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속 미생물로 질병 원인 밝힐까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024. 9. 2. 0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생물 군집-유전체 대규모 분석… 伊 국제공동 연구진, 학술지 게재
성인 장내 미생물의 평균 3%… 식품서 유래된 미생물로 확인
병원성 박테리아는 거의 없지만, 건강-질환과의 연관성 조사 필요
지역에 따라 고유한 특성 나타나… 식품 원산지 인증에도 활용 가능
연구팀이 식품 미생물의 메타게놈 분석을 위해 샘플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미생물 군집 전체의 유전체 정보를 메타게놈이라고 하고 이를 동시에 분석하는 연구 방식을 군유전체학이라고 한다. Teagasc 제공

과학자들이 식품 속 미생물 군집(microbiome)과 유전체를 분석하고 분석 결과를 토대로 역대 최대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식품 유래 미생물이 성인 장내 미생물의 평균 3%, 유아의 경우 56%나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니콜라 세가타 이탈리아 트렌토대 세포·계산 및 통합생물학과 교수가 이끈 국제공동 연구진은 식품에 있는 미생물 유전체를 역대 최대 규모로 조사해 식품 미생물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연구 결과를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셀’에 공개했다. 다양한 음식 문화에 따른 식품 미생물 특성이 장기적으로 인간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 장내 미생물 연구 전환점… 군유전체학 활용

사람의 장에 사는 미생물 종류는 장질환뿐 아니라 암이나 뇌신경질환 등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최근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은 인체 질병과 장내 미생물의 관계를 지도로 만들어 지난달 21일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 연구에 따르면 당뇨병이나 우울증 등의 질병이 특정 장내 미생물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내 미생물에 초점을 맞춰 질병을 조기진단하고 개인 맞춤형 치료법을 적용할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이처럼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장내 미생물에 식품 속 미생물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 확인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식품 속 미생물은 그동안 실험실에서 개별적으로 배양해 연구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모든 종류의 미생물을 배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식품 미생물을 효율적으로 파악하고 종합하기 위해 ‘군유전체학(Metagenomics)’이라는 방법을 활용했다. 군유전체학은 특정 미생물 군집 전체의 유전체 정보인 ‘메타게놈’을 동시에 분석하는 연구 방식이다. 사람 몸에 사는 미생물이나 환경 분석에는 자주 쓰인 방법이지만 대규모 식품 조사에는 활용된 적이 없다. 연구팀은 “식품 미생물학자들이 그동안 식품 연구와 안전성 검사에서 현대 유전체 분석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세계 50개국에서 나온 발효음료에서부터 육류까지 다양한 유형의 식품 관련 메타게놈 2533개를 분석했다. 2533개의 메타게놈 데이터 중 1950개는 이번 연구에서 새롭게 분석됐으며 전체 데이터의 65%는 유제품에서 유래했다.

분석 결과 병원성 박테리아는 많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음식의 풍미나 보존 기간에 악영향을 주는 미생물이 일부 확인됐다. 연구팀은 “생산하는 식품에 어떤 미생물이 있는지 알면 일관되고 우수한 식품을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각 지역 생산 시설이나 농장에 따라 고유한 미생물 특성이 나타난다는 사실도 발견됐다. 세가타 교수는 “식품 규제 당국이 식품에 특정 미생물의 존재 여부를 정의해 지역 특산 식품의 정체성과 원산지 인증에 활용할 수 있다”며 “이를 구현하려면 다양한 지역과 산업에서 동일한 식품 유형의 미생물 메타게놈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식품 미생물 일부는 우리 몸에 자리 잡아

연구팀은 식품 미생물과 인간 미생물에서 겹치는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이전에 분석된 1만9833개의 인간 메타게놈과도 비교했다. 그 결과 식품에서 유래한 미생물은 평균적으로 성인의 3%, 유아의 56%를 차지했다. 식품 속 미생물 일부가 우리 몸에 들어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세가타 교수는 “인류가 장내 미생물 중 일부를 음식에서 직접 얻도록 적응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성인의 경우 3%라는 수치는 낮아 보이지만 비중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과 질환에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볼 때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만든 대규모 미생물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식품의 미생물 특성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조사할 수 있다. 식품 종류에 따른 미생물 진화 과정, 식품 부패 관련 유전자, 식품을 통해 전염되는 질병 등 여러 연구 분야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앞으로 다양한 음식, 문화, 라이프스타일, 인구와 관련된 식품 미생물 다양성을 탐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bottle9@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