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엉킨 욕망, 난무하는 음모·폭력… “이번엔 ‘구원’ 있어요”
사막·빙하의 경험 작품에 담겨
새 인생 위해 목숨 거는 복마전
작가 특유의 스릴러 작품이지만
이번엔 난생 처음 ‘로맨스’ 녹여
다음 목표는 ‘욕망 3부작’ 완성
“무조건 재밌는 글만 쓰고 싶어”
작품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독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소설가 정유정이 신간 ‘영원한 천국’(은행나무)으로 돌아왔다. 정 작가를 지난 주말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작품을 쓴 후 읽은 모든 글, 다녀온 모든 공간을 소설에 모조리 쏟아냈다”며 “언제나 마지막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쓴다면 아껴둘 수 있는 경험은 없다”고 했다.
정 작가는 이번 작품을 집필하며 사막과 빙하를 오갔다. 생존의 극한을 상징하는 두 공간에서 느낀 것을 작품에 오롯이 녹였다. 새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을 되살리거나,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아볼 수 있도록 하는 가상의 세계 ‘롤라’를 두고 벌이는 복마전 형식이다. 1인용 롤라인 ‘드림 씨어터’ 설계자 ‘해상’과 가상세계로 현실 도피하려는 ‘경주’를 주인공 삼아 가상현실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욕망의 민낯과 그럼에도 끝내 현실로 돌아와 운명과 맞서는 야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해상과 경주는 각각 사막과 유빙의 성격을 가졌다고 정 작가는 말했다. 이를테면 해상은 사막이다. 정 작가는 “바하리야 사막은 원래 바다였던 곳으로, 그 많던 물이 모두 말라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곳이 됐다”는 말로, 해상의 아픈 과거사를 드러낸다. 반면, 경주는 거대한 유빙이다. 정 작가는 “유빙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얼음 덩어리가 바닷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어 부딪히는 순간 모든 것을 부숴버린다”고 설명했다. 경주는 삶의 끝에 내몰린 나머지 인간의 따뜻한 감정이 파고들 틈조차 가지지 못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번에도 정 작가 특유의 스릴러 스타일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거대한 슬픔을 간직한 인물들의 욕망이 뒤엉켜 거짓말과 음모, 폭력이 난무한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게 하나 있다면 바로 ‘구원’이다. 난생처음 스릴러에 로맨스를 녹여봤다는 정 작가는 “처음에 남매로 설정됐던 인물들이 구원의 결말로 달려가며 소설 속에서 불협화음이 났는데, 연인으로 고쳐보니 알아서 흘러갔다”며 웃었다. 결국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었다는 뜻이다. “자신조차 사랑할 수 없었던 이들이 사랑을 알아가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예요. 그러니 ‘작가가 주인공에게 너무한 것 아니야?’라는 느낌이 들더라도 끝까지 참아주셔야 해요(웃음).”
그러나 정 작가는 “구원에 이르기 위한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인 ‘야성’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사람들은 지켜야 할 규칙,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해놓고 배려라는 이름으로 원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곤 한다”며 “이제는 SNS의 발달로 서로의 삶을 더 많이 들여다보게 되니 나의 만족을 위해 야성을 펼칠 기회를 잃어간다”고 꼬집었다.
정 작가는 “인생은 좌절의 연속”이라며 자신의 우울했던 지난날과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꿈을 꺼내놓기도 했다. 어린 세 동생을 책임지기 위해 간호사로 일했고 결혼 후에는 ‘집을 마련할 때까지만 같이 일하자’는 남편과의 약속을 지켰다. 마침내 작가로 이름을 알리는가 싶었을 때 암 환자가 됐다. “이제야 10년 치료를 끝냈다”는 정 작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았지만 돌아보니 소설가에게는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 어울린다”고 말했다. “일단 당장 주어진 과제를 해치워버려야 해요. 좌절하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어요. 내가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하루를 살다 보면 매일이 되고 삶은 변해 있을 것이라 장담해요.”
인터뷰를 마치며 남아 있는 꿈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쓰기로 마음먹었던 ‘욕망 3부작’을 마무리 짓는 일이라고 답했다. “여행 다니는 것, 사람을 웃기는 것도 좋아한다”며 여행 에세이를 한 편 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진정 거대한 꿈은 따로 있었다. “누구나 재미있게 읽고, 문학적 관점에서도 아름다운 글. 저는 ‘궁극의 이야기’라고 불러요. 그런 작품을 죽기 전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면 작가로서의 삶은 성공한 거죠. 문단에 예술가는 많으니 저는 무조건 재미있는 글을 쓰겠습니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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