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개와 늑대의 시간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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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상대의 선의에 기댄 평화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가짜 평화"라고 깎아내리고 '대북 굴종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선의에 기대지 않는 남북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취임 이후 한-일 관계에서는 줄곧 '일본의 선의에 기댄 외교'를 펼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가 개와 늑대의 시간이 이미 지났다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한-일 관계가 아직 '개와 늑대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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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 | 통일외교팀장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상대의 선의에 기댄 평화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가짜 평화”라고 깎아내리고 ‘대북 굴종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선의에 기대지 않는 남북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취임 이후 한-일 관계에서는 줄곧 ‘일본의 선의에 기댄 외교’를 펼치고 있다. 야당이 ‘대일 굴종외교’란 날 선 비판을 퍼부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서는 바늘 하나 들어설 틈이 없을 정도로 마음을 꽉 닫았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태평양같이 넓고 열린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은 거의 동맹 수준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지난 7월28일 한국, 미국, 일본의 국방장관이 3국 군사훈련을 정례화하는 등 안보협력을 제도화하는 첫 문서인 ‘한·미·일 안보협력 프레임워크(TSCF) 협력각서(MOC)에 서명했다.
한·미·일은 △다년간 3자 훈련계획에 기반을 두고 3국 훈련을 정례적·체계적으로 시행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 실시간 공유 체계의 효과적 운용을 위한 소통과 협력 강화 △3국 국방장관 회담 3국 순환 개최 등에 합의했다.
왜 이렇게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안보협력, 한-일 안보협력에 열심일까. 이미 2022년 10월11일 윤 대통령이 “핵 위협 앞에 어떤 우려가 정당화될 수 있겠느냐”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불난 집에 빗대 부연 설명했다. “불이 나면 불을 끄기 위해 이웃이 힘을 합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가장 (크게) 동북아에 직면한 위협이다. 그 위협을 위해 이웃 국가와 힘을 합친다는 건 전혀 이상한 문제가 아니다.”
불난 집 이웃 중에는 불 끄는 착한 사람도 있지만 팔짱 끼고 불구경을 하거나 심지어 불난 집에서 부채질하는 못된 사람도 있다. 일본이 우리 집의 불을 끄려고 온 착한 이웃일까. 불난 집에 부채질하면서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나쁜 이웃일까. 차분히 따져볼 문제다.
상대가 친구인지 적인지 혼란스러울 때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한다. 해가 저물 무렵 저 멀리서 어슴푸레한 동물 실루엣이 보이면, 양치기 입장에선 양 떼를 지키는 개인지, 나와 양을 해칠 사나운 늑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가 개와 늑대의 시간이 이미 지났다고 여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은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말했다. 일본을 의심하지 말고 믿자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한-일 관계가 아직 ‘개와 늑대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친구인지 경계할 상대(적)인지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다. 처음부터 적으로 보이면 거리를 두고 경계를 할 텐데, 처음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특히 ‘친구처럼 보이는 적’은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한반도 안보에서 결정적 순간은 북한과 분쟁·전쟁이 벌어졌을 때다. 일본은 2022년 방위백서부터 북한 등의 안보 위협에 대응해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은 “북한을 대상으로 한 반격 능력 행사는 한반도 안보와 주권에 직결되므로 우리와 사전 협의·동의가 필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은 “반격 능력 행사가 자위권 행사여서 다른 나라 허가를 얻는 것이 아니다”라는 태도다. 유사시 일본이 한국을 무시하고 북한을 공격할 경우, 북한 지역에 대한 한국의 영토고권(영토 안 모든 사람·물건에 대한 지배권)을 부정하게 된다. 2015년 10월에도 일본이 ‘한국의 유효 지배 영역은 휴전선 이남’이라며 북한에 대한 한국의 영토고권을 부인해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이 막판에 무산됐다.
한-일 관계는 좀 더 개와 늑대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 지레짐작한 상대 선의에 기댄 외교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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