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리인하의 두 얼굴, 한국에 호재일까?

2024. 9. 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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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하 배경 촉각, 코스피 피벗 호재서 홀로 소외
긴축 시대 저무는데, 한국 빚 3000조 돌파 진퇴양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7월 3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오는 9월 기준금리 인하를 공식화했다. 일본을 제외한 유럽과 중국 등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금리 인하에 나서며 긴축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고물가 충격이 잦아들면서 중앙은행의 관심은 인플레이션에서 고용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은 진퇴양난이다. 고금리로 내수 침체가 심화하고 있지만, 금리를 내리면 수도권 집값 상승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파월 의장의 ‘피벗’(통화정책 전환) 선언 후 유동성 증가 등으로 상승세를 보인 주요국과 달리 한국 증시는 홀로 하락을 면치 못했다.

잭슨홀 미팅이 남긴 숙제, ‘빅컷’ 나올지 관심

파월 의장은 지난 8월 23일(현지시간) 미국 잭슨홀 미팅에서 “통화정책을 조정할 때가 도래했다”며 9월 금리인하를 기정사실화 했다. 잭슨홀 미팅은 매년 8월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경제학자 등이 모여 정책을 논의하는 행사로, 통화정책 방향 변화를 알리는 자리로도 활용된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에 매우 가까워졌다”며 “인플레이션이 2%로 안정적으로 복귀할 것이란 확신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시장의 관심을 모았던 금리 인하 속도에 대해선 향후 경제 여건 변화에 따라 결정하겠다며 ‘빅컷’(0.50%포인트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노동시장의 추가 냉각을 추구하거나 반기지 않는다”며 “물가 안정을 향한 추가 진전을 만들어 가는 동안 강한 노동시장을 지지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리 인하 사이클에 진입한다는 신호를 주고, 속도에 대해선 경제지표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시장에 확인시켜준 것이다.

앞서 연준은 미국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증시를 흔들면서 통화정책 전환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 제조업 위축에 이어 실업률 등 지난 7월 고용지표가 얼어붙자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고, 연준이 지난 7월에 금리를 내렸어야 한다는 비판이 미국 금융업계에서 나왔다. 향후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는 오는 9월 17~18일 열린다. 연준은 지난해 7월 이후 정책금리를 연 5.25∼5.50%로 유지해왔다. 9월 FOMC에서는 통상적인 금리조정 기준인 0.25%로 인하를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연준이 이보다 폭이 큰 빅컷을 하면 ‘늦은 금리 인하에 따른 경기 둔화를 억제하기 위해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향후 고용시장의 움직임이다. 최근 우려가 커지고 있는 미국의 실업률 상승이 경기 침체의 전조인지부터 판단해야 한다. 이에 대한 힌트는 오는 9월 6일 발표되는 8월 고용보고서에 담길 예정이다.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는 다른 국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준이 매번 0.25%포인트씩 완만하게 금리를 인하한다면 미국 금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수준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으로 몰리면서 미국 통화가 강세를 보일 수 있다. 반면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내리면 다른 국가 중앙은행들도 자국 통화가 약화하지 않도록 금리를 따라 내릴 여지가 커진다.

미국 최대 증권사인 찰스 슈왑 등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연준은 다섯 번의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경기 침체 대응을 위한 급격한 금리 인하가 세 번(1990년·2001년·2007년)이었고, 나머지 두 번(1995년·2019년)은 완만했다. 완만한 금리 인하 시기에는 경기가 연착륙하며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는데 금리 인하가 급격하게 이뤄진 때에는 닷컴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경기 침체를 동반했다. 변준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경제지표 둔화와 물가 하락이 동반 확인되고 있어 9월 FOMC는 물가와 경기 모두를 위한 인하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미 경기 둔화에 따른 국내 경기와 수출 둔화를 가정하면 코스피는 내년 상반기까지 10% 내외로 조정될 수 있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에 꿈적 않던 코스피, 엔비디아에 꿈틀

