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웅·문정희 두사람만으로 충분…연기로 채운 100분 [리뷰]
'여기 연극 공연장 맞아?'
연극 '랑데부'를 보러 간 관객들이 처음 무대를 보고 할 생각이다. 패션쇼 런웨이를 떠오르게 하는 길게 일직선으로 늘어선 무대에 트레드밀이 설치됐다. 좌석 배치도 양옆으로 돼 있고, 배우들이 연기하며 침을 튀기면 이를 맞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조명이 켜지고 무대에 오르는 건 단 두명의 배우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맨몸 연기와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속사포 대사가 러닝타임 없는 100분의 상연 시간을 지루함 없이 채운다.
유일한 남자 캐릭터 태섭은 감정 표현은 물론 타인과의 스킨십마저 서툴다. 직업은 로켓을 연구하는 우주과학자다. 정확한 수치를 내야 하는 연구에선 강점이 되는 그의 강박증은 일상에선 곳곳에서 그를 위협한다. 변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태섭에게 매주 수요일 저녁 로켓연구소 앞에 있는 중국집 영춘관에서 자장면을 먹는 건 그를 지켜온 일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느 날 출장에서 돌아온 후 자장면 맛이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되고, 이에 대해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중국집 사장 정희와 얽히게 된다.
유일한 여자 캐릭터 정희는 무용을 전공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망한 후 중국집 가업을 잇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태섭과 달리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도 깊다. 그렇지만 이로 인한 상처도 크다. 엄마의 장례식 후 도망치듯 영춘관을 떠난 이유다.
태섭에는 박성운과 최원영, 정희에는 문정희와 박효주가 더블 캐스팅됐다.
전혀 다른 성격으로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왔기에 초반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정희와 태섭이었다. 자신의 항의 전화에 연구소까지 들이닥친 정희에게 태섭은 "돌아이"라고 하고, "아버지의 레시피를 말해 달라"는 질문에 "단무지는 지름 1cm 깍둑썰기, 감자는 4cm로 큼직하게, 후식 요구르트는 항상 4개를 주셨다"고 말하는 태섭을 보며 정희는 "변태"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런데도 일과를 정리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서로의 존재였다. 각자의 아픈 과거를 풀어가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진다. 여기에 두 사람이 몰랐던, 예전부터 이어져 온 인연까지 공개되면서 극의 몰입도는 더욱 높아진다.
전혀 다른 성향의 남녀가 만나 각자의 아픔을 공유하며 가까워진다는 설정은 로맨스 장르에서 진부하게 평가받는다. 하지만 로켓연구소와 중국집이라는 색다른 공간, 그리고 이들을 구현해내는 배우들의 열연이 무대를 가득 채우며 색다른 재미를 안긴다.
24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 박성웅은 "소년미가 있다"는 연출자 김정한의 평가대로 이전까지 보여준 영화, 드라마 속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헐렁함'을 보여준다. 어릴 적 사고로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된 태섭을 섬세하게 연기하며 웃겼다, 울렸다 관객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한다.
24년 동안 춘 살사 댄스의 경험을 살려 극의 원안을 쓴 문정희는 무대에서 뒹굴며 그야말로 몸을 사라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다소 과장된 술주정 연기도 사랑스럽게 표현하며 태섭뿐 아니라 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사로잡는다.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못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트레드밀 런웨이를 통해 직관적으로 연출된다. 특히 타인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태섭을 위해 지희가 제안하는 즉흥 춤이 극의 후반부를 이끄는데, 항상 '안전거리'를 유지하던 태섭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고, 몸을 맞대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비로소 완성되는 모습이다.
단 한 번의 퇴장도, 의상 교체도 없는 2인극이다. 이런 설정에 베테랑 배우들도 부담감을 토로했지만, 엄살로 느껴질 만큼 풍성한 감정으로 무대를 채운다.
문정희는 "한 번의 퇴장도 없고, 모든 걸 저희의 연기로 채워야 하는데 그를 통해 함께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에 매 순간 즐기고 있다"며 "연기가 참 맛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평했을 정도. 박성웅도 "제작사엔 미안하지만, 관객 수는 상관없다"며 "우리들이 너무 행복하고 만족하고,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만족감을 표했는데, 이게 무대 위에서 다 드러날 정도다.
한편 지난 24일 개막한 '랑데부'는 오는 2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상연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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