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 신속판단···석화 재편 빨라진다

세종=유현욱 기자 2024. 9. 2.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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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기업활력법 규정 개선···위기업종 기준 대폭 완화
장기 10년·단기 3년 실적 비교서
20개·4개분기 추가···변동성 반영
기업 자율 구조조정 가속화 할 듯
[서울경제]

중국산 공급과잉에 직면한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최근 업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공급과잉 유형에 대한 판단 기준을 완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현재 11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여천NCC와 효율적 사업구조 개편을 진행 중인 LG화학 등이 적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상 공급과잉 유형에 대한 판단 기준을 확대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장기 10년, 단기 3년 실적을 기준으로 과잉공급 업종을 판단했는데 20개 분기와 4개 분기를 비교하는 방식을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최근 10년과 3년을 비교하는 기존 방식이 시장의 급격한 변동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 2월 기준 국내 석유화학 업종의 월별 생산지수는 2017년 3월(132)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62.6)까지 떨어졌지만 2021년 ‘반짝 실적’으로 최근 3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양호하게 나타난 바 있다. 공급과잉 업종에 대한 기준 시점이 지나치게 길어 이 같은 ‘착시 현상’이 생긴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해 이번에 규정을 개정하기로 했다. 다만 무분별한 사업 재편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영업이익률 감소 기준은 상향했다. 기존 15%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높인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과잉공급 업종 판단 기준의 한계를 보완하겠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연구원의 시뮬레이션 결과 석유화학 업종은 판정 기준 개선 이후 과잉공급 위기 업종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르면 이달 열리는 ‘2024년 3분기 사업재편심의위원회’에서는 일부 사업 재편 계획 승인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2021년 4분기부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여천NCC를 비롯한 나프타분해공장(NCC)이 주된 사업 재편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 가운데는 LG화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현재 비주력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미래 사업 위주로 재편 중인 만큼 사업재편심의위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LG화학·롯데케미칼 '빅딜' 재부상···여천NCC 통매각도 거론

-4대 기업 상반기 837억 영업적자

-中 기술 강화에 중동 리스크까지

-단기간 내 경쟁력 회복 쉽지않아

-기업활력법 위기업종 기준 완화

-법 적용땐 주총 없이 분할·합병

-증권거래세 면제 등 세제 혜택도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금호석유화학 등 4대 석유화학기업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1849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837억 원으로 급감했다. 석유화학 업계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0.6%대를 기록하며 2000년대 들어 가장 저조했는데 올해는 이보다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황 부진에 대한 우려는 이어지는데 공급과잉은 여전한 상황이다. 4개사의 석유화학 재고 자산은 올 상반기 기준 7조 1513억 원으로 반년 만에 16.5%나 늘었다.

정부가 최근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상 공급과잉 유형에 대한 판단 기준을 완화하기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기존의 장기 10년, 단기 3년의 판단 기준으로는 급변하는 시장 변동을 반영하기 어려워 20개 분기, 4개 분기에 대한 비교를 추가한 것이다. 정부는 특정 업종을 겨냥한 것으로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현재 석유화학 업종에 대한 구조 개편이 가장 빨리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 업종의 구조개편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중국의 기술력 확대와 설비 증설로 가격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최대 수출국이었던 중국에서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수출이 어려워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는 “중국이 지난해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4600만 톤 생산해 자급률이 98%로 수직 상승했다”며 “올해 이 비율이 118%에 달하겠다”고 전망했다. 안혜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과 중국의 주요 수출국이 미국·베트남 등으로 겹치는 점을 고려하면 대중 수출 감소를 타국 수출로 전환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공세와 더불어 중동까지 석유화학 업종 경쟁에 가세해 글로벌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쿠웨이트국영석유화학회사(KIPIC)는 5월 알주르 공장을 부분 가동했는데 중동의 석유화학 시설은 2027년까지 순차적으로 문을 연다. 중동에서의 에틸렌 생산량은 연 1123만 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석유화학 업계 안팎에서 사업 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 업계 대표들은 7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만나 “세계 석유화학 산업은 지난해 역대 최대 수준의 공급과잉을 기록했으나 중국의 공격적 증설 지속과 중동의 추가 증설 리스크로 업황이 단기간 내 회복되기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참석한 기업인들은 조속한 사업 재편과 더불어 정부의 인센티브 마련을 주문했다. 산업부는 이에 기업활력제고법상 공급과잉 업종에 대한 판정 지침을 개정하기로 한 것이다. 또 범용 제품에서 고부가·친환경 제품 중심으로 전환을 위한 연구개발(R&D), 세제, 규제 개선에 대한 건의도 수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기업활력법 적용에 따른 인센티브도 기대할 만하다. 해당 기업은 주주총회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인수합병(M&A)과 기업 분할·합병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증권거래세 면제 같은 세제 혜택도 따라온다.

