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AI시대에도 건재한 '페이팔 마피아'···갈등의 문화·無경험이 혁신 일궜다

정혜진 기자 2024. 9. 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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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설계자들(지미 소니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페이팔 직원 대부분 관련경험 전무
외부인 시각으로 결제서비스 접근
협력보다 '생산적 갈등' 기반 성장
회사 매각 후 각자 사명감으로 창업
20년 흘렀지만 실리콘밸리 '주축'
페이팔 창립 멤버들이 2007년 11월 경제 전문지 포춘의 커버스토리로 '페이팔 마피아'라는 기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링크드인, 유튜브 등 IT 기업들에서 명성을 떨쳤다. 포춘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경제]

2007년 11월 경제 전문지 포춘의 커버 스토리로 강렬한 제목과 사진이 실렸다. 현재까지도 광범위하게 쓰이는 고유명사가 된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라는 제목을 배경으로 마피아와 같은 복장과 눈빛을 한 13명의 사람들이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이었다. 등장인물의 당시 면면을 뜯어보면 실리콘밸리의 대표 VC인 파운더스 펀드의 창립자 피터 틸을 비롯해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먼, 유튜브의 공동 설립자인 채드 헐리 등 수많은 스타트업의 연쇄 창업자들이다. 2002년 페이팔이 기업 공개(IPO) 이후 이베이에 매각한 이후 5년 만의 일이었다.

17년이 지난 지난 달 포춘은 ‘페이팔 마피아는 여전히 실리콘밸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놨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이들의 영향력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커졌다. 리드 호프먼 링크드인 창업자는 오픈AI의 초기 투자자가 됐고 오픈AI의 투자자 명부에 이름을 올린 코슬라 벤처스와 세쿼이아 캐피털에도 모두 페이팔 출신들이 있다. 지난 20년 간 이들의 활약상이 다양하다 보니 페이팔이라는 기업 자체는 사라지고 페이팔 마피아가 더 큰 잔상을 남기고 있다.

‘뉴욕 옵저버’ 등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작가 지미 소니는 ‘부의 설계자들(원제 The Founders)’을 통해 페이팔이 인재 사관학교가 된 배경을 짚어본다. 그는 1998년부터 2002년 이베이에 페이팔을 매각한 직후까지 4년 간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미국은 현재까지도 주택의 보증금을 내거나 차량을 구입할 때는 물론 아이들 학비를 내거나 회사나 가게에서 주급을 줄 때도 송금 수표(Money order)나 개인 수표(Personal Check)를 통해 금액을 수기로 기입하고 직접 서명을 새겨 넣는 게 일반적이다. 아날로그가 당연하게 통용되는 곳에서 1990년대 말 인터넷으로 송금을 하거나 결제를 한다는 발상은 새로웠다. 이 일에 많은 기업들이 뛰어 들었지만 두 기업 실리콘밸리 역사에 남을 합병을 통해 생존자가 됐다. 피터 틸과 맥스 레브친이 창업한 콘피니티와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엑스닷컴(X.com)이었다. 콘피니티는 페이팔이라는 브랜드로 모바일 자금의 이체를 지향했고 엑스닷컴은 금융 서비스 슈퍼스토어 구축 작업을 펼쳤다. 애초에 방향은 달랐지만 중간에 수많은 이들이 두 기업의 합병을 위해 나서면서 페이팔이라는 기업이 탄생했다. 이후 2년 뒤인 2002년 페이팔은 나스닥에 상장한 데 이어 이베이에 매각되면서 손에 꼽히는 성공의 역사로 남았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페이팔의 시작과 끝이 아닌 그 중간 단계의 페이팔 역사다. 페이팔에서 높은 성과를 냈던 직원들의 대다수는 결제 서비스 경험이 전무했고 전체 커리어로 봤을 때도 초기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외부인의 시선에서 문제를 새롭게 접근할 수 있었다. 페이팔의 가장 큰 성장 모멘텀으로 여겨지는 ‘캡차(컴퓨터와 사람을 구별하기 위한 공개 튜링 테스트·CAPTCHA)’ 도입 역시 페이팔이 일반 이용자를 상대로 처음으로 시행한 서비스다. 송금 사기 방지에 한 획을 그었다. 이를 두고 한 직원은 “사기 방지팀 직원 채용할 때 이 분야에서 경험이 없는 이들 중에서 찾았다”며 “은행에서 회귀분석법 모형을 개발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사기 분석을 했다면 사기에 따른 손실을 막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팔은 ‘협력의 문화’보다는 ‘갈등의 문화’가 더 강력했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인 레브친은 “페이팔의 경영진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지만 생산적이었다"며 “뒤에서 험담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에 능력에 대한 신뢰를 가진 채 정답을 찾아내기 위한 갈등이 주를 이뤘다”고 말했다.

저자는 ‘페이팔 마피아’라는 강렬한 단어와 한 장의 사진으로 대중에게 막연히 그들만의 이너 서클이라는 꼬리표를 지워주고 싶어했다. 이들은 하나의 지향점을 가졌지만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초창기 시절의 인재들에게는 ‘페이팔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가 더욱 잘 어울릴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모인 최고의 직원들이 페이팔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기업을 세웠다는 것. 공동 창업자였지만 후에 이탈한 머스크 역시 금융서비스의 앱스토어라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 20년 뒤인 2022년 엑스(옛 트위터)를 인수해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페이팔 마피아의 동력인 네트워크 이상으로 강력한 것은 저마다의 사명감과 끈기였다.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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