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더 이상 1등 어려워"…'위기감 최고조' 한국 반도체 생존전략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9. 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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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를 부탁해]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 & 김창욱 보스턴컨설팅그룹 파트너
 

성장에는 힘이 필요합니다. 흔들리지 않을 힘, 더 높이 뻗어나갈 힘. 들을수록 똑똑해지는 지식뉴스 "교양이를 부탁해"는 최고의 스프 컨트리뷰터들과 함께 성장하는 교양인이 되는 힘을 채워드립니다.
 
▶ 교양이 노트
오랜 시간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 점유율을 자랑해 온 한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압도적인 규모의 국가 주도 투자와 그간의 암묵적 약속을 무시하는 보호무역주의 때문이죠. 너도나도 이 첨단 기술 전쟁에 사활을 걸고 참전하는 이유는 '반도체'가 차기 패권국을 결정할 핵심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초유의 상황에서 과연 한국이 첨단 산업 과점 패권을 선취하고 일류 국가로 올라설 수 있을지 파헤쳐 봤습니다.

김태유 교수 : 피크아웃 코리아 들어보셨죠? 한국 경제가 이제는 정상을 지나서 내리막으로 들어섰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 경제에 대한 편견이 아닌가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도 있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률을 보면 대통령 임기마다 평균 1%씩 대세 하락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이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없다는 뜻이죠.

64개의 첨단 기술 분야를 뽑아서 분야마다 1위 하는 나라를 분석했습니다. 중국은 53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우리나라가 1위를 한 분야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아티클입니다>

우리는 반도체라는 엄청난 기술 밸류 체인의 한 부분을 잘하고 있는 거지 전체를 다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도체 원천 기술은 미국이 다 갖고 있잖아요. 그리고 소재, 부품, 장비는 일본과 EU, 네덜란드 국가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은 파운드리와 D램으로 갈라지는데 우리가 D램 생산을 잘할 따름이에요. 엄청난 도전과 시련 속에 있어서 언제 우위를 뺏기고 말지 걱정스러운 상황이거든요.

김창욱 파트너 : 한국은 메모리 강국이 맞습니다. 메모리는 우리나라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하면 마켓셰어가 70% 되죠. IDC 리포트에서 1분기 반도체 매출 결과가 나왔어요. 삼성전자가 1위를 했고, SK하이닉스는 3위지만 지난 분기 대비 2배의 매출 성장을 했죠. 그리고 HBM 같은 경우 SK하이닉스가 독보적인 1위라고 발표되었습니다.


문제는 예전에는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보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늦게 제품이 출시됐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거의 비슷한 제품을 동시대에 내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 메모리에 위기가 생긴 거죠.
 

대한민국 반도체의 위기


김창욱 파트너 : 메모리 반도체는 얼마나 고객사가 원하는 시기에 빨리 만들어내느냐의 문제입니다. 신제품이 나오면 고객사에 공급하는데, 만약 삼성전자가 1등이라면 50% 공급을 약속받고, SK하이닉스가 한 달 뒤에 2등 하면 30%,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6개월 뒤에 3등이라면 20% 공급. 늦으면 늦을수록 물량 자체가 적어요. 문제는 혁신은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뒤에서 쫓아오는 속도는 빨라져 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경쟁사들이 쫓아오는 효과 때문에 우리가 위기에 닥치고 있습니다. 옛날보다 1등 자리를 차지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죠.

두 번째 문제는 마켓셰어입니다. 세계에서 선단 노드 14나노보다 더 작은 나노로 그릴 수 있는 회사가 TSMC와 삼성밖에 없습니다. TSMC의 마켓셰어는 70%에서 80%, 우리나라는 20%예요. 최근 여러 뉴스에서 삼성전자가 3나노 공정에 실패해서 TSMC에 밀렸다는 보도가 나왔잖아요. TSMC는 끊임없이 다음 세대를 가고 있는데 한국 회사들은 그렇지 못하는 거죠. 보통 반도체 산업에서 1년마다 신제품을 만들거든요. 재작년에는 5나노, 작년에는 4나노, 올해는 3나노. 1년마다 나노를 줄인다는 건 엄청난 혁신이에요.

