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57년 지기’의 비판, “대한민국의 공식 역사관이 흔들리고 있다” [인터뷰 전문]

‘역사 전쟁.’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3)는 근래 불거진 일련의 흐름을 그렇게 표현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는 이 전장 한복판에 있다.
이 교수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증손자다. 동시에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오랜 친구다. 이종찬 회장은 역사관 논란을 일으킨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가 임명을 강행하자 이 회장과 광복회는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했다. 광복회를 비롯한 56개 독립운동단체는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따로 기념식을 치렀다.
이철우 교수는 초등학교(서울 대광초)와 대학교(서울대 법학과)를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다녔다. 지난 대선 이 교수는 아버지 이종찬 회장과 함께 윤석열 후보를 도왔다. 당선 직후 그는 친구 윤석열에게 ‘5년 뒤에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대통령 재임 기간 정치에 참여하거나 사적으로 교류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이철우 교수는 ‘진보 학자’라고 분류하기 어렵다. 그는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에 비판적이고, ‘뉴라이트’ 학자들이 참여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2006) 필진이기도 했다. 또한 이 교수는 한·일 관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번 광복절 이철우 교수는 ‘김형석 관장 임명에 항의하는 의미’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따로 열린 광복회 주최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는 김형석 관장 임명으로 촉발된 1948년 건국 논란이 “진절머리 난다”라고 말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신격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대통령의 57년 지기인 그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비치는 역사에 대한 태도가 “어리둥절하다”라고 말했다.
8월20일 오전 연세대 연구실에서 이철우 교수를 만났다. 복잡한 근현대사 논쟁의 장에서 여러 관계로 얽혀 있는 자신의 입장을 2시간여 동안 설명했다. 그는 혈연과 친소 관계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 인터뷰 중 그는 부친을 ‘광복회장’이라 부르고, 대통령과 사적 일화는 자세히 밝히지 않으려 애썼다.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를 향해 이철우 교수는 ‘법의 언어’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수없이 강조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 임명,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김형석 교수(이 교수는 김형석 관장이 아닌 ‘교수’라고 불렀다) 인사를 방아쇠라고 본다. 그 배후에 오랜 과정이 있었다. 이번 독립기념관장이나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박이택 독립기념관 이사 임명 등만 이야기할 일이 아니다. 지난해 광복절 직전에도 건국절 주장이 나왔다. 대한민국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 대한민국이 자기 자신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인은 어떤 관점이든 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역사를 다루는 기관의 수장이 대한민국의 역사적 자기 인식을 부정한다는 건 문제다.
광복회는 그들이 ‘뉴라이트’라고 비판한다.
사실 뉴라이트는 불분명한 범주다. 흥미롭게도 처음 (뉴라이트 운동이) 시작될 때는 스스로를 뉴라이트라고 일컫는 사람이 굉장히 폭넓었다. 시간이 가며 이 용어는 점점 부정적 의미로 굳어져갔다. 이제 ‘당신이 뉴라이트다’라고 하면 ‘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사람이 많다. 이 표현이 ‘친일 사관을 가진 사람’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상황이 됐다. 광복회의 뉴라이트 정의는 사실 학자 입장에서 좀 불편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어떤 복잡한 것을 단순화해서 이야기하는 데에 학자로서 거부감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광복회 입장이 이해 간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뉴라이트가 무엇인가?’라고 물어왔다. ‘뉴라이트는 이런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비판하는 겁니다’라는 차원에서 뉴라이트를 정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아홉 가지 정의를 보면 이건 좀 설명이 필요하다.

광복회가 8월12일 발표한 뉴라이트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는 자나 단체 ▴1948년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을 일본이라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를 폄훼하고 ‘임의단체’로 깎아내리는 자나 단체 ▴식민사관이나 식민지근대화론을 은연중 주장하는 자나 단체 ▴일제강점기 곡물 수탈을 ‘수출’이라고 미화하는 자 ▴위안부나 징용을 ‘자발적이었다’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할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 ▴뉴라이트에 협조, 동조, 협력하는 자나 단체.