이 같은 혜택을 바탕으로 석유화학 업계는 여천NCC의 구조 개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여천NCC는 1999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합작해 세운 에틸렌·프로필렌 등 생산 기업이다. 2021년 4분기부터 11개 분기 연속 영업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사업 지속에 대한 우려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올해 말 합작 투자 계약 기간도 종료될 예정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1~4업장을 각각 2곳씩 가져가는 방안과 통매각 등 여러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떤 방식이든 간에 사업 재편이 승인돼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구조조정이 원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LG화학과 롯데케미칼 간 ‘빅딜’도 재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범용 나프타분해시설(NCC) 부문 통합 또는 합작법인(JV) 설립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의 메이저 기업 2곳이 중복 설비에 대한 효율화를 해야 중국에 대항할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만큼 충분히 논의 가능한 ‘카드’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LG화학은 올 3월 스티렌모노머(SM)를 생산하는 여수 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여수 NCC 2공장 지분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롯데케미칼도 말레이시아 내 생산기지인 LC타이탄 매각을 검토하는 등 사업 재편에 적극적인 상황이다.

석유화학 업계의 또다른 관계자는 “일부 중국 기업이 LG화학의 매물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며 “국내 업체 간 합종연횡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석유화학 산업이 무너지면 이를 기반으로 하는 소재 산업까지 함께 흔들린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석유화학 업종의 구조 개편에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中저가공세에 글로벌 경쟁력 뒤처져···디스플레이·철근도 구조조정 사정권 -OLED마저 점유율 역전 당해 -中철강 韓 수출액 32% 급증 -가격경쟁력 앞세워 국내 잠식

석유화학 업종뿐 아니라 디스플레이·철강 업종 역시 자율적 구조조정의 사정권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업종 또한 중국산 저가 공세로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데다 글로벌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일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글로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시장점유율(출하량 기준)은 49%로 사상 처음 중국(49.7%)에 역전당했다. 한국이 OLED 같은 고부가가치 디스플레이에서 유지하던 경쟁 우위까지 중국에 빼앗긴 셈이다. 한국은 2020년 글로벌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점유율이 36.8%로 중국(36.7%)에 앞선 것을 끝으로 세계 1위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후 한중 간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는 중국이 47.9%를 기록하며 한국(33.4%)을 크게 따돌렸다. 특히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는 사실상 중국 업체가 시장을 독식하게 됐다. 중국산 저가 공세에 밀려 일본 샤프 역시 최근 TV용 LCD 생산을 종료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삼성디스플레이 또한 2022년 LCD 분야에서 철수한 바 있다. LG디스플레이도 2022년 국내에서 TV용 LCD 패널 생산을 중단한 데 이어 유일하게 남아 있던 중국 광저우 공장까지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LCD 시장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OLED 기술까지 추격해 한국을 위협할 것”이라며 “정부가 디스플레이 업종에 대한 구조 개편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철강 업종 역시 철근재 중심으로 자율적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중국의 대(對)한국 철강 순 수출액은 2022년 28억 달러에서 지난해 37억 달러로 32% 늘었다. 중국 업체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한국 시장마저 잠식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특히 건설 현장에 주로 쓰이는 철근의 재고량은 급격히 늘고 있어 생산량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정상 가격 이하로 후판을 수출하면서 국내 철강 업체의 타격이 상당하다”며 “일부 업체는 공급과잉을 견디다 못해 기계식 휴대폰 키패드용 동판 생산에서 스테인리스 특수 합금 강관 개발로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 역시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 및 수요 부진, 탄소 중립 및 각종 무역장벽으로 국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다”며 “철강을 대상으로 한 주요국의 보호무역주의 조치가 지속적으로 심화해 국내 철강업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유현욱 기자 ab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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