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공장 지키는 'AI 봇'···과열 점검하고 사고자 발견시 즉각 보고[biz-플러스]

이건율 기자 2024. 9. 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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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순찰봇 근무 첫 공개
설비 과열 등 공장 샅샅이 감지
"업무수준·효율성 모두 상승"
AI 기반 설비, 공장에 확대 적용
생산·물류현장 생산성 대폭 향상
디지털트윈과 융합···기간 단축도
사족 보행 순찰로봇 ‘스팟’이 지난달 27일 새벽 기아 오토랜드 광명 제2공장 인근을 순찰하고 있다. 권욱 기자
[서울경제]

8월 27일 새벽 2시 경기도 광명시 기아오토랜드 제2공장. 몇 시간 전만해도 로봇팔과 작업차가 분주히 움직이던 공간에 적막이 가득했다. 근무자들을 떠난 후 어둠을 밝힌 것은 1.1m 길이의 4족보행 순찰로봇 ‘스팟’이었다. 충전 박스에서 몸을 일으킨 스팟은 설정된 경로를 따라 순찰을 시작했다. 재고 부품을 쌓아둔 팰릿(pallet)과 공장 설비가 곳곳에 있었지만 스팟은 능숙하게 피해다니며 공장을 누볐다. 생산 설비의 과열이나 유해가스 발생 여부를 점검하는 한편 온도와 습도 등 데이터를 수집해 안전관리자에게 전달했다. 스팟의 공장 점검 현장이 언론에 직접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장에서 만난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초만 해도 사람이 공장을 직접 걸어다니며 일일이 확인해야 했던 것을 스팟이 대신하고 있다”며 “업무 수준과 효율성이 모두 상승했다”고 말했다.

스팟은 우발적인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새벽 취재진이 공장 바닥에 쓰러진 상황을 연출하자 스팟이 다가와 고성능 카메라로 현장 상황을 촬영한 뒤 15명의 안전관리자에게 위급 상황을 즉각 전달했다. 단순히 공장을 순찰하는 로봇을 넘어 실제 위급 상황에서도 정확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한 것이다.

쓰러진 근무자 발견 시 즉시 보고···가파른 계단도 ‘척척’

스팟은 로봇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제품에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의 AI 기반 소프트웨어를 접목시켜 완성한 제품이다. 탑재된 AI와 3D 라이다, 적외선카메라 등을 통해 출입구 개폐와 설비 위험을 감지한다. 쓰러진 근무자를 발견할 경우 안전관리자에게 즉시 보고하며 무단으로 침입한 외부인을 인지할 수 있는 기능도 사용 가능하다. 현대차그룹은 광명공장을 시작으로 광주공장·화성공장 등에서 스팟을 활용하고 있다.

로봇의 약점으로 꼽히는 가파른 계단과 같은 불편한 지형도 스팟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장 내 도장 공정 라인으로 넘어가기 위해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없을 정도로 좁고 꼬불꼬불한 계단을 지나야 했지만 스팟은 속도를 조절하며 수월하게 순찰을 이어갔다. 스팟에 탑재된 AI 기반 내비게이션이 주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한 덕분이었다. 스팟은 조립 공장을 시작으로 오전 2시와 4시 두 차례에 걸쳐 조립 공장과 도장 수정장, 검차장 등 공장 내부의 대부분 구역을 빠짐없이 관리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스팟이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난방시설이나 담뱃불 같은 작은 열에도 바로 반응할 정도로 예민하게 작동하고 있어 신뢰를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스팟을 포함한 AI 기반 설비를 더 많은 산업 현장에서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물류 시스템 자동화 등을 통해 생산 공정의 효율을 높이고 불량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인구 고령화, 고임금 추세 등을 감안할 때 AI와 로봇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앞으로 살아남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스팟의 제조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다. 현대차그룹이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양산 능력을 더욱 끌어올리는 한편 자율주행차, 도심항공교통(UAM), 스마트팩토리 기술과 시너지를 내겠다는 목표다. 이 회사 인수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인류의 행복과 이동의 자유,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 가치 실현을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6초만에 제품분류···생산성 향상시키는 ‘AI’

실제 AI 기술은 모빌리티 제조 현장에서 다양한 기술과 융합해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스팟처럼 기존 인력을 대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공장 내부에 얽혀 있는 자동화된 물류 시스템의 두뇌 역할까지 수행할 정도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11월 준공한 싱가포르 글로벌혁신센터(HMGICS)의 물류 통합 제어 체계는 이러한 제조업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시스템은 자동차 부품이 입고돼 각 생산 셀로 이송하기까지 모든 물류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제어한다. AI는 1층 하역장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진 부품의 크기를 판단해 적절한 창고로 이동시키고 차량 주문 현황 시스템과도 연동해 차량이 생산 셀에 투입되는 순서에 맞춰 부품을 분류하고 적재하는 명령을 내린다. 부품 크기 식별부터 저장 위치를 결정하고 보내는 데까지는 단 6초가 소요된다. 정교하게 설계된 AI 알고리즘으로 인해 생산 효율성이 크게 상승한 셈이다.

AI가 생산 고도화에 직접 기여하는 사례도 많다. 현대모비스는 올 6월부터 창원 공장에 어쿠스틱 AI 시스템을 도입했다. AI가 제품 검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소리를 듣고 품질 정확도를 판정하는 방식이다. 처음으로 적용된 공정은 모터제어 파워스티어링(MDPS) 생산공정이다. MDPS에 달린 모터가 회전하며 발생하는 소리는 일정한 물결 모양의 파형을 그리는데 파형이 튀거나 높낮이가 다른 미세한 영역을 어쿠스틱 AI가 걸러 낸다. 현대모비스에 따르면 어쿠스틱 AI 시스템은 1초에 1대꼴로 품질을 검수할 수 있다. 하루에 3000여 대의 MDPS를 생산하는 창원 공장의 경우 하루 한 시간이면 검수 과정을 마칠 수 있다는 뜻이다.

해외 AI 혁명 가속화···"생산성 혁신 서둘러야"

해외에서도 제조업에 AI를 접목한 혁명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BMW그룹의 경우 차세대 전기차인 ‘노이에 클라세’를 생산할 신규 공장 건설 프로젝트에 엔비디아의 옴니버스 AI 솔루션을 결합한 디지털트윈을 적용하고 있다. 가상의 공장에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실시해 최적화된 공정·양산 방식을 모색한다는 목표다. BMW는 AI와 디지털트윈 기술을 이용해서 공장 건설 계획 수립과 실제 건설에 드는 기간을 총 3년에서 2년으로 줄였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노동 경직성이 강하고 고령화도 급격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AI나 로봇과 같은 생산성 혁신을 다른 나라보다 더 서둘러야 한다”며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들이 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모범 사례는 중소기업에 전파할 수 있게 정부가 도움을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건율 기자 yu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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