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억 주고 무리해서 이사왔어요"…저출생인데 초등생 '바글' [대치동 이야기㉑]

김영리 2024. 9. 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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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대치동 학군지 전격 분석
대치 학군과 가깝고도 먼 도곡동
학부모 수요 가장 높은 '도곡 렉슬'
초등 저학년·여학생 수요 많아
대도초 초근접·숙명여중고 진학 계획
중대부고·단대부중고도 초근접
한티역·대치역 학원가 모두 도보권
배정 무관 영유·사립초 학생도
"국제학교 면접·보조 과외 수요 꾸준"
"대치동보다 실거주 많은 분위기"
대도초등학교 뒤로 보이는 도곡렉슬 단지. /사진=김영리 기자


"두살 터울로 딸 둘 키우고 있어요. 초6이랑 중2요. 첫째 유치원 다니던 시기부터 왔으니 10년쯤 됐죠. 2014년 당시 26평을 7억 후반대에 무리해서 매매한 뒤 지금까지 실거주하고 있는데, 아주 만족합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거주하고 있는 40대 주부 A씨를 만났다. 그가 이 단지에 들어오게 된 건 다른 또래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자녀교육 때문이었다.

"결혼 초기 수도권에 살다가 자녀가 생긴 후부터 강남 입성을 위한 계획을 짰습니다. 렉슬에서 가장 좁은 평수였지만 방이 3개라 그래도 아이들에게 방을 하나씩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매입했어요."

A씨는 "도곡렉슬의 경우 2006년에 입주해 어중간한 연식이라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지어진 대치동 구축보다 컨디션이 좋고, 롯데백화점이나 강남세브란스 병원 등 생활 인프라를 걸어서 이용할 수 있어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의 실거주 만족도도 높다"고 평했다.

이어 "4인 가족이 살기에 집이 좁긴 하다"면서 "이사는 자녀 교육을 모두 마친 뒤, 전세를 주고 수도권으로 나오는 방향으로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A씨가 거주하고 있는 도곡렉슬의 26평(86~88㎡)은 매매 기준으로 22억~25억원선을 호가하고 있다.

 매봉터널 기준으로 '절반만' 대치 학군

대치 메인 학군과 도곡동을 구분해둔 지도. 매봉터널의 동측으로 도곡2동의 일부가 대치 학군과 겹친다(노란색 표시). /자료=대치학군공인중개사 제공


도곡동은 동쪽으로 대치동, 서쪽에 서초동, 북측으로 역삼동이 붙어있어 교육시설, 주거시설, 업무시설과 두루 가까운 입지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다만 어디와도 초근접한 입지는 아니라 '위치가 다소 애매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도곡동은 행정구역이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데, 학부모들은 매봉터널을 기준으로 '동부'와 '서부'로 분류한다. 동측인 도곡2동의 일부 지역은 자타공인 '대치 학군'에 속하지만, 서측인 도곡1동과 도곡2동의 일부는 학원가와 접근성이 떨어져 중심 교육가라고 부르기엔 거리가 있는 편이다.

다만 강남세브란스 병원이 가까운 '병세권'이면서, 수인분당선·3호선 더블 역세권, 양재천, 한티역 롯데백화점, 경부고속도로·분당-내곡간도시고속화도로 등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진 덕에 사업가, 노부부, 여유 있는 젊은 부부 등 자녀 교육에 큰 뜻을 두지 않은 이들도 만족한다는 것이 실거주자들의 얘기다. 

 학부모 문의 가장 많은 곳 '렉슬'

도곡렉슬 정문. 한티역, 롯데백화점과 가깝다. /사진=김영리 기자


한티역 5번 출구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3002가구 대단지 도곡렉슬은 2006년 입주를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강남구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가격의 아파트였다. 

면적은 26평형부터 68평형까지 다양하며 매매 시세는 21억~60억원대에 형성돼 있다. 전세가는 9억~22억원대다. 국평이라 불리는 33평형은 매매 31억~33억원, 전세 15~16억원대를 호가한다. 

학부모 입장에서 도곡렉슬의 최대 장점은 '초·중·고품아'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입지다. 대도초뿐만 아니라 중대부고, 숙명여중·고 등 유명 8학군 학교를 횡단보도 없이 등교할 수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오로지 대도초에 보내기 위해 렉슬 전세를 문의하는 수요도 있을 정도다. 업계에선 도곡동에서 학부모들이 가장 많이 찾는 단지로 도곡렉슬을 첫손에 꼽는다.

 저출생인데...도곡동엔 초등학생 '바글바글'

대도초등학교 저학년 하굣길의 모습. 한티역, 도곡렉슬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거리에 학생들이 빼곡했다. /사진=김영리 기자.


