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드론왕 된 중국 기술광… ‘극한까지 간다’ 집념으로 고공비행[Leadership]
어린시절 모형 헬기에 빠져
“좋아하는 것 현실로 만들자”
26세때 대학 기숙사서 창업
11년前 카메라 단 드론 대박
매주 80시간 이상 연구개발
성능높인 후속작 연이어 내놔
직원 상하 개념 없고 자율적
‘엔지니어들의 에덴동산’ 평가
투자 목표의 30배 더 받기도
베이징=박세희 특파원 saysay@munhwa.com
드론 산업은 불과 10여 년 만에 급속도로 성장했다. 일부 군사적 용도로 한정됐던 드론은 이제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취미 활동, 배달 서비스 등 산업의 영역으로 확대돼 널리 쓰인다. 이 드론 업계를 꽉 잡고 있는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대표 기업은 DJI(大疆·다장)로, 글로벌 민간 드론 시장 점유율 1위다. 지난해 기준 약 70%의 글로벌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내 점유율은 거의 90%에 육박한다. 최근엔 DJI를 겨냥해 모든 중국산 드론의 미국 내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미국 하원을 통과하는 등 미국으로부터 가장 미움받는 중국 기업 중 하나로 불린다.
DJI 설립자이자 CEO인 왕타오(汪滔·44)는 2006년 회사를 세운 지 불과 10년 만에 세계 1위 기업으로 회사를 키워냈다. 2일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실시간 순자산은 43억 달러(약 5조7000억 원)에 달한다. ‘세계 최초의 드론 억만장자’ ‘드론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그는 어떻게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열정’과 ‘과단성’ ‘기술광’으로 불릴 정도의 ‘집요함’에 있다.
◇만화 보고 모형 헬기에 마음 뺏겨…열정이 씨앗으로=1980년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태어난 왕타오는 어린 시절 빨간 헬리콥터의 모험을 다룬 어린이 만화를 읽은 후 하늘을 나는 모형 비행기, 모형 헬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런 그의 마음을 알고 있던 아버지가 학교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얻으면 원격 조종 헬리콥터를 사주겠다고 약속했고, 모형 헬기를 얻을 생각에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한 그는 좋은 점수를 받아 꿈에 그리던 모형 헬기를 갖게 됐다. 당시 모형 헬기의 가격은 중국 직장인 평균 월급의 7배에 달할 정도로 비쌌다. 하지만 모형 헬기는 툭하면 추락했다. 일반인, 특히 어린아이가 이용하기엔 조작 방법이 너무 어려워 그의 손은 프로펠러에 베인 상처로 가득했다. 그때 그는 누구나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모형 헬기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꿈을 좇아 화둥사범(華東師範)대 전자과에 입학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형 헬기 관련 공부를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자퇴를 했다. 홍콩과학기술대 전자공학과에 다시 진학한 그는 그곳에서 다양한 컴퓨터 지식과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제어 기술 등을 배웠다. 그리고 2006년 졸업하며 같은 과 동기 두 명과 함께 홍콩과기대 기숙사에서 DJI를 창립했다. 그는 “나는 순수한 구석이 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것을 늘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둠 속 작은 빛을 잡다…과감한 결정이 회사 운명 바꿔=창업 초기, 왕타오는 열정과 달리 길을 찾지 못했다. 기술에 있어서는 높은 실력을 지녔지만 다소 까칠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던 왕타오는 창립 멤버인 동기 두 명을 떠나보냈고 이후 좋은 실력을 가진 직원을 맞지 못했다. 기숙사에서 옮긴 회사 사무실도 넓이 20㎡가 채 안 됐다. 너무 초라한 회사 모습에 채용 공고를 보고 찾아온 지원자들이 바로 돌아서기도 했다. 왕타오 외 다른 직원들은 드론 기술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 보니 회사는 어려움을 거듭했다. 이후 왕타오가 ‘동이 트기 전의 어둠’이라고 부른 게 바로 이때다. 이에 왕타오는 자신의 대학원 교수였던 리쩌샹(李澤祥)에게 도움을 청했고 리 교수의 도움을 받아 다수의 인재를 채용해 회사를 재정비할 수 있었다.
