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독도방어훈련‥윤석열 정부에서 처음으로 '세 가지'가 사라졌다
지난 8월 21일, 동해 울릉도·독도 인근 해상에서 과거 독도방어훈련으로 불리던 동해영토수호훈련이 실시됐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글에서는 동해영토수호훈련 대신 독도방어훈련이란 표현을 쓰겠습니다.
이번 독도방어훈련은 윤석열 정부 들어 5번째로 실시됐습니다. 독도방어훈련은 해군 교육훈련 지침에 따라 매년 2차례 실시하게 돼 있습니다. 언제 훈련을 실시할지 시점이 정해져 있진 않습니다. 다만 최근 10년간의 훈련 내역을 보면 상반기엔 6월, 하반기엔 12월에 집중적으로 훈련이 이뤄졌습니다. 특히 상반기 훈련의 경우 8월 이후로 훈련 시기가 넘어가는 건 극히 이례적이었습니다. 8월이 됐는데 왜 아직도 훈련 소식이 없을까 궁금했던 이유입니다. 결국 8월 말이 되어서야 훈련을 하긴 했는데 윤석열 정부만의 특이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전과 달리 윤석열 정부에서의 독도방어훈련은 세 가지가 없었습니다.
독도방어훈련엔 해군 함정과 해경 함정, 해군 및 공군 항공기, 독도경비대, 해병대와 해경 특공대, 해군 특전대대 등이 참가합니다. 함정이 바다에서 기동하며 독도로 침범하려는 세력을 막고 항공기는 이를 지원하는 거죠. 침범 세력이 독도에 상륙한다면 독도경비대와 최초 교전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후 해병대나 해경 특공대, 해군 특전대대 등이 투입돼 섬을 방어하고, 빼앗겼을 경우 다시 탈환하는 작전을 벌이게 됩니다.
지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상반기에 치러진 훈련만 놓고 봤을 경우 크게 수상함과 항공기, 육상 세력이 훈련에 참가했던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번 훈련 때마다 참가 전력의 규모가 다른데 해경 함정을 포함한 수상함은 5~16척, 항공기는 공군 전투기를 포함해 3~11대가 참가했습니다. 육상 세력은 해경 특공대나 해병대 수색대, 해군 특전대대 등이 번갈아가며 동원됐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훈련에서 육상 병력이 사라집니다. 상반기뿐만 아니라 하반기 훈련을 포함해도 지금까지 5번의 훈련에서 단 한 차례도 육상 병력이 투입되지 않았습니다. 수상함은 4~5척이 동원됐고, 항공기는 2023년 하반기 훈련에서 딱 한 번, 1대가 동원됐습니다. 특수전 부대가 훈련에서 빠졌다는 건 육상에서의 독도 방어를 오로지 독도경비대에만 맡기겠다는 것이고, 독도를 점령당했을 때 이를 탈환하는 훈련에 대해선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지난달 치러진 훈련에는 해군 함정 3척, 해경 함정 2척 그리고 독도경비대가 훈련에 참가했습니다. 항공기 1대는 참가할 예정이었는데 기상 불량으로 빠졌습니다. 이전 정부들과 비교하면 많게는 3분의 1 수준까지 훈련 규모가 축소된 겁니다. 해경 함정까지 포함해서 4척이냐, 5척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상 역대 최소 수준의 훈련이 계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해군은 지난달 훈련이 역대 최소 수준으로 치러졌단 MBC 보도에 대해 "예년과 유사한 참가 규모와 내용으로 실시됐다"며, 역대 최소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실전적으로 훈련을 시행했다"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훈련 규모가 축소됐던 2020년과 2021년에도 수상함 5~7척, 항공기 1~4대가 동원됐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 유행 탓에 어쩔 수 없이 훈련 규모를 줄였을 때보다 더 소규모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다 보니 국회 입법조사처가 훈련 규모 복원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시도가 더욱더 노골적이고 강해지고 있는 만큼… 이전의 규모로 독도방어훈련의 규모를 복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음" - 국회입법조사처 '2024 국정감사 이슈 분석' -
윤석열 정부의 독도방어훈련에 없는 두 번째 요소는 다름 아닌 일본입니다. 지난달 훈련이 끝난 뒤 입수한 해군의 훈련 내용엔 크게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가상국 도발 유형별 대응절차 숙달', 그리고 '해군-해경-경찰 간 작전수행능력 향상'입니다.
그럼 독도방어훈련에서 해군이 설정한 가상국은 어디일까요? 해군의 답은 '없다'입니다. 어떤 국가가 독도를 침범하는지에 대한 가정 없이 막연히 어딘지 모를 제3국의 침입 상황을 상정해 훈련을 진행했다는 겁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그리고 이전에도 이렇게 훈련을 했을까요?
독도방어훈련 계획안 수립 업무를 했던 한 전직 해군 장교에게 물어봤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며 어이없어했습니다. 이 전직 장교에 따르면 훈련에 앞서 생각보다 훨씬 상세한 준비 과정이 있었습니다. 가상국은 당연히 일본입니다. 일본 자위대 전략자산이 실제 훈련 시점에 어디에 전개해 있는지, 세력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부터 정확히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 전략자산이 어떻게 독도로 접근해 침탈 시도를 할지 모든 시나리오를 예상해 대응 작전을 구상합니다. 이를 종합하면 작전 계획안이 수립되는 겁니다.
그런데 해군은 이런 가상국 없이 훈련 계획을 세우고 진행했다고 했습니다. 특정국을 설정하면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다 MBC 보도 후엔 "가상적국을 설정하고 훈련을 실시했다"고 반박했습니다. 다만 "가상적국이 특정국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훈련 상대로 가정한 가상국이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답변입니다.
