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걸린 실수요자들…5대 은행 주담대 역대급 증가에 잇단 ‘대출 옥죄기’
가계대출 급증세를 잡기 위한 금융당국의 고강도 압박에 은행들이 일제히 대출금리 인상에 나섰음에도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 대출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5대 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역대급 증가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문턱도 당분간 계속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실수요자들로선 비상이 걸린 셈이다.
◇주담대 증가폭, 3년전 ‘영끌 광풍’ 웃돌아
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29일 기준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 잔액은 567조735억원으로, 7월 말(559조7501억원)보다 7조3234억원 늘었다.
이는 역대 월간 최대 증가 폭이었던 7월(7조5975억원 증가)보다는 약 2000억원 적은 규모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 이후 주요 은행들이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중단 △주택담보대출 한도·만기 축소 등의 강한 대출 억제 조치를 쏟아냈는데도 두 달째 유례 없는 급증세가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실행(9월 1일)을 앞두고 8월 30∼31일 이른바 ‘막차’ 수요가 몰렸다면, 8월 전체 5대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은 8조원 안팎으로 7월 기록을 경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신용대출도 29일 만에 8202억원(102조668억원→103조4270억원) 늘었다. 대출 수요자들이 주택담보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신용대출까지 최대한 끌어 썼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8월 전체 가계대출 증가 폭은 8조3234억원(715조7383억원→724조617억원)으로, 2021년 4월(9조2266억원 증가) 이후 3년 4개월 만에 최대 기록을 세웠다. 이 역시 남은 영업일 이틀(8월 30∼31일) 취급액까지 더해지면 9조원대에 이를 수도 있다.
3년 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빚투(빚으로 투자) ‘광풍’ 당시와 비교해 현재 가계대출·주택담보대출 증가 속도가 비슷하거나 더 빠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계대출, 당분간 안 꺾인다
은행권은 가계대출 급증세가 당장 급격히 꺾이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은 주택 거래 시점으로부터 약 두세 달의 시차를 두고 실제 집행되는데, 최근까지 주택 매매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도 지난달 ‘2분기 가계신용’ 발표 당시 "주택 매매가 이뤄지면 2∼3개월 시차를 두고 가계대출에 영향을 미친다"며 "따라서 3분기 들어 7월에도 가계부채가 2분기 수준으로 늘고 있어 관련 기관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7월 서울 지역 주택 매매(신고일 기준)는 1만2783건으로 6월보다 41% 폭증했다. 2년 11개월 만에 1만 건을 넘어섰다. 2단계 스트레스 DSR 실행에 임박해서까지 ‘영끌’ 바람이 이어졌음을 감안하면, 대출 증가세는 연말까지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은행권, 앞다퉈 주담대·전세대출 취급 제한…실수요자들 비상
은행권의 ‘가계대출 옥죄기’ 시도는 한층 강도를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우리은행은 1일 실수요자 중심의 가계부채 효율화를 명분으로 주택 소유자에게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등을 중단하는 내용의 ‘초강수’ 대책을 발표했다.
우리은행은 오는 9일부터 주택을 한 채라도 보유한 경우 서울 등 수도권에 주택을 추가로 구입하기 위한 목적의 대출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아울러 서울 등 수도권 내 전세자금대출도 전 세대원 모두 주택을 보유하지 않은 무주택자에게만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갭투자(전세 낀 주택 매입) 등 투기 수요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전세 연장 또는 8일 이전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지급한 경우는 예외로 할 방침이다.
아파트 입주자금대출의 경우 우리은행이 이주비나 중도금을 취급했던 사업지 위주로 운용하고, 그밖의 사업지에는 제한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또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최장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한다. 이렇게 하면 DSR 상승으로 연소득 5000만원인 차주가 연 4.5%의 금리로 대출받는 경우 대출 한도가 3억7000만원에서 3억2500만원으로 약 12% 줄어든다.
KB국민은행도 3일부터 전세자금대출을 임차보증금 증액 범위 안에서만 취급하기로 했다. 투기성 자금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는 임대인 소유권 이전 등의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은 아예 중단한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29일부터 현재 최장 50년(만 34세 이하)인 주택담보대출 대출 기간을 수도권 소재 주택에 한해 30년으로 일괄 축소하고 생활안정자금 대출의 한도를 물건별 1억원으로 줄였다.
신한은행도 3일부터 주택담보대출 최장기간을 기존 50년에서 30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도 1억원으로 제한한다. 다만, 실수요자를 위한 전세 반환자금 용도의 주택담보대출은 예외로 할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26일부터 갭투자를 막는 취지에서 임대인(매수자) 소유권 이전, 선순위채권 말소 또는 감액, 주택 처분 등의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내주지 않고 있다.
오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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