TSMC는 아직도 여유 있게 달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삼성전자는 조금씩 제동이 걸리고 있죠. 원래 애플과 퀄컴이 모두 삼성 1년, TSMC 1년씩 번갈아 가면서 생산을 맡겼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애플은 완전히 TSMC로 가버렸고, 퀄컴도 이탈할 위기가 있죠. 매년 20~30조 원씩 돈을 부어서 계속 혁신해야 하는데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반도체 패권 전쟁, 생존 전략은?

Q. 그럼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짜면 좋을까요?

김태유 교수 : 우리가 반도체에 더욱 집중하면 됩니다. 우리가 잘하는 것에 집중해서 더 잘하게 만드는 거죠. 역사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아주 특별한 나라입니다. 네덜란드의 국토가 한반도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아주 조그마한 나라예요. 그런데 네덜란드가 한때 세계 패권국이었어요. 한때 기후변화로 북해에 청어 어장이 형성됐어요. 그래서 청어를 잡기 위해서 영국,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벨기에 전부 다 달려들었죠. 그중 네덜란드가 완전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다른 나라는 청어잡이 어부들이 청어를 잡아서 파는데, 네덜란드는 전 사회가 청어잡이에 매달려서 청어잡이 전용선을 만들고 청어를 잡았어요. 잡자마자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뺀 다음 염장을 합니다. 그리고 쾌속선에 청어를 실어서 운반하는 구조였죠. 한때는 네덜란드 전 국민의 반 이상이 청어잡이 관련 산업에 종사했다 할 정도로 완전히 네덜란드가 청어잡이 국가가 됐어요. 그뿐만 아니라 청어를 잡기 위해서 청어잡이 전용선을 만들고, 쾌속선을 만들다 보니 조선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영국의 무역선은 배를 움직이기 위해서 선원 30명 정도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네덜란드의 플뢰위트함은 10명 정도면 돼요. 인건비를 3분의 1로 줄인 거예요. 그러니까 영국이 네덜란드를 당해 낼 방법이 없어진 거죠. 네덜란드의 배가 효율적이니까 배를 팔다가 해운까지 뛰어들어서 동양으로부터 유럽으로 가는 향신료 무역을 네덜란드가 완전히 독점하게 됐어요. 즉, 한 가지를 굉장히 잘해서 초격차를 만들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초격차 산업이 파생된다는 겁니다. 기술이 자꾸 넘쳐흘러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플뢰위트함 : 대양 횡단 운송을 위해 선원 효율성이 최대로 발휘되고 배의 용적이 최대치가 되도록 제작. 17세기 네덜란드가 해상 제국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됨.


강대국은 나라가 크고 인구도 많잖아요. 그러니까 연구자도 많고 소비할 사람도 많으니까 균형 개발을 해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나라가 작은 강소국 아닙니까? 연구자도 적고 소비자도 적으니까 우리나라가 모든 상품을 제작하기는 어려운 거예요. 만들어도 시장도 크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잘 만드는 제품을 더 잘 만들어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강대국의 전략하고 강소국의 전략은 다른 거죠. 우리 강소국의 전략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해야 합니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집중적으로 투자하면 꼭 성공할 수 있어요.
 

국가들이 반도체에 사활 건 이유

김창욱 파트너 : 현재 반도체 시장 규모를 다 합치면 약 816조 원 정도 됩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2030년에는 약 1,360조 원이 될 거라고 보고 있어요. 항상 두 자릿수 성장을 하는 사업이거든요.

보통 의식주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저는 의식주기라고 얘기해요. 디바이스, 기기라는 뜻의 '기'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디바이스 없이 못 살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건 이러한 디바이스 안에 반도체가 엄청나게 들어간다는 거예요. 자동차에만 들어가는 반도체 금액이 약 79만 원이에요. 그러니까 차 안에서도 반도체라는 금액이 재료비 원가 기준으로 4~6%까지 들어가는 거죠. 지금은 반도체가 하나의 생필품에 해당하는 것이죠.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자급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수출할 수 있으므로 경제적 부가가치도 매우 커집니다. 코로나 시기에 차가 1년 동안 안 나왔죠. '우리나라에 반도체 생산이 없으면 내가 진짜 필요할 때 못 사겠구나'를 느낀 계기가 됐잖아요. 또 최근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불화수소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발표해서 잠깐 우리나라가 힘들었죠. 이처럼 '국가 간에 반도체를 가지고 옥죄일 수 있겠구나'라는 두려움이 생겼어요.
 

