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예의를 내던진 아리셀의 자본가들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4. 9. 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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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화재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7월27일 오후 희생자의 영정을 품에 안은 채 폭우를 맞으며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중구 서울역으로 행진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최현주 | 고 김병철씨 아내

6월24일 오전 10시31분, 경기도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스물세사람의 생명이 하늘로 떠났다. 이주민이 열여덟명이었고, 한국인이 다섯명이었다. 그 다섯명 중에 나의 남편이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남편, 아리셀 연구소장 김병철(얼굴사진 오른쪽)씨가 세상을 떠났다. 참사가 일어난 날부터 나에게 지난 두달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남편의 죽음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고, 나에게 닥친 일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목숨보다 더 소중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성을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린 자본가의 잔인함을 나는 두 눈으로 봐야만 했다. 이것은 오랫동안 나를 힘들고 아프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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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눈을 감고 나서 참사의 책임자인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그 아들 박중언 본부장이 이렇게 달라질 줄 몰랐다. 회사는 남편에게 연구개발 담당자로 스카우트 제의를 했고, 남편은 1년 반을 고사한 끝에 입사를 결정했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나는 남편과 아리셀 회사의 관계가 단순히 경영자와 노동자 관계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생전의 남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불이 나자 어떤 관리자보다 먼저 남편이 공장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누구도 들어가지 않은 처참한 현장에 뛰어들어간 남편은 나오지 못했다. 작별 인사도 남기지 못했다.

남편의 사망 이후 회사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기 전에 우리나라 최고의 로펌을 선임해 자신의 살 궁리를 먼저 마련했다. 나에게는 변호사를 선임한 이후 연구소 부하 직원을 시켜 전화를 걸어왔다. 물론 함께 사망한 이주민 노동자들에게는 이마저도 없었으니 그나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참사의 책임자들은 일주일 동안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고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사고 직후 내가 아닌 기자들에게 사과했다. 사람이라면 기자가 아닌 가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자기 잇속 계산하기 전에 함께 울었어야 했다.

남편과 함께 생을 달리한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이고 여성들이다. 아리셀 회사는 재빠르게 이주노동자의 가족들에게 연락을 돌려 합의하라고, 빨리 합의하면 조금이라도 웃돈을 얹어 주겠다고 회유했다. 아리셀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불법파견을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는데도 가족들에게 어떠한 미안함도 책임감도 없었다.

아리셀 회사 쪽은 ‘도급계약서’라고 쓰인 종이 한장을 들고 ‘도급’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셀 경영자들이 구속되기까지 꼬박 두달이 걸렸는데, 고용노동부는 사고 조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유가족들에게 설명하지도 않았다. 왜 내 가족이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다고, 수사를 똑바로 하라고, 수사 과정을 알려달라고, 회사 대표를 구속하라고, 유가족들은 거리를 돌고 기자회견을 하고 행진을 했다.

지금 나는 아리셀 회사가 생각하는 남편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한다. 퇴근 뒤에도, 주말에도 회사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후배들을 다독였던 남편을 회사는 ‘부품’쯤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내가 아리셀 유가족들과 함께 대책위원회에 참여하는 이유는 사람의 진심을 짓밟은 그들의 죗값을 묻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회사의 경영이 사람의 목숨보다, 인간이라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보다 우선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나이 오십이 넘었지만 이 사회에 영원히 적응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줄 말이 없다.

아리셀 참사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나와 같이하는 아리셀 유가족들, 중국동포들을 대신해 이렇게 말한다. 그 누구라도 참사의 책임자 중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더라면, 같이 살아남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8월23일에야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와 다른 3명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파견법 위반 등 저마다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28일 박 대표 등 2명의 영장을 발부했다. 지난 두달 동안 얼마나 증거를 없앴는지, 조작했는지 알 수 없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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