윤석열 정부 독도방어훈련에서는 일본이 사라지고 있지만, 일본은 독도 주변에서 더욱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9월, 한미일은 연합 대잠훈련을 실시했습니다. 훈련 장소는 독도에서 약 150km 떨어진 공해상이었습니다. 작년 7월에도 동해 상에서 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함께 미사일 방어훈련을 했습니다. 우리가 일본 손을 잡고 독도 근처로 이끌고 있는 셈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구애 탓인지 일본의 행동은 점점 대담해지고 있습니다. 작년 8월 12일, 광복절을 사흘 앞두고는 급기야 해상자위대 소속 소해함 1척이 독도 동남쪽 영해 외곽 20여km까지 접근했습니다. 우리 군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독도 인근에 있던 해경 함정은 영해 접근금지 경고통신을 했고, 해군 함정과 항공기도 파견돼 일본 소해함을 추적·감시했습니다. 이 사실은 MBC 보도 전까지 1년 동안 비밀로 묻혔습니다.
그리고 MBC가 이 사실을 보도하자 합참은 "당시 일본 소해함이 러시아 군함을 따라 항해하면서 접속수역을 일부 통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영해를 침범한 것도 아니어서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일본 순시선은 더 대담합니다. 말 그대로 제집 앞마당 드나들 듯이 독도 주변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해경이 확인한 일본 순시선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봤습니다. 대략적인 위치가 아닌 경도와 위도 좌표를 정확히 해도에 찍어 표시한 자료입니다. 지난 2019년부터 작년까지 일본 순시선이 나타났던 경위도 좌표도 갖고 있지만 너무 많아서 지도엔 올해 자료만 찍었습니다.
해경은 일본 순시선이 영해를 침범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위의 지도를 보면 영해에서 12해리의 거리를 두고 설정하는 접속수역은 수시로 침범했던 걸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 배가 접속수역을 침범하면 마치 영해를 넘어온 듯 공개적으로 강력 반발합니다. 그러면서 독도의 접속수역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한다는 건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생각한다는 거겠죠. 해경 함정이 경고 방송을 하긴 하지만 '영해를 넘은 건 아니니까' 생각하며 정부 차원의 공식 항의는 한차례도 하지 않는 우리 정부와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윤석열 정부 독도방어훈련에 없는 세 번째 요인은 '정부의 의지'입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자주 들었던 표현이 바로 의지였습니다. 예비역 해군 대령 출신으로 잠수함 함장, 잠수함 전대장 등을 역임했던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이 이제 해군력이 강하기 때문에 갑자기 독도를 점령해 버리면 대안이 없는 거예요. '만약에 독도를 점령하면 이렇게 우리가 하겠다' 이런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익명의 한 현역 해군 장교 역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독도방어훈련은 고난이도의 훈련이 아니다. 그걸 해야 독도를 수호하는 능력이 생기고 안 하면 능력이 줄어들고 그렇진 않다. 우리가 독도 수호 의지를 갖고 있다는 걸 대내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이 의지를 해군이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독도방어훈련의 규모와 시기 등은 해군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훈련 계획안을 결재하는 건 해군 작전사령관이지만 국방부, 나아가 대통령실까지 조율을 거쳐 결정됩니다. 독도방어훈련은 연례적인 해군의 한 훈련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인 겁니다. 이건 진보, 보수를 떠나 모든 정부에서 마찬가지였습니다.
독도방어훈련이 사상 최대 규모로 실시된 건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19년이었습니다. 수상함 16척, 항공기 11대, 해군 특전대대와 해병대 신속기동부대, 특전사 대테러팀이 동시에 동원됐습니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관계에 긴장감이 커지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도 이에 못지않았습니다. 2015년 5월 실시된 훈련에는 수상함 10척과 항공기 5대, 해병대 수색대, 해군 특전팀, 해경 특공대가 참가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천양지차의 규모입니다.
독도방어훈련은 언제 실시할지조차 정하지 못하며 올해 유독 더 표류했습니다. 대부분의 상반기 훈련이 실시됐던 시기인 6월엔 제주 남쪽 해상에서 한미일 연합훈련을 실시했습니다. 7월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15년 만에 직접 일본 방위성을 찾아가는 정성을 보이며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을 가졌습니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불가역'적으로 제도화하며 3국 군사동맹으로 나아갈 토대를 마련했단 평가까지 나온 회담입니다. 정치적인 고려를 거쳐 결정되는 독도방어훈련은 뒤로 밀리며 소극적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일본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현 상황에서도 독도방어훈련 맥락이 이어지고 있다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한 해군 장교의 말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온적인 윤석열 정부의 태도와 달리 일본 정부의 말은 거침이 없습니다. 급기야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상은 공개 기자회견에서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것을 감안하여 (독도방어훈련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今般類似の訓練を一切行わないよう强く求めたところであります"
'독도방어훈련과 유사한 훈련을 일절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외교부는 일본의 항의에 대해 "우리는 이를 항상 일축해온 바 있다"며, "독도에 대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대해선 앞으로도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영토 주권을 향한 모욕적인 발언에도 별일 아닌 듯 여기는 반응입니다.
최근 한미일은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1주년을 맞아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협력 범위도 확장됐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뜻깊은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리기 바로 닷새 전, 일본 해상자위대 소해함은 독도 인근으로 접근했습니다. 아무리 협력 관계가 깊어져도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만큼은 거두지 않겠다는 일본의 의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 정부도 할 말은 하고, 해야 할 훈련은 제대로 하며 영토 수호의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덕영 기자(deok@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632714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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