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우리가 원조 '구도(球都)'"…강원FC 돌풍에 다시 들끓는 강릉
한때 '성적부진·연고지' 이유 '관심 밖'…호성적에 오렌지 물결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 "니, 농상전(상농전) 모르나? 구도(球都)는 원래 강릉이 원조야."
9월의 첫날이었던 지난 1일 오후 강원 강릉종합운동장에서 만난 '강릉 아재' 김 모 씨(60대)가 말했다.
제69주년 '강릉시민의 날'이기도 했던 이날 운동장에선 강원FC와 수원FC의 하나은행 K리그1 2024 29라운드 홈경기가 열렸다.
가을의 첫날, 강릉의 낮 기온은 무려 33도 안팎. 자신을 '농고'(강릉농공고·현 강릉중앙고) 출신이라 밝힌 김 씨는 무더위에 지쳤는지 생맥주를 연신 들이켜며 강원FC 주전 풀백 황문기의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김 씨는 "(황)문기가 이번 대표팀에 처음 뽑혔다. 올해 몇년 만에 에프씨(강원FC) 경기를 다시보기 시작했는데, 황문기 플레이를 보고 반했다. 활동량도 엄청나고 지치지 않는 것이 대표팀 갈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 씨에게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 이적이 확정된 양민혁은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자 "당연히 좋아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며 꾸중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영국에 가서 손흥민처럼 큰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면서도 "근데 농고 출신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양민혁의 모교가 강릉중앙고의 라이벌인 강릉제일고(옛 강릉상고)인 데 대한 안타까움이다.
김 씨의 말처럼 강릉중앙고와 강릉제일고는 강원 지역사(史)를 넘어 한국의 '엘클라시코'(바르셀로나-레알마드리드 라이벌전)로 불릴 정도로 고교축구사 최대 라이벌로 꼽힌다. 강릉단오제 즈음 열리는 두 학교의 정기전은 194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 강원 영동권을 대표하는 실업계 고교였던 각 학교의 옛 교명 앞글자를 따 '상농전' 혹은 '농상전'으로 불린 이 정기전은 단순 축구경기가 아니라 두 학교의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라운드 안에서 선수들끼리 몸싸움이 벌어지면 응원단끼리 응원용 수술을 집어던지며 다투기 시작한다.
'애들 싸움'은 곧 '동문 싸움'으로 번져 경기가 중단되기 일쑤였다. 심할 땐 각 학교의 교문을 뜯어갔을 정도라고 하니, 사실상 리버풀, 밀월FC의 '영국 훌리건' 부럽지 않은 '남대천 훌리건'이었던 셈이다.
현재는 해당 학교가 인문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교명을 바꾸면서 '단오 축구정기전'으로 불리며 예전같은 분위기는 나지 않는 상황. 또 지역을 연고로 둔 프로팀인 강원FC가 있지만 2008년 창단 이후 신통치 않은 성적을 보인 탓에 강릉의 축구열기는 많이 식어있었다.
무엇보다 지난 2017년 연고지가 춘천으로 이전하고 시즌 절반만 강릉에서 치르고 있는 탓에, 자존심 센 강릉사람들의 '연고 의식'도 불분명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올시즌 강원FC가 돌풍을 일으키며 우승권을 바라보자 이야기가 달라지고 있다. 특히 강릉 홈경기에서 무패행진을 이어가자 강릉에서 다시 '구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월요일 출근하거나 등교를 하면 주말 강원FC 경기 이야기가 주제가 된다.
상농전(농상전) 시절 이후 떠나갔던 '강릉 아재'들도 오렌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돌아왔다. 프로야구 롯데에 '마산 아재'가 있었다면 K리그 강원FC엔 '강릉 아재'들이 버티고 있다.
공식 서포터인 '나르샤'의 '유럽식 응원가'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강릉 홈경기에선 '상농전(농상전)' 시절 들렸을 법한 "이겼다, 이겼다"하는 클래식한 응원구호가 울려퍼지는 것도 인상적이다.
선두 재탈환을 목전에 두고 정규리그 우승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진출을 위해 중요한 경기인 탓에 이날 경기장은 여느 때보다 분위기가 뜨거웠다. 오렌지 물결로 뒤덮인 경기장은 이곳이 강릉인지 네덜란드인지 헷갈리게 했다.
경기를 앞두고 서포터즈의 콜리딩 속 선수단 버스가 들어오자 강원 팬들은 열광했고, 양민혁, 황문기, 강투지 등 스타선수를 본 강릉의 꼬마팬들은 자지러지기도 했다. 선수들 이름과 등번호를 찍는 '마킹 부스'에는 긴 줄이 이어졌고, 굿즈를 살 수 있는 MD 스토어에도 팬들로 북적였다.
이날 강릉종합경기장을 찾은 관중 수는 1만2292명. 이로써 올시즌 강릉에서 열린 전 경기에서 관중 1만명을 돌파했다. 평균 관중은 1만1170여명.
이날 경기는 강원FC가 내내 앞서가다 종료 직전 통한의 동점 골을 허용하며 2-2로 비겼다. 다만 15승 7무 8패(승점 51·53득점)를 기록, 울산HD(승점 51·48득점)에 다득점이 앞서 선두 자리를 되찾았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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