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어 전 대표' 된 민희진…그가 없는 뉴진스? 과연 어떤 모습일까 [스프]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이사 사이의 갈등이 점입가경입니다. 네. '민희진 전 대표이사' 맞습니다. 8월 27일 어도어 이사회가 김주영 어도어 사내이사(하이브 CHRO·최고인사책임자)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거든요. 이제 우리에게 친숙했던 이름을 '민희진 대표'라고 부를 수는 없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하이브는 민 대표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 '내보냄'이 단순히 대표직에서 내보냄인지, 어도어에서 내보냄인지, 아니면 궁극적으로 엔터업계 바깥으로 내보냄인지는 좀 더 두고 지켜봐야겠지만요.
이번 사태가 애당초 불거진 것은 지난 4월이었습니다. 하이브는 어도어의 지분 80%를 보유하고 있었죠. 지난 5월 어도어 임시주주총회에서 '경영권 탈취 의혹' 등을 들며 민 전 대표 해임을 추진했어요. 하지만 법원이 민 전 대표가 낸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한 발짝 물러날 수밖에 없었죠. 다음 날 민 대표가 활짝 웃는 얼굴로 모자 벗고 했던, 이른바 '2차 기자회견' 광경이 아마 기억나실 겁니다.
다만 가처분 신청 당시에 하이브가 마냥 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도어 이사회에서 민 전 대표의 측근들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하이브 측 인사인 김주영 CHRO, 이재상 CSO(최고전략책임자·당시 직책, 현 CEO), 이경준 CFO(최고재무책임자)를 채워 넣었던 거죠. 1대3의 구도. 민 전 대표가 사면초가의 위태로운 상황에 몰렸지만, 어도어의(또는 민희진의?) 뉴진스는 도쿄돔 팬미팅과 '푸른 산호초' 열풍으로 순항을 이어갔죠.
그러는 동안 하이브와 민 전 대표는 여러 건으로 서로 고소하거나 폭로전을 펼치면서 진흙탕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막장 드라마의 제3막이 열린 것이 바로 8월 27일 어도어 이사회였습니다. 어도어는 민 전 대표 해임에 대해 "제작과 경영 분리는 다른 모든 레이블에 일관되게 적용해 온 (하이브 산하) 멀티 레이블 운용 원칙이었지만, 그간 어도어만 예외적으로 대표이사(민희진)가 제작과 경영을 모두 총괄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민 전 대표가 어도어의 사내 이사직을 유지하면서 뉴진스 프로듀싱 업무는 계속 맡을 거라고 못박았죠.
민 전 대표는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8월 30일 아침, 반박 입장문을 내놓은 겁니다. 뉴진스 프로듀싱을 계속 맡도록 하는 '업무위임계약서'가 불합리하다면서 받아들일 수 없다(서명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건데요. 프로듀싱 업무를 맡아달라고 제안하는 취지로 보기에는 계약서의 내용이 일방적이고 불합리하다는 겁니다. 민 전 대표 측에 따르면 이 '프로듀싱 계약'이란 것의 기간이 민 전 대표가 해임된 8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총 두 달 하고 엿새 동안이라는 거예요.
민 전 대표는 "2개월짜리 초단기 프로듀싱 계약"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내년 월드 투어까지 준비하는 아이돌 그룹의 프로듀싱을 2개월 만에 완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놀랍다는 게 민 전 대표의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 어도어 측은 민 이사의 사내이사 계약 기간 자체가 11월 1일까지여서 '잔여 기간'의 역할에 대한 계약서를 보낸 것이며 이후 계약은 재계약과 함께 진행돼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찬 바람 부는 11월이 오면 민 대표, 아니, 민 전 대표의 거취는 어떻게 될까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법과 계약의 싸움은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앞으로의 흐름과 결과는 오리무중이지만 오랜 기간, 이 사태를 지켜보자니 한 가지는 또렷해 보입니다. 민 전 대표, 어도어, 하이브의 입장이 넉 달째 초강경 기조에서 저마다 한 발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처서 매직'과 함께 드디어 그 타이밍이 제대로 도래했나 봅니다. '뉴진스 feat. 민희진'이 아닌 '뉴진스 w/o(without) 민희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봄직한 계절 말입니다.
네 달간의 '어도어 마라톤' 가운데 몇 km 지점쯤이었던가요. 한 매체에 따르면, 뉴진스의 일부 부모님들께 당시 하이브 측 한 인사가 '뉴진스의 도쿄돔 팬미팅이 끝나면 뉴진스에게 약 1년 반 동안의 긴 휴가를 줄 것이며 그동안 그래미 수상 프로듀서를 섭외해 붙여주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래미 수상 프로듀서'라는 키워드에 꽂혀 당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요. 이름도 낯선 신예 미국 프로듀서부터 팝의 연금술사 맥스 마틴까지 다양한 이름들이 뇌리를 스치더군요.
그런데 그래미상 받은 사람이 한둘이어야지요. 추측 게임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의문은 그래미 수상자든 대종상 수상자든 민희진이 아닌 다른 사람, 250이 아닌 다른 사람이 뉴진스의 시청각 제작을 맡았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 것이냐는 거죠.
'뉴진스 w/o 민희진'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림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뉴진스는 '민희진의 걸그룹'이란 간판으로 데뷔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죠. 여전히 뉴진스 제6의 멤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브랜드 파워를 나눠 갖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질적으로 제작에 끼치는 영향력일 겁니다. 여러분은 SM, YG, JYP 엔터테인먼트라는 기업들에 대해 잘 아실 겁니다. 기업명은 각각 (이)수만, 양군(양현석), 진영팍(박진영)의 약자입니다. 가수 또는 작곡가 출신인 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음악이나 영상 제작, 세계관 구축에 직접 깊숙이 참여하거나 최소한 최종 결정권을 틀어쥐고 회사의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여기서 생산된 거의 모든 콘텐츠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들의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 그들의 취향과 노하우, 상업적 감각이나 예술적 감각이 묻어 있습니다.
민희진 전 대표는 SM에서 오랫동안 시각 제작에 참여했죠. 평사원으로 출발해 주요 소속 그룹의 비주얼을 총괄하는 사내이사에 이르기까지 입지전적 스토리를 썼습니다. 일각에서는 민 전 대표의 다른 그룹에 대한 표절 주장에 대해 '뉴진스가 민희진 당신만의 창작물이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새로울 것 없는 하늘 아래의 것들을 모으고 취사선택해서 일견 새롭게 들리고 힙하게 보이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그 콘텐츠로 세상을 흔드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뉴진스라는 지적재산권에는 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의 생김새나 행동거지, 팬들에 대한 태도만큼이나 민희진 전 대표의 취향과 노하우, 상업적 감각이나 예술적 감각이 이미 듬뿍 묻어 있다는 것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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