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명 승객 실어 나를 것” … 비행기 덕후, 드론 택시 시대 시동[Leadership]

박세희 기자 2024. 9. 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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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일치'(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음)만큼 행복한 게 또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에 매료돼 2000개 이상의 모형 항공기를 수집했던 중국의 한 소년은 커서 '드론 택시'를 만드는 사람이 됐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프로그래밍 일을 하면서도 그의 모형 비행기에 대한 사랑은 그치지 않았고, 1998년부터 전문 모형 항공기를 제작하고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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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 이항 창립자 후화즈
이항 홈페이지 캡처

베이징=박세희 특파원 saysay@munhwa.com

‘덕업일치’(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음)만큼 행복한 게 또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에 매료돼 2000개 이상의 모형 항공기를 수집했던 중국의 한 소년은 커서 ‘드론 택시’를 만드는 사람이 됐다. 드론 제조기업 이항(億航)의 창립자이자 CEO인 후화즈(胡華智·사진)의 이야기다. 이항은 지난 3월 ‘드론 택시’를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하기 시작하더니 4월엔 중국 민용항공국으로부터 드론 택시 생산 인증까지 취득하며 ‘드론 택시’ 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다.

후화즈는 어린 시절 비행기에 푹 빠져 비행기 장난감 가게 사장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똑똑했다. 13세에 부모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컴퓨터로 혼자 프로그래밍을 하며 천재성을 드러낸 그는 15세이던 1992년 칭화(淸華)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그는 ‘천재 소년’이라 불리며 유명인이 됐다. 대학을 졸업한 뒤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국제행사에서 관제시스템 개발을 맡았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프로그래밍 일을 하면서도 그의 모형 비행기에 대한 사랑은 그치지 않았고, 1998년부터 전문 모형 항공기를 제작하고 수집했다. 그는 최근 “모형 항공기가 가장 큰 취미였는데 ‘비싼 취미’였다. 당시 모델들은 지금보다 더 비쌌다. 헬리콥터는 최소 만 위안에 달했고 프로펠러 하나도 1000위안이 넘었다. 돈 번 것을 다 취미로 써버렸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친구와 함께 베이징(北京)에 모형 항공기 박물관을 만들고 2000여 대의 모형 항공기를 보관했다. 모형 항공기를 갖고 실컷 놀았다. 그러다 보니 ‘이제 진짜 하늘에 가서 놀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2014년 설립한 게 이항이다. 회사 이름은 1억 명의 승객을 실어나른다는 뜻이다. 이항은 2016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세계 최초의 유인 드론 ‘이항184’를 공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승객이 목적지를 지정하고 버튼 하나로 ‘이륙’ 명령을 내리면 여행을 완료할 수 있는 전자동 비행을 실현한 것이다. 후화즈는 당시 “인류가 진정으로 하늘을 정복하도록 하는 것이 평생 추구해 온 꿈이다”고 밝혔다.

세계 최초 유인 드론을 만들어낸 데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함께 모형 항공기 박물관을 만들었던 친구를 비행 사고로 잃은 것이다. 이에 후화즈는 지금의 비행체보다 더 안전한 비행체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드론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전화로 친구의 사고 소식을 듣고는 ‘인간이 하늘을 날 때 왜 많은 위험에 직면해야만 하는 걸까. 왜 인간은 완전히 하늘을 정복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장 안전한 장비와 완벽한 코드로 인간보다 훨씬 더 믿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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