생각이 다른 대목도 있나?
‘곡물 수탈을 수출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뉴라이트’라는 기준은 조금 조심해야 한다. ‘수출’은 중립적 용어다. 그래서 수출과 수탈은 양립할 수 있다. 수탈 자체가 수출을 통해 이루어진다. ‘수출은 수탈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자칫 일제강점기 말 강제로 쌀을 공출한 것만 수탈이고 수출한 것은 수탈이 아니라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가 있다.

‘1948년 건국설’은 왜 문제가 되나?
‘언제 건국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은 논의할 필요가 없는 주제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까지, 체제는 바뀌었지만 국가는 계속되었다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대한제국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이어지는 과정에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다.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띄우려 1919년 건국설을 자꾸 주장하는데, 그 사람들도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복회는 대한민국이 1919년 건국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국가의 국호가 1919년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1919년 건국설 대 1948년 건국설’이라는 대립 구도 자체에 1948년 건국론자들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김형석 관장과 일부 뉴라이트 인사들은 일제강점기 ‘객관적 사실’을 강조한다. ‘손기정 선수가 출전할 때 일장기를 달아야 했다’ ‘우리 국민이 일본 여권을 썼다’며, ‘1948년까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일제강점기 우리는 일본에 잡아먹혔으니까 강제로 일본인이 된 것 아니냐, 이 생각이 무슨 문제냐’라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당시 우리 독립운동 세력뿐만 아니라, 그 이후 우리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 또한 부정하는 것이다.
‘일본 국적 주장’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그간 어땠나?
2005년 국회에 국적법 개정안이 제출된 적이 있다. ‘외국에 망명해 타지에서 돌아가신 독립운동가들은 무국적자다, 그러니 국적을 찾아드리자’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의 법률안 검토 보고서는) ‘그분들은 이미 다 국적이 있었으니 되찾아 드릴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다. 1961년 한일회담 회의록도 있다. 우리 측이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며 든 근거가 남아 있다. ‘일본 국민이 아니라 외국인을 끌어간 것이니 불법’이라고 했다. 반면 일본 측은 징용된 이들이 ‘당시에는 외국인이 아니고 (즉 일본인이었고) 종전 후 외국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일본 국적 주장’은) 우리 정부가 아니라 일본 측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다.
정부가 대외적으로도 그렇게 주장해왔다는 뜻인가?
그렇다. 1986년 정부는 독일과 네덜란드 정부의 (대한민국이 대한제국이 가입한 다자조약을 유효하게 인정하는지) 문의에, ‘대한제국이 체결한 조약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외교부로서는 건국절 논란이란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날 필요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너무 뻔해서 새삼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정부가 대한민국 외교부의 기본 입장만 밝혀도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이철우 교수는 이순천 전 외교안보연구원장이 쓴 〈조약의 국가승계〉(2012, 열린책들)라는 책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순천 전 원장은 법학박사이자 주영국 참사관, 주필리핀 공사, 주탄자니아 대사 등을 지낸 외교관이다. 책에는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관계에 대한 우리 외교의 관점이 적혀 있다. 1986년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제국이 체결한 3개 다자조약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확인했다. 국제사회에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계속성과 동일성’을 주장해왔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은 대한제국과 다른, 1948년 생긴 신생국이라는 뉴라이트의 주장은 이 입장과 충돌한다. 정부가 그들의 관점을 채택하는 것은 곧 대한민국 외교가 국제사회에 주장해온 바를 스스로 뒤집는 셈이라고 이철우 교수는 말했다.