실제로 파월의 피벗 선언 호재로 상승세를 탄 주요국 증시와 달리 한국 증시는 ‘홀로’ 하락했다. 지난 8월 26일부터 외국인은 순매도를 하며 주가 하락을 이끌었다. 원화가 오르고 달러가 떨어지면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증시 투자 매력도가 높아져 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통상적인 규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금투업계는 한국 증시가 대내외적인 딜레마에 갇혀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국내 경기가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 일부 수출 대형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상이 강화됐다. 원화 강세 시에는 수출 대형 기업의 효과가 약화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원화 강세가 현 수출 구조상 악재일 수 있는 동시에 내수에도 큰 기여를 하지 못해 국내 증시가 이전과 달리 힘을 못 쓰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분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8월 2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 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금리 인하 호재에도 꿈쩍 않던 코스피는 AI(인공지능) 반도체를 대표하는 엔비디아 실적 발표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난 8월 28일 소폭 반등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8월 29일 엔비디아 실적 발표 후 쏟아진 실망 매물에 1% 하락하며 다시 2660대로 주저앉았다. 엔비디아는 이날 새벽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과 전망을 발표했으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시간외거래에서 7% 가까이 급락했다. 엔비디아가 그간 논란이 됐던 차세대 AI 칩 ‘블랙웰’ 에 대해 “생산 수율을 개선하기 위해 블랙웰 GPU 마스크(회로 설계 플랫폼)를 변경했다”며 설계 결함을 사실상 인정한 점도 투자자들의 불안을 키웠다. 이에 국내 반도체 종목이 모두 급락했고,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5거래일 연속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순매도를 이어갔다.

지난 8월 28일 미국에서도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흔들리며 뉴욕증시가 하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실적 발표 후엔 미국 고용보고서나 소비자물가지수 발표 때와 비슷한 시장 반응이 나타났다. 엔비디아 실적이 주요 경제지표만큼이나 중요해졌다”고 평가했다.

각국 피벗 나서는데 한국은 빚의 역습에 발목

전 세계가 피벗을 선언하는 사이 한국은 정부와 가계 빚의 합이 올해 2분기 기준 처음으로 3000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인 2401조원의 127%에 달한다. 감세 기조로 세수가 줄면서 국채 발행이 늘며,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가계대출이 급증한 결과다. 국내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폭은 코로나19 유행 초기였던 2021년 ‘0%대 기준금리’ 시대의 기록도 넘어섰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8월 22일 통화정책 방향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기준금리(3.50%)를 동결한 이유다. 지난해 2월 이후 13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묶으면서 한은은 설립 이래 가장 긴 연속 동결 기록을 썼다.

금리 하락은 저축 대신 소비와 투자 유인을 키워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소비나 투자보다 부동산 시장에 돈이 더 쏠리면 가뜩이나 위험수위에 올라 있는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자율을 낮춘다든지 유동성을 과잉 공급하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영끌족에 대해선) 정부의 공급 대책으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건 제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준금리 동결 이후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불만이 쏟아지자, 이 총재는 지난 8월 27일 한은·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공동 심포지엄에서 “왜 우리가 금리 인하를 망설여야 할 만큼 높은 가계부채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늪에 빠지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구조적 개혁 없이 손쉬운 금리 조정으로 부동산과 가계 빚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법을 지적한 것이다.

문제는 금리 인하가 너무 늦어지면 내수 회복이 지연돼 성장 동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 6개월째 자영업자 수가 감소하는 등 내수 부진이 깊어지면서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서민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도권 집값 폭등은 금리 하나로만 잡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함께 풀어야 할 숙제”라며 “통상 금리를 내리면 내수에 효과가 생기기까지 1년가량이 걸린다. 이를 고려해 내수 부양을 위해서라도 미국 금리 인하에 맞춰 연내 한국도 금리를 0.25%포인트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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