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해산당한 ‘디지털성범죄 TF’ 팀장 서지현 “딥페이크, 국가가 아무것도 안 한 결과” [플랫]
숫자 아닌 피해 자체가 중요
성적 모욕은 범죄라는 ‘교육’이 우선
‘미투’ 이전으로 가도 같은 선택할 것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최근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터지고 서지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22년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전문 태스크포스(TF) 팀장을 그만두면서 해야만 했던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어린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자들은 이제 친구를 의심하게 됐다. “여기가 지옥이 아닐까요. 친밀한 사람과의 사랑과 신뢰가 깨진 곳이 지옥이겠죠.”
그는 TF 팀장으로 일하면서 수사부터 기소와 재판, 집행을 단계별로 점검해 60여개 법률에 대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최근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TF를 임기 도중 강제해산시킨 법무부는, 여성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국회는, 범죄를 예방·수사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는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지 알기 어렵다”는 글을 올렸다. 답답하고 다급해서다.
그는 텔레그램의 협조를 구할 수 없다는 변명을 멈추고 수사 협조 및 게시물 차단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앱 삭제 등 법적 대응을 한 국가는 브라질 등 10여개국이 있다. 그는 당시 텔레그램이 수사에 비협조할 경우 앱스토어에서 일시적으로 앱을 삭제하는 방법도 제안했다. 그 밖에 국내 법률 정비안으로는 신속한 증거보전을 위해 ‘피해 영상물 보전명령’을 신설하는 안 등을 제시했다. 추가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응급조치’ 신설도 중요하다. 피해자를 위해 상담보다 중요한 건 신속한 삭제 처리다. 가정폭력처벌법, 스토킹처벌법을 보면 응급조치가 있다. 그 조치를 인터넷상에서 구현하자는 거였다. 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아닌 수사기관의 즉각적 차단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5·18 성폭력 피해, 교제폭력, 딥페이크 성범죄까지 다 연결돼 있다고 했다. 성폭력이 시대에 따라 옷만 바꿔 입었을 뿐, 국가가 없거나 국가가 가해자거나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여성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기도 하다. 군대 내 딥페이크 방에서 ‘군수품’이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은 징후적이다. 그는 “강제추행이든 강간이든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아서 온 피해다. 거기에서 오는 모욕감이 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열매 모임’이 된 5·18 성폭력 피해자들과 서지현이 만났다. 2018년 미투 이후 6년 만이다. 지난해 말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이하 조사위)’가 5·18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중 16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고 이중 12명이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를 만나고 싶다는 요청에 자리가 마련됐다.
한 피해자가 울면서 서지현에게 말했다. “죽으려고 했는데 검사님의 미투가 제게 용기를 줬고 저를 살렸습니다.” 서지현은 말했다. “저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함께 용기 냈고 그 용기들이 전달된 것이죠. 제가 더 감사합니다.” 그는 ‘열매모임’의 특별자문을 맡기로 했다. 그를 지난달 28~29일 인터뷰했다. 인터뷰 전문을 정리했다.
“디지털 성범죄의 지옥문은 열려 있다…
친밀한 사람과의 사랑·신뢰가 깨진 곳이 지옥”
- TF 팀장을 하던 2년 전 “디지털 성범죄의 지옥문은 열려 있다. 신종 범죄 수법에 대응하는 신속한 법률 제정은 한시도 미뤄서는 안 되는 너무나 절박한 일”이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이렇게 간절하게 말했는데 달라진 게 없다.
“일베가 단순한 장난일 수 없다고 그때부터 제대로 처벌했으면 이렇게 됐을까. 여성에 대한 성적 모욕을 ‘재미’라고 생각하는 문화를 바꿔야 했다. 인터넷 세상에서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걸 가르쳐야 한다고 계속 말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괴물을 우리가 만든 거다. 남자아이들이 괴물이 되는 것도, 여자아이들이 피해를 입는 것도 괴롭다. 다 우리 잘못이지 않나.”
- 밤새 백악관 홈페이지를 뒤져봤다고 했다.
“뭐라도 해야 해서 찾아보고 싶었다. 2022년 6월 백악관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주재로 온라인 괴롭힘과 학대 대응 TF를 출범시켰고 올해 5월 젠더 기반 폭력 대책의 일환으로 광범위한 온라인 학대 대책이 포함된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훑어보니 교육과 예산 중심으로 정리돼 있었다. 지금 우리도 시급한 것은 교육이다. 성교육 예산을 삭감하면서, 성교육 도서를 도서관에서 빼면서 건전한 디지털 문화를 확립할 수는 없다.”
- 서울시교육청은 학부모들에게 ‘긴급 스쿨벨’을 발령하며 주의사항으로 ‘온라인에 사진 등을 올리거나 전송하지 마세요’를 가장 위에 올렸다.
“가해자 처벌이 아니라 피해자 책임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사진을 내리는 게 아니라 제대로 사과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10대 가해자가 많아 가해자도 걱정이 된다. 저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사회 전체가 멸망하는 기분이다.”
그는 한편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이렇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기가 쉽지 않은데 뭐라도 하나 바꿔야 한다는 조바심이 든다고 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지혜를 달라. 내 지혜가 너무 부족하다’고 기도한다는 말을 꺼내며 눈이 빨개졌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에 대한 회한과 후회가 느껴졌다. TF가 제안했던 60여개의 법률 제안이 받아들여졌다면 지금과 같은 ‘지옥’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딥페이크 위협이 과대평가받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제발 과다하게 대처해봤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서 과다할까 걱정하는 건 굶어서 죽어가는데 배터져 죽으면 어떡하느냐는 말과 같다. 숫자도 그렇다. 22만명이 아니라면 2만2000명은, 2200명은 괜찮은 건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한 건 여성들이 아니다. 여성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이대남’ 표를 얻으려고 했던 흐름이야말로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 것 아닌가. 범죄자인 사람 말고 누가 그 프레임을 찬성하겠는가. 숫자가 생각보다 적을 거라고 옹호하는 게 아니라 범죄자를 잘라내야 옳은 것이다.”