대한민국이 스스로 바라보는 관점은 어째서 중요한가? 이걸 바꾸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굉장히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실행’은 매우 중요하다. 각국은 모두 자국의 국가 지위를 주장하는 주권적 결정을 한다. 각 나라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주장을 해왔는지가 그 실행에서 핵심적이다. 가령 한반도 영토 전체에 대한 대한민국의 권리를 보자. 우리는 1948년 유엔총회 결의 195호(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내용)를 근거로 이를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이 결의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유일 합법정부라는 말인지, ‘유엔 감시위원단이 들어와 관찰할 수 있었던 지역 내’의 유일 합법정부라는 말인지 애매하다. 국제법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동일성과 계속성을 주장하면서 북한이 대한민국 관할에 속한다고 하는 게 필요하다. 건국 논쟁으로 이런 ‘축적된 실행’을 뒤엎으면 한반도 급변 사태가 터졌을 때 우리 정부의 개입 근거가 흔들린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재조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라고 콕 집어 말하는 데에는 의도가 있다. 우선 여기에는 건국절의 논리가 담겼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15일 생겨난 신생국’이라는 전제로 이승만 대통령의 역할을 부각하는 것이다. 또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말하는 이들은 대체로 ‘독립운동가 이승만’의 의의를 지워버린다.
‘독립운동가 이승만’의 의의란 무엇인가?
이승만 대통령은 국제법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다른 독립운동가도 마찬가지였지만,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국가 지위에 대한 이승만의 인식은 특히 확고했다. 이 공적은 대단히 크다. 19세기에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바탕으로 미국에 협력을 요구했던 게 일례다. 일본 천황한테 편지를 보내 자신이 ‘대한민국 국가원수’라고 주장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임시정부 내에서 탄핵도 당하고 공격을 많이 받았지만 그건 독립운동 세력 내부의 다툼이었다. 대외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 국가 지위의 기초를 세웠다. 역대 대한민국 정부가 한일회담 때 가졌던 기본 입장이 여기서 출발한다. 한일기본조약 제2조(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의 정신이다. 이승만의 이런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해 광복절을 앞두고 이승만기념관에 대해 “괴물 기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는데.
독립운동가 이승만의 모습을 지우고 일부 면모만을 가지고 신격화하려는 시도를 비판한 것이다. 이승만기념관 문제가 떠오르고 건국절 주장이 등장한 뒤였다. 논란 후 강승규 당시 시민사회수석과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부 장관이 광복회장을 찾아왔다. 그들은 ‘건국을 (1948년 완성된) 과정으로 보면 안 되겠나?’라고 말했다. 그 말 자체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 후 (광복절을 앞두고) 대통령과 오찬 때 광복회장은 ‘팔을 걷어붙이고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도와주겠다’고까지 이야기했다. 광복회장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를 만났고, 매우 건설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그 좋은 대화가 이루어진 바로 그날 밤에 ‘홍범도 흉상을 철거한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광복회장에게 와서는 ‘역사 문제는 없다’ ‘건국절 추진 안 한다’라고 말해놓고, 뒤통수를 친 거다. 광복회장이 흉상 철거를 강력하게 비판하자 시커먼 옷을 입고 검은 안경을 낀 데모대가 광복회와 집 앞으로 몰려오더라. ‘위안부’ 할머니를 모욕하는 일본 극우파의 데모와 흡사했다. 이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맞나 싶었다. 이제 또 시작될지도 모른다.
2006년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학자가 다수 참여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 집필에 동참했다. 이후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2020)에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쓴 〈반일 종족주의〉(2019)를 비판했으나 〈재인식〉 참여를 두고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썼다.
(당시 〈재인식〉 필자들이 주창한) ‘탈정치’에 공감했다. 탈정치적인 역사, 민족주의를 덜어낸 역사에 공감한 사람들이 거기 참여했다. 그런데 이영훈 전 교수가 (나를 포함한 이들의) 그런 의도와 관계없이 책에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덧씌웠다. 물론 당시 〈재인식〉 필자 중에는 지금의 뉴라이트에 속하고, 이영훈 교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다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탈정치화된 역사’에 공감했을 뿐인데 배반당한 셈이 됐다. 〈재인식〉이 정치적으로 쓰인 데 대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한 필자도 있지만 나처럼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사람도 많다. 나는 〈재인식〉에 참여한 김낙년(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주익종 같은 분들의 글이 ‘친일 사관’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영훈 교수와 이분들이 역사를 정치화하는 흐름에 앞장서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책을 쓴 분들이 저질 정치꾼처럼 되었다. 자기 연구의 의미까지 퇴색시켜버렸다.

