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적응증 확대'에 나선 이유

정승필 2024. 9.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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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정부 약가 제도 조정…셀트·코오롱·대웅 등 신약 적응증 확보 나서

[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글로벌 약가 조정 움직임 속에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의약품의 적응증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의약품은 허가된 적응증에만 처방할 수 있는데,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적응증 확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적응증이란 특정 약제나 수술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병이나 증상을 의미한다. 규제 당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효과를 가리키며, 이는 해당 약물이 임상 시험을 통해 그 적응증에 대해 효과가 있음을 입증해 규제 당국의 허가를 받은 것을 뜻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픽사베이]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최근 '외국약가 비교 재평가' 10차 회의를 종료했다. 이를 마지막으로 정부는 재평가 대상 의약품을 선정하고 외국약가 기준을 확정하는 과정을 거친 뒤 내년 상반기 안으로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외국약가 비교 재평가는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의 가격을 A8 국가(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캐나다)의 상한금액과 비교해 조정하는 제도다. 평가 대상은 약제 급여 목록에 등재된 2만2920개 품목으로, 일부 저가 의약품·희귀의약품· 퇴장방지 의약품 등을 제외한 대부분이 포함된다.

미국에서는 '약가 인하'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미 정부는 이달 15일(현지 시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메디케어에서 10개의 의약품의 약가를 전격 인하하기로 했다. 이 중 일부는 최고 79% 수준으로 인하됐으며, 오는 2026년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메디케어는 미국이 시행하고 있는 노인의료보험 제도로, 사회보장세 20년 이상 납부한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에게 미국 정부가 의료비의 50%를 지원한다.

두 사안의 공통점은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고 제약사 등의 과도한 이윤 추구를 막기 위한 취지다. 새로운 내용이 발표될 때마다 보험 급여 범위가 변경되는 등 의약품 가격에 영향을 미쳐 제약·바이오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셀트리온은 자사가 개발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짐펜트라(성분명 인플릭시맙)'의 류마티스 관절염(RA) 대상 임상 3상 시험 계획(IND)을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아 적응증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RA는 몸속의 면역체계가 실수로 관절 조직을 공격해 염증을 일으키는 만성적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다. 주로 손과 발의 작은 관절에서 시작돼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붓기·뻣뻣함, 그리고 기능 상실을 초래한다.

짐펜트라는 지난해 10월 셀트리온이 FDA로부터 승인받은 세계 유일의 인플릭시맙 피하주사제(SC)다. 기존 인플릭시맙 제품은 전문 의료진을 거쳐 정맥주사(IV)로 투여해야 했지만, 셀트리온이 자가 투여가 가능한 SC 제형으로 변경해 개발한 제품이다. 즉 환자들의 편의성을 크게 높인 것이다.

현재 짐펜트라는 염증성 장 질환(IBD)인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치료에 쓰이고 있으며, RA 치료제로서 적응증 확장에 성공하면 미국 매출이 더 커질 전망이다. 셀트리온이 목표로 하는 RA 치료제 글로벌 시장 규모는 55조원에 이르고. 이 중 미국 시장 규모는 39조원에 달한다. 이는 미국 IBD 시장(13조원) 대비 3배 이상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신경병증성 통증 유전자 치료제 'KLS-2031'의 적응증을 대상포진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 통증으로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이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통증학회 2024(IASP 2024)'에 참가해 관련 비임상 유효성 평과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연구는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을 가진 동물 모델을 통해 진행됐다. 발표된 바에 따르면 KLS-2031은 위약 대비 통증 자극에 대한 회피 반응 역치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하며 정상 동물군과 유사한 정도로 회복됐다. 또한 단회 투여만으로 장기간 통증을 제어한 것으로 나타났다.

KLS-2031은 재조합 아데노부속바이러스(rAAV)에 치료 유전자를 적용해, 뇌로 전달되는 통증 신호를 차단하고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기전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rAAV는 인체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바이러스로, 병을 일으키지 않으며 치료 유전자를 특정 세포에 전달하는데 사용된다.

코오롱생명과학 관계자는 "이번 연구를 통해 KLS-2031의 적응증 확장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향후 추가 연구 결과를 학술지에 게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은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 목적으로 개발한 국산 34호 신약 '펙수클루(성분명 펙수프라잔)' 적응증 확대를 중국에서 시도하고 있다. 목표 적응증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다. 최근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으로부터 임상 1·3상 시험 계획(IND)을 동시에 승인받았다.

헬리코박터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세균이다. 주로 위점막에 서식하며 점차 위를 감염시켜 다양한 위장 질환을 유발한다. 위는 산성 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헬리코박터균은 위산을 중화시키는 우레아제(Urease)를 분비해 암모니아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산성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항생제를 복용하는데, 이때 펙수클루를 함께 복용하면 위산 분비를 억제할 수 있어 위산에 약한 항생제가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하는 데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중국인의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은 약 50%로 추정될 정도로 매우 높은 만큼, 관련 시장 규모도 크다. 대웅제약이 펙수클루의 헬리코박터균 적응증까지 획득하면,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약가 재조정은 환자들에게는 희소식일 수 있으나, 기업 입장에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다"며 "신약이나 기존에 출시된 의약품에 투입된 금액이 최소 수천억 원에 이르고, 흑자로 전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구개발에는 최소 10년이 걸리고, 개발 성공률도 10% 이하로 매우 낮다. 약가가 낮아져 이익이 줄어들면, 자금력이 탄탄한 전통 제약사나 바이오 대기업을 제외한 기업들의 연구개발 속도는 더뎌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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