“신이 나를 이렇게 썼구나. 그거면 됐다”
지난 5월 16일이었다. 서지현은 5·18 성폭력 피해자들 중 12명이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이 나를 이렇게 썼구나.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피해자들은 “검사도 성폭력 피해를 입었는데 나도 말할 수 있겠구나”라고 40여년 전 피해를 꺼내놨다. 조사위는 그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그의 ‘미투’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이 소식은 그에게도 위로가 됐다.
- 실제 열매모임의 피해자들을 만나보니 어떠셨나.
“모든 분들의 존재가 감사했다. 그분들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는 10대, 20대였다.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이다. 가해자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국가는 책임지지 않으니 얼마나 억울하셨을까. 내가 미투를 결심했을 땐 검찰개혁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미투를 하고 나면 집 밖에 나가지 못할 것을 각오했다. 그럼에도 후배들이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한편 저의 미투 이후 다른 피해자들이 함께 용기를 냈고 ‘위드유’를 외쳐줬고 더 큰 용기를 저에게 가져다줬다. 열매모임의 선생님들에게도 그런 용기가 전해질 거라 믿는다.”
- 무게감도 느끼실 것 같다.
“증언 이후 고통도 크다.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가야 하는지 아니까, 또 제가 단박에 해결해드릴 힘이 없으니까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서지현은 인터뷰 중 자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오래전 피해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했다. 성폭력 피해의 경험은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미투를 했다는 건 계속 그 기억을 꺼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한국 언론뿐 아니라 미국, 독일 등의 언론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야 했다. 평생 잊고 떨치고 살려고 한 기억을 계속 꺼내는 건 고통이었다. 그는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부단히 잊으려고 노력했던 일들을 다시 꺼내야 하는 상황을 걱정했다.
- 5·18 성폭력은 국가 폭력과 성폭력, 이중의 고통이 겹쳐 있다.
“범죄 피해자들이 가장 바라는 건 응징이다.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5·18 성폭력 피해는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진술이 계속 의심받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성범죄에서 피해자의 말보다 더 큰 증거가 어디 있을까. 나는 버젓이 공개된 장례식장에서 추행당했다. 그곳에는 법무부 장관도 있었다. 조사위 조사 중 진상규명이 어렵다고 판단된 버스 안내양 사건이 ‘불능’으로 결정된 이유가 시내 한복판 버스 안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라 들었는데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이 나를 파묻을 때/ 그들은 몰랐지/ 내가 씨앗이라는 것을’
서지현은 지난해 12월 안태근 전 검사장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사람이 많지만 그저 잘 지낸다고만 답한다. 여전히 흔들리는 날들이 있다고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
가끔은 미투 이전 열심히 일하던 때를 돌아보기도 한다. 최초의 특수부 여검사였던 그에게 한 후배는 선배라서 다행이라는 말을 전했다. 일을 잘하던 선배였으니 조직이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거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그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몇 초 간의 강제추행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조직의 2차 가해와 가해자의 잘못보다 피해자의 탓을 하는, 성범죄를 바라보는 오래된 사회의 시선이었다.
그는 열매모임 피해자들을 만나고 돌아간 후 ‘그들이 나를 파묻을 때/ 그들은 몰랐지/ 내가 씨앗이라는 것을’이라는 시를 만났다고 했다. 그가 ‘씨앗’이 되어 ‘열매모임’이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 미투를 한 2018년 1월29일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나.
“돌아보면 미투 이후에 일어날 고통을 모르고 한 거였다. 지금은 고통을 다 알지만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그게 나인 것 같다. 최근 절망스러웠는데 루쉰의 ‘고향’이란 시를 읽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시를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희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 5·18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선옥 선생님이 제주 바다에 5·18을 다 던져버리고 왔는데 또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 일상으로의 회복은 불가능한 것 같다. 사회의 모든 편견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 한 어렵다. 사는 내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열매모임 선생님들도 잘 웃으셨다. 그렇게 견뎌내셨을 거다. 전 행복을 선택했고 감사하면서 희망을 찾으며 살아가려 한다. 또 이렇게 용기 낸 선생님들이 존경스럽다고, 살아주신 게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 말에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이 영향을 받는다면 더 좋겠다.”
임아영 젠더데스크 laykn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당장 4800만원을 어디서 구합니까”···서민들 ‘날벼락’
- “부부싸움” 농담, “하나만 해” 반말, “무식” 반박…윤 대통령, 125분간 26개의 답변
- ‘충격’ 토트넘, 손흥민에 재계약 불가 통보···1년 연장 옵션이 끝 “태도 바꿨다, SON 측은 충
- [속보] “아내 순진…잠 안 자고 내 폰 봐서 ‘미쳤나’ 그랬다” [대통령 기자회견]
- [단독] 명태균 의혹 제보자, 대통령 회견에 “명, 김건희와 수시로 통화했다고···거짓말 누가
- 명태균 “정진석·권성동·장제원 누르려고 내가 윤상현 복당시켜”
- “펑! 하더니 사람 떨어져”···부산 빌라 화재, 5층 주민 추락사
- 친한계 “안 하느니만 못해” vs 친윤계 “진솔한 사과”···쪼개진 여당
- “이게 사과냐” “해명은커녕 파국”···윤 대통령 담화에 들끓는 시민사회[대통령 기자회견]
- [속보] 윤 대통령, 무엇에 대한 사과냐 묻자 “구체적 언급 어렵다” [대통령 기자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