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가는 상법개정 논의… 국가자원의 낭비일 뿐[기고]
7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은 현 정부의 증시 밸류업 정책에 대해 맞불을 놓기 위해 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의 주요 과제로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전체 주주로 확대 △지배주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이사’ 선임 의무화 △감사위원인 이사 분리 선출의 단계적 확대 △대기업 집중투표제 활성화 △상장회사 전자투표 및 위임장 도입 의무화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정부를 비롯해 국회, 학계 및 실무계에서 왕성하게 논의되고 있어 더 이상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논의가 좀 더 성숙해 좋은 열매를 맺도록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민주당 프로젝트는 이 논의를 성급하게 멈추려는 것으로 보여 매우 아쉽다. 또한 법무부가 발의해 국회에 제출한 전자주주총회 도입 상법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전자투표 및 위임장 도입 의무화도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전자주주총회를 개최해 주주가 집이나 직장에서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직접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소수주주의 주주권행사는 당연히 활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아있는 세 가지 과제를 각각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몇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먼저 사외이사라는 기존 명칭을 폐기하고 경영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독립이사 선임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맥을 잘못 짚었다. 사외이사제도는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상장회사에 처음으로 의무화됐으며, 그 후 여러 차례 법률개정을 통해 사외이사의 독립성 요건이 한층 강화됐다. 현행 상법은 상장회사 사외이사의 결격사유를 차고도 넘칠 만큼 자세히 적어 두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상법 시행령은 사외이사의 임기를 일정 기간으로 제한해 독립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상법이나 그 시행령 어디에도 감사위원이 아닌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오죽했으면 2023년 9월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상법 시행령이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한 것은 사외이사가 한창 전문성을 쌓을 시점에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폐해가 있다면서 금융위원장에게 재검토를 요청했을까. 감사위원 분리선출에 대한 논의는 2013년 6월 법무부가 한 차례 입법예고를 한 이후 끊임없이 논의되다가 마침내 2020년 12월 감사위원 1인을 분리선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해 상법에 도입됐다. 현행 상법에 따르면 정관규정으로 2인 이상의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려 7년 이상 논란의 중심에 있다가 최근에서야 입법으로 마무리된 것인데, 민주당 프로젝트는 과거의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이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대기업 집중투표제도를 활성화하자는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1998년 상법개정 당시 집중투표제의 도입 여부와 관련해 찬성과 반대로 심각하게 나누어졌지만, 진통 끝에 완화된 형태로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은 바 있다.
2016년 9월과 2017년 2월 국회에 제출된 여러 상법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 의무화, 전자투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 도입, 사외이사 선임규제 강화, 분할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 다중대표소송은 상법에 이미 도입됐으며,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금지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도입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민주당은 과거 이들 법안에 남아 있는 것을 이번 기회에 다 처리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최근 드라마 ‘선재업고 튀어’가 신드롬급 인기를 자랑하며 성공리에 종영됐다.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한 톱스타를 살리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타임슬립 판타지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이미 한 번씩 다 논의를 거친 제도를 다시 끄집어내겠다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자는 게 아닌가. 국가자원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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