실제로 대도초등학교는 대치 학군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초등학교 중 하나다. 저출생인 와중에도 이 학교는 초과밀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전교생 수가 2038명으로, 서울에서 전교생 수 1위다. '전교생 2000명대' 타이틀을 가진 유일한 학교다.

초등학생이 하교할 시기인 평일 오후 1시께 대도초 앞 거리는 아이들과 학부모로 가득 메워진다. 도곡2동의 도곡렉슬, 래미안도곡카운티, 도곡동삼성래미안과 동부센트레빌, 대치아이파크 등 행정구역상 대치동인 일부 아파트 학생들이 대도초에 모인다.

대도초에 초등학생이 몰리는 탓인지 한티역 인근 학원가도 초등교육에 초점이 맞춰진 모습이다. 대치역 방향의 은마아파트 사거리에 고등학생용 대학 입시 학원이 주로 포진돼있다면, 한티역 주변에는 게이트 등 유명 영어유치원이나 트윈클, 에디센 등 초중등 영어학원이 많다.

 남학생보단 여학생 선호, 사립초·국제학교도 보내

도곡동 타워팰리스 2, 3차 아파트. /사진=김영리 기자


자녀가 대학에 합격할 때까지 도곡동에 머물겠다고 결심한 가정 중에는 딸을 키우는 집이 많다. 이미경 대치학군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대도초→숙명여중→숙명여고 순으로 학교를 보내려는 수요가 꽤 있다"며 "이들은 대치동 우·선·미(우성·선경·미도) 같은 전통 부촌에서도 보내고 싶어 하는 명문교이기에 젊은 학부모 입장에선 굳이 비싼 대치동 중심부로 진입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은 역삼동 진선여고나 도곡동 은광여고 같은 여교 명문과도 가깝다. 이 대표는 "도곡동 남학생의 경우 대도초→도곡중→단대·중대부고로 진학하는 경우가 다수"라고 설명했다.

도곡동을 논할 때 1세대 초고층 주상복합 단지 '삼성타워팰리스'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도곡동을 '강남 부촌'의 대명사로 만든 장본인이다. 여전히 유명 연예인들이 거주하는 데다 매매 기준 25억~120억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아파트다. 

다만 교육이 중요한 학부모들 입장에선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대치동 학원가와 도보로 10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긴 하지만. 초등학생의 경우 양재천을 건너 개일초로 배정되는 게 문제다. 도곡동에서 과외 중개업체를 운영하는 C씨는 "타워팰리스 학부모는 초등학교 배정지와 무관한 국제학교나 사립초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도곡동에서 국내 대학 입시 관련 과외를 문의하는 이들은 대부분 렉슬에 거주하고, 타워팰리스나 청담동, 한남동 등에선 국제학교 면접, 숙제 보조 과외 문의가 많다"고 했다. 

"일부러 도곡1동 살기도" 

한티역 앞 래미안 도곡카운티. 강남세브란스병원부터는 도곡1동에 속한다. /사진=김영리 기자


"라이딩하다 지쳐 대치동 간다"는 말이 나오는 도곡동은 통상 대치보다 서초나 역삼이 더 가까운 도곡1동을 말한다. 자녀가 치열한 대치동 분위기에 잘 적응하지 못할까 봐 일부러 대치동 학원가와 강남 8학군을 한발짝 떨어져 경험하려는 학부모들이 도곡1동을 찾기도 한다. 

이 경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챙길 수도 있다. 이미경 대표는 "도곡1동의 '역삼럭키'의 경우 33평을 22억원대로 매입할 수 있고, 전세도 8억원대"라며 "학부모가 라이딩으로 자녀를 학원에 보낼 계획이고, 대치동의 학구열을 경험해보고 싶은 정도라면 도곡1동을 검토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귀띔했다.

10년 만에 신축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강남 입성을 노리는 이들의 관심도 도곡1동에 쏠리는 상황이다. 2026년 10월에 입주 예정인 '래미안레벤투스'가 그 주인공이다. 도곡 삼호아파트를 재건축한 308가구 중소형 단지다.

대치동에서 활동하는 교육컨설턴트 D씨는 "도곡1동 학생들은 대치의 메인 학원가와는 거리가 멀지만 인근 공립초등학교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좋게 평가되고 있다"며 "오히려 대중교통은 더 편리해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맞벌이 부부들이 초등 저학년 자녀와 도곡1동에서 매입 후 실거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도곡동의 경우 전세보다 실거주가 많은 분위기"라며 "전세로 대치동 학군을 누릴 거라면 같은 비용으로 학원가가 가까운 대치동으로 진입해도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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