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 좋은 할머니의 ‘매운맛’ 입담

서혜미 기자 2024. 9. 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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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킬킬거리지 않을 도리 없는 산문집 ‘즐거운 어른’

‘왜 벌써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버린 거야?’

노년기에 접어든 부모를 보면 아무리 효심이 없는 자녀라도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단순히 부모의 하얗게 세어가는 머리, 잦은 병원 방문 때문만은 아니다. 노화로 근육이 감소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딱히 정기적인 운동은 안 한다. 대인관계 역시 축소될 수밖에 없다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마땅한 취미 생활도 없이 집에서 우두커니 시간을 보내는 부모가 걱정스럽다.

올해 일흔여섯인 이옥선씨는 ‘즐거운 어른’(이야기장수 펴냄)에서 이런 노인에 대한 통념과 정반대의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하다보면 자정을 훌쩍 넘겨 잠든다는 그의 하루는 빡빡하다. 매일 목욕탕에 가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일주일에 세 번 요가 수업을 듣는다. 하루는 친구들과 산에 가고, 일요일엔 헬스장에 간다. 저녁 시간대엔 ‘유튜브 선생님’을 이용해 강연과 책 소개를 듣거나,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들을 탐색하며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들여다본다. “사람들이 할머니가 되면 할 일이 없어 주리를 틀어댈 거라고 자기들 멋대로 생각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옥선씨를 포함해 요즘 할머니들은 하루를 빈틈없이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것들로 채운다. 그에겐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지내는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다.

물론 요즘 젊은이들의 행동을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가 살아온 70여 년 세월 동안 한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했다. 이 사실을 떠올리면서 저자는 “나는 지금 선진국에 살고 있다는 주문을 외우며 어쨌든 이해하고 수용해보려고 적극 노력”한다. 그래도 어렵다면? 하는 수 없다. “젊은이들이 우리 세대에게 아무도 관심 없어서 안 쳐다보는 것처럼 나도 관심 끄고 내 갈 길 가야지”라고 능청스럽게 대응하는 수밖에. ‘매운맛’ 필력이 담긴 산문을 읽으며 킬킬거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저자는 ‘참된 어른’이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통찰 같은 유의 내용은 의도적으로 지양한다. 그는 인류 발전에 공헌하겠다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며 “뭔가 더 발전해봐야 지구만 망가진다”고 단언한다. 야망과 꿈, ‘갓생’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그저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거나 지나갈 것들”이라는 사실뿐이다.

이옥선 지음, 이야기장수 펴냄, 1만6800원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국치를 잊지 말라

왕정 지음, 피경훈 옮김, 여문책 펴냄, 3만원

현대 중국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민족주의다. 저자는 마오쩌둥 사후 정당성의 도전을 마주한 중국공산당이 민족주의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분석한다. 공산당은 아편전쟁 패배, 일본의 침략과 난징 대학살 등 ‘과거의 치욕’이라는 역사적 기억을 의도적으로 강조해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공고히 했고, 이는 중국 특유의 민족주의를 만들어냈다.

목사님의 택배일기

구교형 지음, 산지니 펴냄, 1만8천원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목사가 헌금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미자립교회 비중이 늘었다. 저자는 2015년 생계를 위해 택배·대리운전 기사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신교 목사의 ‘이중직’ 필요성을 널리 알린 바 있다. 그는 목사가 ‘본업’을 잘하기 위해서도 교인들의 삶 가까이 있어야 함을 알려준다. ‘오마이뉴스’ 연재기를 모았다.

퀴어 미술 대담

이연숙·남웅 지음, 글항아리 펴냄, 1만9천원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에 15만 명이 참여하고, ‘원톱’ 가수 아이유의 신곡 제목이 ‘퀴어베이팅’(창작자가 성소수자를 재현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그러지 않는 행위) 논란에 휩싸이는 시대다. ‘퀴어 미술’은 어떨까. 동시대 한국 퀴어 미술 현장을 치열하게 탐구한 두 저자가 다양한 열쇳말과 대화 형식으로 독자를 논의에 초대한다.

낯선 이야기는 우리 곁에 있다

정헌목·황의진 지음, 반비 펴냄, 1만8천원

성별이 다른 두 인류학자가 에스에프(SF·공상과학소설) 열한 편을 인류학 관점에서 읽고 썼다. ‘읽기’는 임신·출산 주체를 남성으로 바꾼 옥타비아 버틀러의 ‘블러드차일드’와 생물학적 재생산을 둘러싼 인류학 논의를 연결 짓는 식이다. ‘쓰기’는 인류학의 연구방법론인 현장 연구(에스노그래피)를 소설 속 세계에 접목해 연구자가 ‘가상 민족지’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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