뉴라이트의 ‘역사 정치화’란 어떤 의미인가?
지금의 한·일 관계와 대한민국에 대한 그들의 논의는 학문적이지 않다. 이건 정치운동이다. 정치를 바꾸자는 움직임이다. 지금 이분들은 대한민국 주류의, 공식적 관점을 바꾸자고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자기 인식’을 바꾸겠다는 거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채택해온 역사 인식을 뒤엎는 시도라서 정치운동인가, 아니면 목적을 이루려고 정치세력을 끌어들였기에 그런가?
둘 다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 입장에 맞서, 권력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관을 관철하려고 한다. 이명박 정부 때의 교학사 교과서 파동이나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 논란 모두 같은 맥락이다. 국정교과서란 게 뭔가? 제 역사관을 권력과 함께 대한민국의 공식 입장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로 역사관을 관철하려는 시도가 촛불(집회)을 맞으면서 좌절됐다. 이게 윤석열 정부하에서 다시 분출되고 있다.
뉴라이트의 역사 수정 시도는 이명박 정부 때 처음 불거졌다. 참여정부 비판이 정치적 목적이었을까? 뉴라이트의 역사관 논란의 출발은 어디에서부터였을까?
‘역사 전쟁’이 시작된 배경을 한번 생각해보자. 그게 노무현 대통령 때 시작된 건 맞다. 발단은 참여정부 시절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반민족규명법)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친일재산귀속법) 제정이다. 반민족규명법에 따라 ‘친일’이라는 말이 법률용어가 됐다. 이 법에는 ‘밀정 행위’라는 말도 있다. 나는 친일이라는 용어에 불편함을 느낀다. 논란이 많은 법이었고, 나도 제정 과정에서 학술회의에 나가 비판적 논평을 한 적이 있다. 친일파라고 알려진 사람들의 후손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땅을 찾아가는 일이 벌어진 일이 계기가 됐다. 사회적 공분이 일고 이런 일을 막자는 취지로 제정된 법인데, 상당한 갈등을 부를 수 있는 법이기도 하다. ‘위안부’를 부정하는 담론도 이 시기 보수, 극우 세력에서 등장했다. 그 강제성을 부정하고 ‘‘위안부’란 사실 일종의 공창이었다’는 역사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영훈 교수가 대표적이었다. 2004년 이 교수는 이 주장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를 했는데, 사실상 강요당했다. 그 사건이 아마 이 교수에게 굉장한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역사 관련법 제정이나 사회적 반일 정서가 일종의 반동을 낳았다는 말인가?
소위 진보 정치인들은 친일 문제를 제기해 공격하는 행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역효과를 부르고, 역사 부정에 오히려 둔감해질 수도 있다. 나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친일 옹호자의 공직 진출을 막는 입법에도 반대한다.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 광복회장은 과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지목한 친일 행위자의 수에 비해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한 사람의 수가 너무 많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추후 역사 연구로 (친일 행위자가) 더 많이 밝혀져 그런 면도 있겠지만 광복 후 반민특위가 국민통합을 위해 ‘자제’를 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독립운동가 후손이 할 때 비로소 (통합의) 효과가 있다. 독립운동을 훼손하려는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하면 그건 역사 왜곡에 지나지 않고, 그래서 반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아예 일을 꼬이게 하려고 처음부터 의도한 사람들이니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이 정부가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뉴라이트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니 점점 문제가 복잡해진다.