반도체 패권에 국가 전략이 중요한 이유

Q. 세계에 있는 다른 반도체 공장들이나 회사들을 더 유치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오늘날 회사들이 더 확장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걸까요?

김창욱 파트너 : 둘 다 하면 좋겠죠. 그런데 지금 미국의 칩스 액트도 이미 만들어져 있는 걸 갖고 오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영토 내로 가져오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또 중요한 것은 인재입니다. 반도체 생산에 대한 노하우들은 결국 사람이 갖고 있는 거잖아요. 메모리 팹을 미국에 유치했다면 시간이 흘러 인재풀이 어딘가 미국 내 다른 회사로 옮겨가겠죠. 그렇게 되면 자체적인 노하우를 계속 올릴 수 있다는 강점이 생기는 거고요.

반면 나라에서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를 나라에서 육성시켜 주겠다고 하지만, 대부분 현실은 반도체 스타트업의 90%가 설계만 하는 팹리스예요. 미국이 반도체 팹리스 강국이죠. 왜냐하면 퀄컴과 엔비디아 등의 회사가 있잖아요. 그런데 미국 외에 약 4조 8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만들 수 있는 팹리스는 타이완에 일부 한두 개 외에는 없습니다. 대부분 스타트업을 만들어서 육성하려고 하면 팹리스밖에 못 합니다. 생산이 중요한 업들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나라가 아무리 인센티브를 세게 준다고 해도 이런 회사들이 성장해서 그 나라의 반도체 생태계에 도움을 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죠.


더욱 빠르게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는 팹을 유치시킬 때 국가들이 대표적으로 하는 건 직접 인센티브죠. 우리나라도 K-칩스법을 시행 중이지만 우리나라는 인센티브보다 법인세 중심으로 가고 있어요. 하지만 법인세는 가장 효과가 적은 방법입니다. 법인세는 매출과 이익이 발생한 후에 내요. 그런데 반도체는 내년을 위한 생산을 미리 당겨서 해야 하거든요. 법인세는 후발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습니다.

* K-칩스법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 국가 전략기술에 시설 투자 시 대기업 및 중견기업 15%, 중소기업 25% 세액공제 혜택 적용

구독자 질문 Q. 기업이 하는 산업인데 국가 재정을 써야 할까?

Q. 국가 전략으로 산업을 육성시킨다는 건 국가 재정이 투입된다는 건데 반도체 기업은 사기업이고 또 대기업이지 않습니까? 국가 재정이나 세금으로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요?

김태유 교수 : 첨단 산업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은 특별한 민간 기업을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첨단 산업 기술에 진심이었던 나라는 다 성공해 선진 강대국이 되고,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굉장히 어려워졌죠. 예를 들어 핀란드 노키아라는 회사가 있었죠. 노키아가 핀란드 수출의 25%를 차지했고, 헬싱키 주가와 시가총액의 70%를 차지했었습니다. 그래서 노키아가 망하면 핀란드가 망할 거라는 소문도 있었어요.

결국 노키아가 망했죠. 하지만 요즘은 '죽은 노키아가 핀란드를 살렸다'고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핀란드 인구는 EU의 4%인데, EU 스타트업 25%를 핀란드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키아에서 기술을 배우고 일했던 사람들이 노키아에서 채택하지 않았던 다른 기술들로 벤처를 만든 거예요. 물론 많은 투자를 하면 어려움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첨단 산업 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 기술은 사라지지 않고 결국은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게 노키아 사례의 교훈입니다.


첫 번째가 기본적으로 반도체 생산을 하면서 얻게 되는 국가적 부가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산과 수출에 관련된 규모가 대략 약 136조 원 정도고요. 두 번째가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 들어가는, 소부장을 포함한 컨트렉터들이 약 122조 원 정도를 벌어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로 인한 파급 효과입니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전자 기흥이나 SK하이닉스 이천 주변에 엄청나게 많은 아파트가 생기고 경제활동이 활성화되는 것들이 약 136조 원 이상을 차지합니다. 다 더하면 대략 400조 원 정도가 생기거든요. 경제적 부가가치가 400조 원이 되어 가니까 다들 반도체에 목을 매기 시작한 거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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