2008년 선보인 첫 헬기 비행 제어 시스템 XP3.1이 차츰 알려지며 회사도 일어서기 시작한 때 왕타오는 중요한 결정을 했다. 헬기 비행 제어 시스템에서 다중 프로펠러 드론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바꾼 것이다. 한 뉴질랜드 중개상이 헬기 비행 제어 시스템 구매자의 90%가 카메라 고정 장치를 다중 프로펠러 비행기에 설치한다는 조언을 ‘캐치’한 뒤 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2013년, 카메라가 달린 드론인 ‘팬텀’(Phantom)을 내놓았고 대박을 터뜨렸다. 부품 조립 없이 상자에서 꺼내 그대로 날릴 수 있는 팬텀은 누구나 쉽게 조종할 수 있었고 뛰어난 기술력을 입증해 중국산에 대한 편견을 바꿔놓은 획기적 상품이었다. 전 세계는 깜짝 놀랐고, 팬텀은 미국 타임의 ‘2014년 10대 과학기술 제품’, 뉴욕타임스(NYT)의 ‘2014 우수 첨단기술 제품’,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가장 대표적인 글로벌 로봇’에 선정됐다.
◇집념과 완벽주의가 빚어낸 ‘무적의 기술광’=DJI는 팬텀2, 팬텀3, 팬텀4 등을 연이어 선보였는데 선보일 때마다 한층 더 발전된 기술력을 자랑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13년 팬텀을 출시한 뒤 2년 뒤인 2015년 팬텀2와 팬텀3가 4개월 차이로 나왔고 팬텀4가 이듬해인 2016년 출시됐다. 버전이 높아질수록 기능은 더욱 향상됐는데 이는 왕타오의 기술에 대한 강한 집념이 낳은 결과다.
당시 왕타오와 직원들은 사무실 책상 옆에 간이침대를 두고 매주 80시간 이상 일했다고 한다. 드론이 공중에서 30초 더 머물 수 있도록 한 달 반 동안 거의 집에 가지 않은 채 연구한 일, 신제품 발표회를 위해 일주일 동안 하루 3시간만 잠을 잔 것 등은 유명한 얘기들이다. 특별한 행사가 없을 때도 새벽 두세 시가 돼서야 회사를 떠나는 것이 왕타오의 일상이라고 한다. 연구·개발(R&D)에 대한 그의 열정은 확고하다. DJI 전체 직원 1만4000명 중 R&D팀 직원의 비율이 25%에 달한다. DJI R&D실에는 ‘머리만 가지고 올 것, 감정은 두고’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기술과 제품에 대한 왕타오의 집념은 그가 직접 고안해낸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격극진지, 구진품성(激極盡志, 求眞品誠)’. 극한까지 뜻을 다해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뜻이다.
기술, 제품에 대해선 완벽을 추구하는 그지만 그 외 다른 일에 관해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이에 DJI의 사내 분위기는 무척 자유로운 것으로 유명한데, 한 직원은 “엔지니어들의 에덴동산”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엔지니어들은 내부적으로 자체 개발한 지니어스톡으로 대화를 나누고 유연근무제를 통해 자신의 출퇴근을 자신이 관리하며 옷차림도 자유롭다. 한 직원은 “직원들 간 상하 개념이 별로 없다. 우리는 그냥 제품을 잘 만들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자유로운 분위기는 기발함을 낳았다. 예를 들어, DJI 매빅 프로의 초기 형태는 왕타오와 다른 직원이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하이킹을 하며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손에 든 물병을 보며 ‘드론을 물병 크기로 만들면 들고 다니기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 매빅 프로는 프로펠러를 접으면 500㎖ 생수병보다 작아 휴대하기 편하다는 장점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도전은 계속된다…드론 그 이상으로 사업 확장=DJI 드론을 겨냥한 미국 등의 제재가 거세지면서 DJI 드론 산업은 최근 몇 년간 다소 둔화됐다. 2016년 왕타오는 드론 시장이 포화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DJI 매출도 200억 위안(약 3조7000억 원)으로 정점에 이르렀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에 왕타오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드론 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2의 성장 곡선을 만들기 위해 왕타오가 선택한 분야는 자율주행 자동차다. 이미 드론에서 공간 인식, 운행 제어 등 기능을 최고로 끌어올렸던 DJI는 지능형 자율주행차 분야에 진입하기 용이했고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엔 어떤 분야에서도 성공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왕타오의 자신감이 배어 있다. 6년 전, 왕타오는 광기에 가까운 자신감을 드러내며 관심을 모았다. DJI가 자금 조달 방식으로 ‘입찰’의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가장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 투자기관만이 DJI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DJI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고 최종적으로 투자받은 액수는 애초 예상보다 30배 가까이 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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