 한국 영해에 진입했어요.
“저기 한라산이 보인다!”
왓슨이 소리쳤어요. 하지만, ‘인스타에 올려야지’ 하고 스마트폰을 꺼내려다가 그만 태풍의 바람길에서 이탈해 호수에 풍덩 빠지고 말았어요. 뒤따라온 홈스도 스마트폰 들고 풍덩! 치킨해방 부대와 헤어지고 말았어요.
한국에서 만난 치느님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홈스와 왓슨은 기진맥진해 한라산에서 내려갔어요. 작은 읍내에 도착하니,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가 보였죠. 둘은 기어서 가게에 들어갔죠.
“불…고…기버거 세트 주세요.”
직원이 방긋 웃으며 말했어요.
“고객님, 환경에 나쁜 불고기버거를 왜 드시려고요? 기후와 환경을 생각하는 기후시민이라면 치킨버거를 드시는 게 어떻겠어요? 정부의 기후변화대응기금 지원을 받아 치킨버거는 80% 할인 행사 중입니다.”
직원 뒤편 LED 화면에서 치킨버거 광고가 나오고 있었어요. 하얀 옷을 입은 노신사가 지팡이를 들고 ‘불고기버거 대신 치킨버고 드세요’라고 말하고 있었죠. 홈스가 말했어요.
“저 하얀 노인, 어디서 많이 봤는데…”
왓슨이 무릎을 치며 말했어요.
“괌의 길닭들을 쫓던 치느님이잖아요!”
햄버거 가게 직원이 놀라 물었습니다.
“저 할아버지 아세요? 미국 타임지가 ‘환경영웅 50인’으로 선정한 신개념 환경운동가로 엄청 유명하신 분이잖아요. 저도 저 분의 말을 듣고 소고기를 끊고 닭고기만 먹는 치킨테리언이 됐어요. 고맙게도 우리 햄버거 체인과 공동으로 ‘저탄소 치킨버거’를 개발하셨고요.”
햄버거 가게 직원의 말은 소고기보다 닭고기가 훨씬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는 거였어요. 치느님이 이 점을 내세워 ‘치킨 먹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했죠.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을 만드는 데에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다양한 활동이 관여해요. 가축을 사육하고 고기를 가공해 먹기까지 기간에도 온실가스가 배출되죠.
농장에서 농기계를 굴리고, 축사의 조명을 켜고, 온도를 조절하고, 동물을 트럭에 태워 도축장에 보내고, 도축장에서 손질한 고기를 식품 가공 공장에서 제품으로 만들고, 이를 트럭에 실어 슈퍼마켓으로 보내죠. 이 모든 과정에서 화석연료인 석탄, 가스, 경유와 휘발유 혹은 그것들로 만든 전기가 사용돼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가축이 먹는 사료를 생산하려면, 탄소를 저장하는 숲을 베어서 농경지로 만들곤 하죠. (세계 최대의 탄소 저장고인 아마존 밀림이 이 때문에 줄어들어요!) 게다가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선 비료를 생산해야 하는데, 이때 쓰이는 전력량도 만만치 않아요.
또 하나의 변수가 있는데, 바로 소나 양 같은 반추동물이에요. 되새김질하는 반추동물은 다른 종들이 소화할 수 없는 빳빳한 풀을 먹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요. 하지만, 반추동물의 위에 사는 장내 미생물이 풀을 소화하면서 메탄을 배출하는 게 문제예요. 그래서 소는 1톤의 고기를 생산하는 데, 무려 499톤의 온실가스(이산화탄소 환산량)가 발생합니다. 소가 ‘기후악당’ 취급을 받은 이유에요.
반면, 닭고기는 같은 양의 고기를 생산하는 데 온실가스가 57톤밖에 안 나와요. 작은 공간에 많은 개체를 사육할 수 있는 데다(농장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가 적게 들겠죠?) 1~3달에 도살되기 때문에 닭이 적게 먹고(적게 드는 사료, 적게 드는 에너지!) 적게 똥을 쌀 테니까요. (역시 온실가스의 일종인 아산화질소가 적게 발생!)
57 대 499. 닭고기와 소고기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거의 9배 차이가 나는 거죠. 햄버거 가게 직원이 말했어요.
“닭고기는 기후위기 시대의 축복받은 단백질이에요. 소고기를 닭고기로 바꾸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80% 줄일 수 있어요. 미래에도 환경 걱정 없이 고기를 계속 먹을 수 있다는 거예요!”
홈스와 왓슨은 치킨버거를 우걱우걱 쑤셔넣고, 괌에서 제주까지 긴 여행을 마쳤지요.
기후변화와 동물복지의 역설
어느덧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왔어요.
그해 여름은 악랄했어요. 서울은 111년 기상 관측 역사상 최고기온인 39.6도를 찍었고, 폭염일수도 75년 만에 최대치인 35일을 기록했어요. 닭 812만 마리가 폭염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어떤 거 말입니까? 반장님?”
“요즈음 유행한다는 기후운동 ‘치킨테리언’ 말일세. 닭고기가 소고기 온실가스 배출량의 9분의 1이라는 것은 알겠어. 전자계산기를 두드려보면 그리 나오겠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자고. 닭 한 마리에는 고기 1.7킬로그램이 들어있어. 반면, 소 한 마리에는 고기 360킬로그램이나 들어있고.”
“그래서요?”
“즉, 우리가 소고기를 닭고기로 바꿀 경우, 같은 양의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소보다 200배 넘는 닭을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야. 치킨테리언은 온실가스 배출량 장부를 좋아 보이게 할 수 있지만, 더 많은 생명이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도록 한다는 얘기지.”
왓슨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왠지 기후와 환경에 좋으면 동물에게도 좋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기후변화와 동물복지의 역설이군요.”
홈스가 말했습니다.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아.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그걸 조심해야 하네.”
그날 밤, 텔레비전에서 낯익은 뉴스가 흘러나왔어요. 기자는 한강변 서울숲에 나가 있었죠.
“이곳 서울숲은 물론 부산, 대전, 전주 등 도심 길거리와 공원에서 닭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햇볕이 강한 낮에는 덤불과 풀숲에서 쉬다가 주로 이른 아침과 저녁에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이 길거리 닭을 포획하려 하자, 일부 주민들은 ‘자유를 빼앗지 말라’고 저지하기도 했는데요, 아파트 주민들은 닭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며 신기한 경험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신의 집 주변에 모이를 놔두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치킨해방 작전이 성공했군!”
홈스와 왓슨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외쳤어요.
그런데, 기자 옆에는 하얀 노인, 아니, 이 시대 최고의 환경운동가 치느님이 서 있는 거예요. 기자가 마이크를 넘기자, 그가 자신감에 찬 어조로 말했어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 길닭들을 고기로 이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자연에서 큰 유기농 닭이라서 영양가도 높고 동물복지에도 좋습니다. 제가 이미 길닭들이 다수 서식하고 있는 괌에서 수백 마리를 포획하여 시식한 결과…”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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