뉴라이트 학자나 그들을 중용한 정치세력은 탈정치, 탈이념, 실용을 내세운다
정치가 실용을 제대로 하려면 정부와 공직자들은 대한민국의 정통 역사관을 따라야 한다.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필요도 없다. 정부와 공직자만 거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그런 기조 위에서 움직인다면 오히려 정말 실용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내부의 역사의식을 흔들고 국민 정서를 도발하면서 진행하는 한·일 관계 개선 작업은 오히려 반발만 부른다. 대한민국의 공식적·역사적 자기 인식을 흔들지 않아야 진정한 실용주의가 가능하고, 한·일 관계도 더 유연하게 풀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미·일 관계가 ‘동맹’까지 나아가려면 한·일 관계가 개선돼야 하고, 이를 위해 과거사에 대한 우리 인식을 바꾸는 게 실용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한·일 군사동맹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안보협력은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역사적 관계를 생각하면, 동맹까지 발전하는 건 우리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일본과의 안보협력)을 우리 스스로의 역사 인식을 지워버리면서 추진할 일도 아니다. 일제의 강점을 합리화·정당화해야 비로소 일본과의 안보협력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그건 국제관계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국제관계에서 어느 한쪽의 역사 인식을 바꿔야 우호·협력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국가 내부의 역사적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타국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며, 주권국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무이기도 하다.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바꾸려 하고 있다고 보나?
지금 단계에서 그렇게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가 그 사람들을 정부 산하 역사 연구기관장에 앉힌다. (박근혜 정부 때) 국정교과서를 추진한 사람들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것을 목격하고 있기에 국민들이 매우 큰 반감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매우 큰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정부 스스로 이건 매우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역사 전쟁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가 과거사를 왜곡하고 덮어버리고 독립운동을 폄훼하면서 한·일 관계를 실용적으로 추진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통령에게 직접 이런 의견을 보낸 적 있나?
역사 관련해서는 여러 차례 메시지를 보냈다. 당선 직후 대통령에게 (재임 중에는 연락하지 않고) ‘5년 뒤에 보자’고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서 이야기한 주제 중 하나가 한·일 관계 개선이었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일 과거사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도 거기 보탬이 될 수 있고, 나의 가친(이종찬 광복회장)은 특히 많이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인가?
반일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에 광복회장과 같은 독립운동가 후손이 할 말을 할 수 있다. 대통령에게 ‘민관공동위원회’ 조직을 제안했다. 노무현 정부 때 한일회담 문서가 공개되자 논란을 정리하기 위해 정부가 민관공동위원회를 열었다. 아주 잘한 조치였다. 청구권 등 여러 문제에 대해 많은 논의를 거쳤고 합의를 본 바 있다. ‘제2차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해 한·일 과거사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여기 바탕을 두고 (한·일 관계를 개선해)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국제법에 정통한 전직 주일 대사를 위원장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대선 전 국민의힘 초선의원 대상 강연에서도 언급했다.
한·일 과거사에 대한 국민적 합의란 무엇을 뜻하나?
정부가 우리 과거사에 대한 관점을 확고히 하고 역사를 진지하게 직시하면, 일본과 관계 개선을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좀 더 폭넓은 정부의 행위를 국민이 용인해줄 수 있다. 가령 강제징용 판결 결과를 정치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을 국민이 받아들여주는 것이다. 국민적 합의 없이는 장기적으로 많은 것이 흔들릴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대일 관계 개선을 위해 취한 조치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난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모두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과거사 문제 해결이 우리 자존심을 버려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부에 있는 것 같다. 일명 ‘중일마 발언(8월16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다. 마음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다그쳐 사과를 받아내는 게 과연 진정한가”라는 발언)’이 그런 것 아닌가? 우리 자존심을 버려야 비로소 한·일 관계가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은 국제관계를 사사로운 친구 사이처럼 생각하는, 정말 이해도가 뒤떨어지는 인식이다. 한 나라의 국가적·역사적 자기 인식을 흔들어야 비로소 (관계 개선이) 가능한 일인가, 그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전 사석에서 만났을 때 과거사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관점은 뉴라이트와는 달랐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생각이 바뀐 것일까?
예전 대통령과 직접 대화할 때 발언을 보면 원래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던 건 분명하다. 2018년 사석에서 만났을 때는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그때 들은 발언과는 매우 달라서 나로서는 좀 어리둥절하다. 대통령의 내심에서 역사관이 바뀌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런(뉴라이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굉장히 중요한, 역사를 다루는 기관의 기관장으로 임명을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진 것으로 추정될 수 있지 않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국민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게 된다. 그러니까 그게 안타까운 것이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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